| [ CAU ] in KIDS 글 쓴 이(By): UYHYUL (!폭풍예감!) 날 짜 (Date): 1996년04월08일(월) 14시57분14초 KST 제 목(Title): 세상 사는 재미(1) 모두들 힘들게 살고 또, 열심히 살고 있는 세상. 나만이 홀로 외딴곳에서 이 세상 고민이란 고민은 혼자서 다 짊어지고 사는듯 하던 요즈음의 내 생활. 벗어나 밝은 자신을 찾아보려던 나의 최근의 삶에, 어제는 그 "희망"이라고 하는게 드디어 찾아 왔다. 그것도 아주 엉뚱하게... 어쩌면 이 글을 읽다가 세인들은 '푸억~'하고 웃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그 '엉뚱한' 나의 "희망"을 이야기 해야만 하겠다. 한국 야구사상, 국내 최고의 투수, 내 개인적으로는 중,고등학교 시절, 나의 '종교'였던 "해태 타이거즈"의 대들보, 선.동.열. 그가 드디어 일본에서 첫 세이브 올렸다 한다. 몇년전 부터 가네, 못가네, 안가네,,, 결국은 가네... 하면서 일본 으로 무대를 옮긴 선동열, 그의 행적은 나, 개인적으로는 무척 흥미거리였었다. 대학시절, 여름 방학을 맞아 광주의 집에 내려간 어느날, 충장로에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우연히 보았었다. 그 때, 선동열은 무척 촌티 나는 인상이었었다. 쪽팔림을 감수하고 나는 마침 가지고 있던 수첩에서 메모지를 한장 꺼내 들고는 볼펜을 그의 손에 쥐어주며 "동열이 형, 싸인좀 해주세요..." 했다. 별명이 멍게인지라, 정말 가까이서 보니 얼굴이 멍게인지, 멍게가 선동열인지... 암튼.. 그날 난 "선동열"에게 싸인을 받았었고, 그 싸인을 받은 메모지의 종이 쪽지는 불행하게도 지금 나에겐 없다. 아마, 지금 광주의 우리집 내 책상 서랍 어딘가 쳐박혀 먼지가 틸틸.. 쌓여 있겠지.. 그 후로 계속 되던 "선동열 신화"에 난 무척 자랑스러웠었다. 광주..해태 타이거즈..선동열..한국 프로야구 7연패의 강팀...그래 광주 사람들은 그저 프로야구나 보고 살아라...대통령도 못 나오는곳인데 프로야구라도 잘 해야 하지 않겠냐... 후후..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던게 그건, "해태"가 아니라 "선동열"이 너무너무 좋았었기 때문이었다. "선동열"이 일본으로 건너간 후 내심 실망했었다. 광주를 버리고, 한국을 버리고 일본으로 가다닝.... 에이, 모르겠다.. 이왕 간것, 거기서도 잘 해라... 그 덕에 아마 요즘 한국의 '스포츠 서울' 신문의 인터텟 웹 사이트 조회수가 좀 늘긴 늘었을거다. 내가 거의 날마다 한번씩은 들어가 주고 있으니 말이다. 일본 프로야구 시범경기중 엄청난 화제를 뿌리며 피칭을 했다고 하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떻게 저럴수 있을까.... 시한부 삶을 사시던 어머니께서 운명을 달리 하셨다는데, 그게 끝나자 마자 다시 일본으로 가서 연습을 하고 또 시범경기에 임하고...의욕이 생길까?? 여하튼, 잘 한다니 좋긴 좋았다. 문제는 며칠전, 일본 프로무대의 쓰라린 '데뷔' 였던 것이다. 4월 5일, '요코하마 카프스'라는 팀하고의 경기에 구원으로 나올거 라는 일정을 알아두었던 바, 나는 목놓아 4월 5일을 기다렸고, 드디어 그 날, 난 일어 나자마자 스포츠 신문을 눌렀다. 웬걸... 야구란에 조그맣게 '선동열 구원 실패',, '시련의 일본 데뷔',,, 쯧쯧 망했군, 망했어.... 아... 세상에 도움이 되어주는게 하나도 없군.... '선동열'... 힘든 싸움을 하고 있군........ *****선동열박찬호선동열박찬호선동열박찬호선동열박찬호선동열박찬호***** !!!!!폭!!!!!풍!!!!!예!!!!!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