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4년09월24일(토) 12시04분56초 KDT 제 목(Title): 감사] 사홍서원 어려운 문제입니다. 제대로 말씀을 드릴 지는 모르겠지만 .... 천수경은 놀라운 경전입니다. 죄무자성종심기 : 죄는 스스로의 성품이 없이 마음 따라 일어난다. 자성이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두가지가 있는데(사실은 둘이 아니겠지만) 하나는 본래의 마음입니다. 본래의 마음이란 것은 인연입니다. 인연이기에 모습도 없고 생멸도 없습니다. 또 다른 마음이란 인연을 보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모든 것을 인연이 아닌 실제로 보는 마음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속에서 고정시켜서 자신과 대상을 구분하는 마음입니다. 보통 우리가 마음할 때의 마음은 후자에 속합니다. 그러나 본마음과 다른 것은 아닙니다. 중생이란 실제로 중생이 아니라 이름이 중생이다라고 금강경에서 말합니다. 실제의 모습은 부처입니다. 우리가 중생이라고 우겨서 이름이 중생이 됩니다. 번뇌라는 것은 본마음의 입장에 서면 번뇌가 아니라 인연입니다. 그 인연이 본마음을 모를 때 번뇌가 됩니다. 그래서 유마경에는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을 얻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법문은 부처님이 하시는 말씀은 다 법문입니다. 우리의 본마음이 곧 부처이므로 본마음의 소리는 다 법문입니다. 부처는 구분이나 상대가 아니므로 본마음을 알면 시냇물 소리가 법문이 되고 나뭇잎 떨어지는 모습이 법문이 된다고 합니다. 불도는 결국 자성의 모습을 확연하게 아는 것입니다. 안다고 하지만 내가 알 수는 없습니다. 본마음이 본마음을 아는 겁니다. 아미타경에 보면 극락세계에 대하여 나오는데 극락세계에도 축생이 있고,지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세계의 축생과 지옥은 중생의 업으로 인하여 있고 극락세계의 축생과 지옥은 법장보살의 서원으로 있다고 합니다. 동일한 축생과 지옥이 한쪽에서는 중생이 한쪽에서는 보살이 만듭니다. 거기에 묘한 것이 숨겨 있습니다. 삶의 배경이 부처(무한절대)일 때는 축생과 지옥이 극락이지만 삶의 배경이 중생(유한상대)일 때는 축생과 지옥이 고통바다가 됩니다. 이 것이 자성중생,자성번뇌,자성법문,자성불도의 모습입니다. 꿈을 깨고 보니 본래 자리는 그대로요 번뇌는 사라지지 않고 이름이 바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