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7년07월11일(금) 03시03분54초 KDT 제 목(Title): 공/반야심경/관세음보살 반야심경에 보면 "관자재보살 행심반야 바라밀다시..... [중략] 색즉시공 공즉시색.... ..... " 그런 식으로 되어있는데, 색즉시공에서의 '공(Sunyata)'의 의미를 주의깊게 여겨봐야 합니다. 글자 그대로 한다면야 텅 빈 것일거고 영어로는 emptiness로 종종 잘못해설되어 있는 것을 봅니다. 하지만 '공'의 개념이 그렇게 되면 반야심경의 진정한 의미와 불교의 의미를 죽었다 깨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공'을 아무리 말로 설명하려해도 실감하는 것 이외에는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마치 공복감을 말로 표현하려 해도 무리한 것과 마찬가지. 뜨겁다는 의미를 알려면 실제 뜨거운 것을 만져봐야 실감하듯이.. '공'을 알려면 '공'과 혼연일체가 되어 명상을 해보아야 한답니다. 머리속을 텅비우는 것이 '공'은 아닙니다:) '색(rupa; 물질적 현상으로 존재하는 것)'이라는 생명체가 있을 때 산산이 분해하면 개체는 소멸되고 기관과 조직으로 되는데 그것마저 분해하면 무수한 세포의 집합체가 되며 이 세포까지 분해하면 원소의 모임이 되는데 이미 생물이라고 말할 수 없는 화학반응의 세계가 되죠. 아직까지는 '색'의 세계임. 이들 원소를 다시 산산이 분해하면 물질의 궁극적 모습인 '원자의 운동'이 됩니다. 원자까지도 분해하면 거기엔 무한히 뒤엉킨 에너지의 파동이 있을 뿐이고 그 파동마저 흩어지게 하면 그 뒤에 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색'의 한계를 초월한 그 곳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존재를 초월한 세계. 존재를 나타내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공'이 됩니다. '공'이 파동치는 곳에 원자가 형성되며 원자가 소용돌이 치는 곳에 우주가 나타나고 거기에 원소가 형성되어 복잡한 화학반응 속에서 생명체가 생겨나게 됩니다. 나아가서는 색의 세계의 온갖 현상이 거기에 나타나게 됩니다. '색'의 근원은 '공', '공'의 표출은 '색'. 양자는 별개의 것이 아니란 겁니다. 이것이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뜻입니다. 근원적인 법칙성.... 그것은 틀림없이 실체가 없는 것입니다. 표현할 낱말도 없거니와 개념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말이 필요합니다. 개념도 필요합니다. 그 어떤 방법으로든지 표현이 필요합니다. 여기서 관자재보살(관세음보살)께서는 '실체가 없다'는 뜻이 담긴 '공'이라는 낱말을 선택한 것입니다. 여기서 '공'이란 '없는 것 혹은 텅 빈 것'으로 잘못 해석하면 혼란이 오기 시작합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하고 기도 드리는데, '하늘'이라는 말의 뜻은 '창공'입니다. 허나 '하늘에 계신' 할 때의 하늘은 창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하느님이 계신 곳의 표현으로써 하늘이라는 말을 쓴데 지나지 않습니다. 그것을 신은 창공에만 존재한다.. 고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겠죠? 다음 '관자재보살'이란 관음보살 관음, 관세음, 광세음, 관세자재, 관세음자재 등등을 일컫는 말입니다. 관세음보살은 깨달음의 지혜를 의미합니다. 불은 ^^^^^^^^^^^^^^ 번뇌를 비유한 말입니다. 불에 탄다는 것은 번뇌의 포로가 된 것을 뜻하며, 고해에 빠져 표류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살아나갈 때 좋던 싫던간에 여러가지 고난에 봉착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럴 때에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이 있으면 즉,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르면 거기서 생기는 깨달음의 지혜로써 번뇌에 불태워짐이 없으며 고해에 밀려 내려가는 일도 없고 번뇌를 최소한도에서 멈추게 할 수 있다고 설법합니다. 