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10월10일(목) 09시42분11초 KDT 제 목(Title): 꽃의 죽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의 한 부분입니다. 주간조선에 "한국인, 오늘의 초상"이란 면에 김춘수 시인의 근황이 소개되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기에 김춘수 시인의 시를 접해 보았을 것입니다. 이젠 김춘수 시인의 나이는 74세, 저는 시인의 정직성이 참으로 좋습니다. 이번에 주간조선과의 대담에서 시인은 말했습니다. "저는 정말 죽음이 두렵습니다. 나이 때문인지 정말 죽음이 실감납니다. 이 세상에서 맺어온 모든 인연을 끊고 미지의 세계로 떠난다는 게 말할 수 없이 불안합니다. 요즘은 길거리를 걷다 우연히 만난 들꽃이 문득 어릴 적 죽은 친구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진짜입니다. 평소 생각도 안하던 친구인데, 걔가 죽어 꽃으로 다시 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너 참 오랜만이다"며 말을 걸지요" 노 시인은 그 순간이 아직도 생생한 듯 눈가가 붉어진다. 그는 젊어서부터 성경을 읽어왔다. 신자로서가 아니라 "대단한 문학"이라 생각하며 읽었던 건데 요즘와서는 "이 죽음에 대한 불안을 신이 잠재워 주었으면" 은연 중 기대하기도 한다. 우리들은 죽음앞에서 너무나도 무딥니다. 그렇습니다. 앞으로도 살날이 많은데 죽음을 생각해 무었하리.... 언뜻 보면 참으로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말입니다. 그런데 묘한 것은 아직도 살날이 많은데 죽음을 생각해서 무엇하리라는 생각은 정말 죽음이 눈 앞에 오는 순간까지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이젠 목숨이 막 넘어갈 수 밖에 없다는 절망스러움 앞에서만이 죽음을 바라보려고 하지만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숨이 넘어가고 죽음을 왜면하던 그 습성은 극대화된 공포감 끝에 허둥지둥 준비없이 무분별한 다음 삶을 취합니다. 그리고 또 다시 말하겠지요. "아!! 이것은 운명이고 숙명입니다. 제가 선택한 삶이 아닙니다. 신이시여.. 어찌 저에게 이런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나이까?" 그리고 사주팔자나 따지고 오늘의 운세에 인생을 거는 또 다른 삶이 거듭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하여 무딘 것이나 혹은 죽음에 대하여 큰소리 치는 경우나 모두 죽음이라는 또 다른 삶의 현상에 대하여 외면하고 회피하는 것입니다. 시인이 죽음을 마주대하면서 두려움을 느끼는 것을 독자들에게 솔직하게 말하는 것은 그 나마 시인이 시인이기 때문일까요? 끝까지 물질적 욕망과 사회적인 명예욕에 사로잡혀서 숨이 꼴깍하고 넘어가는 순간까지 거짓으로 죽음을 가리는 이 못난 죽음의 문화에서 진정으로 파릇파릇한 생명의 문화가 기대될 수 있을까요? 죽음이란 문제 결코 나의 삶과 멀리 동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 곳에서 우리 삶의 지평은 열릴 것입니다. 마주대함에 대한 첫번째 관문이 "죽음"이란 현상에 대한 두려움, 공포심을 솔직하게 이야기 하고 두려움의 실체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죽음을 마주대하면서 죽음을 삶의 파릇함의 씨앗으로 가꾸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