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saram) 날 짜 (Date): 1996년08월09일(금) 18시00분43초 KDT 제 목(Title): 선문답이라... 내가 이해하는 것이 맞다면 선문답이란 언어의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된다. 선문답의 시조로 불리는 말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만 봐선 안된다."는 것이다. 누구나 짐작하듯이 여기서 달은 실재, 손가락은 언어에 해당함을 알 수 있다. 언어는 지침으로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하므로 진리를 알기 위해선 그것을 뛰어넘는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확실히 언어가 실재를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현대 철학 에서도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이다. 언어가 엄밀한 수학적인 형태를 취한다면 괴델의 불완전성원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결국 불완전하다는 의견 이 현재로선 우세한 것 같다. 그런데 동양에선 훨씬 언어에 대한 불완전성에 대한 인식이 심각하다. 불교가 아니더라도 장자편을 보면 목수가 나무를 다루고 농부가 농사를 짓는 것도 오랜 시간동안 긴 훈련이 필요하며 몇마디 말로 설명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나라를 다스리거나 진리를 추구하거나 하는 것을 어떻게 몇마디의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냐며 책이란 것을 비웃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언어가 완전하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생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촘스키의 내재적 언어구조 는 인간이 진화과정에서 획득되었건 아니건 모든 인간이 언어를 구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 언어란 모든 상황에 다 적응이 가능하며 적용 영역이 거의 무한대임을 보였다. 이는 특정한 상황에서만 적용할 수 있는 인공언어(컴퓨터 랭귀지)와는 전혀 다르다. 지금까지 인간의 언어가 부족해서 어떤 상황이나 사물을 표현하지 못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앞으로는...? 글쎄 그럴만한 - 언어로 표현할 수 없을만한 상황은 아무래도 인간으로서는 상상하기 힘들다. 선문답에서 중요한 문제점은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할 때 그렇다면 무엇으로 진리에 접근시키느냐 하는 점이다. 사실 진짜 고승(어느 정도 도가 통했다고 보여지는)들은 이 점에서 고심을 한 것 같이 보인다. 때로는 마음을 닦는 법을 가르치면서 스스로 깨닫기를 기다리기도 하고 어떤 때는 무엇인가 계기를 주면서 한번에 깨닫게 되기를 원하기도 한다. 어떤 고승은 제자의 머리를 몽둥이로 때려 깨우침을 주기도 했다는데 나로서는 이것이 얼른 깨닫지 못하는 제자에 대한 답답함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 되기도 한다. 또하나는 언어로 검증을 하지 않는 영역에서 누가 진리를 얻었는지 아니면 그냥 깨달은 시늉만 하고 있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조금의 연습만 하면 정말 깨달은 사람들의 선문답을 흉내내기는 아주 쉽다. 선문답을 많이 하는 사람들 중에는 판단이 힘들다는 이유에서 이런 사이비가 생기기는 아주 쉽다고 생각하나 이 문제는 더 말하지 않겠다. 한가지 확실한 것은 괴델의 불완전성 논리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언어의 불완전성을 예견한 동양사상이 서양사상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설령 동양에서 그것을 예견하였다고 해도 그것을 입증한 것은 어디까지나 서양의 수학이었다. 대충 직관으로 "A가 B인 것 같다."고 하는 것과 A가 B 인 것을 엄밀하게 논리적,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과는 천지의 차이가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