반야심경 "관자재보살이 반야바라밀다를 행하실 때에.." 앞쪽부분에 나옵니다. 하지만 '관자재보살'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존하지 않는 '관자재보살'이 석가모니부처의 십대제자중 으뜸인 '사리자'에게 설법을 한다는 일이 황당해도 보통 황당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은 '공'을 깨닫게 해주기 위한 방편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관자재보살'이 바로 '공'의 다른 표현이며, 체험으로만 깨달을 수 밖에 없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공'을 사용한 깊은 뜻이 숨어있습니다. 명상을 수행(의지작용)하는 중에 확인하게되는 그것은 "육체도 그 작용도 모두가 근원적인 초존재의 법칙성 속에 성립되어 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단계에서는 설명해도 소용없으며 '색즉시__?'에서 들어갈 말로 '공'이 선택된 것입니다. 여기선 글자 그대로 '공'을 해석하면 안됩니다. '사리자'의 존재는 있지만 수행하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반야심경이기에 수행하는 사람을 대표하여 쓰인 방편임도 알 수 있겠지요. 실체없는 존재('공')가 실체있는 존재('색')에게 이야기 한다.. '공'이 '색'으로 나타난다.. 그런 깊은 뜻이 숨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공'의 명상행과 거기서 깨닫는 반야지혜와의 관계를 ,'사리자'에게 '관자재보살'이 설법한다는 식으로, '사리자'와 '관세음보살'로 바꾸어놓고 표현한 것입니다. '사리자여'하고 말한 것은 바로 '공'의 명상 속에서 부처님의 지혜가 솟아오른 그런 상태를 말합니다. '소리(음)'는 듣는 것인데 왜 본다(관)고 했을까라는 의문... 마음의 소리는 귀로는 듣지 못하기 때문. 관세음보살은 마음의 소리를 영안으로 파악합니다. 영안이란 마음의 눈이며 영혼의 눈입니다. 외형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본질의 파동을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음'을 '관'한다는 표현이 쓰이게 됩니다. 관세음보살은 33가지 다른 이름과 모습의 보살로 나타난답니다. 성관음, 아귀도, 천수, 십일면,약사여래, 미륵, 보현, 지장, 문수, 대세지... 등등. 보살(보리살타)는 범어 bodhisattva를 음역한 것입니다. 그 뜻은 '구도자' '깨달음을 구하는 자'입니다. 미륵불 (미륵관음보살)은 그중 하나입니다. 미륵불은 정토도솔천이라는 천계에 계시며 56억 7천만년 뒤인 미래에 인간을 제도하기 위하여 인간세계에 하강한다고 신앙되고 있습니다. '메시아'와 '미륵'은 같은 어원을 갖고 있으며 마이트레야에서 왔습니다. 팔리어로 메태야.미륵은 한자로 그 이름을 받아적었을 때의 말일 뿐이고 우리나라 음으로 '미륵'이라고 불리는 것이죠. 그리고 부처는 석가모니 이전에서도 깨달은 분이기만 하면 부처였습니다. 부처는 보신불 법신불 그런 개념으로 보면 .. 세가지 부처의 개념이 있으며 석가모니는 단지 불법을 깨닫고 퍼뜨린 분이기에 '석가모니가 신이다 아니다'의 논쟁에 오른다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대승불교에서 보면 모든 사람(뿐만 아니라 생명체도)이 부처임을 알고 이미 구원받았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 중요하며 부처가 존재하지 않은 곳은 없다라고 합니다. 바로 '공'을 말한거라고 보면 됩니다. '신'의 개념을 그렇게 해석한다면 불교와 기독교는 그 가르침의 본질이 많이 비슷함을 알 수 있겠지요. 유일신을 믿던 유태인, 중동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달리 그 개념을 표현할 길이 없어 그 방편으로서 "나를 믿어라.."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곤 천국으로 갈 수 없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 '하느님이 어디에나 계신다'라는 표현도 비슷한 것 같고.. - 대부분을 '만화 반야심경' 여기저기서 발췌했습니다.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