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topos (알라모!) 날 짜 (Date): 1994년08월21일(일) 12시45분24초 KDT 제 목(Title): "무"(없을) 2 앞서 올린 글에 이어서 .... 다만, 그렇게 알고 구도의 마음을 세운 이가 있고, 그것을 모른 채 이리저리 떠밀리면서 거짓 나의 어리석음과 함께 고통 받고 있는 사람 이 있는 것입니다. 알고서 찾는 이는 어느 때인가는 그 원을 이룰 날이 있으려니와, 모른 채 떠밀리는 사람이 도에 들기는 지극히 기약하기 어렵다고 하겠읍니다. 세상에 태어나되 인간으로 태어나기가 어렵고, 인간으로 태어나되 불법의 참이치를 만나기가 어려우며, 불법을 만나되 성불하기는 다시 어려운 일이라고 하겠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불법을 믿고 배우는 까닭은 우리 자신 청정한 스스로 성품을 확철하게 보고 밝혀서 부처를 이루자는 데에 있읍니다. 부처님은 거룩하신 분인데 내가 감히 어찌 부처를 이루랴 하는 중생심은 바람직하 다고 볼 수 없읍니다. 그런 마음은 중생이라는 굴레에 또 하나의 굴레를 씌우는 것과 같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는 것이어 서 누구든지 다 불도를 이룰 수 있다고 가르치셨읍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의 숭배를 받고자 오신 것이 아니라, 중생에게 부처되는 길을 가르 치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을 숭모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우리는 한마음의 이치를 배워야만 합니다. 자기 자신만을 의지하는 꿋꿋 하고 씩씩한 마음을 가지면서도 부처님과 선지식앞에 찬탄과 귀복심이 깃들게 하십시오. 부처님과 선지식께 드리는 경배가 바로 나 자신의 참성품에게 드리는 경배이며, 부처님과 선지식께 드리는 공양이 바로 나의 주인공에게 드리는 공양인 것입니다. 필경은 부처님의 마음도, 보살.신중의 마음도, 역대 조사님네들과 선지식들의 마음도, 조상님들과 온갖 중생들의 마음도 다 나의 주인공 그 한마음 속에 함께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한마음과 함께하는 공양은 일체제불.일체중생과 더불어 올리는 공양인 것이 니, 언제나 나의 근본인 주인공 한마음을 잊지 않도록 하십시오. 나무에 비유하여, 내가 열매라면 주인공은 열매를 있게 한 꼭지와 같고, 내가 꼭지라면 주인공은 그 꼭지가 매달린 가지와 같으며, 내가 가지라면 주인공은 그 가지가 돋아나온 줄기와 같읍니다. 그리고 내가 줄기라면 주인공은 비유컨대 뿌리와 같으니 뿌리는 나무가 있게된 마지막 근본인 것 입니다. 뿌리로부터 여러 가지가 나오고 여러 가지에서 잎과 꽃과 열매가 나왔듯이 나의 모든 생각, 모든 활동, 모든 힘, 모든 공덕과 업들도 그 주인공으로부터 나오지 아니한 것이 없읍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나의 참된 근본이라고 하겠읍니다. 내 몸, 내 생각은 돋아났다 곧 스러지는 가지와 잎이요, 뿌리는 가지과 잎이 떨어지고 꺾여지더라도 새로운 가지와 잎을 내는 근본이니 우리는 그 주인공을 믿고 의지하지 아니할 수 없읍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나의 주인공이 나무의 뿌리처럼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나무의 뿌리처럼 육안으로 볼 수 있는 고정된 모양이 있다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부처님께서 이르시기를, 만약 모양이나 음성으 로써 부처를 구한다면 필경 여래를 볼 수는 없으리라고 하셨읍니다. 마음을 고요히 가지고 눈 아닌 눈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인공은 차라리 뿌리없는 나무라 할 것이며, 한 점 찍어서 맛볼 수도 없는 허공과도 같이 형상과 감각을 초월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무의 뿌리는 씨앗에서 생겨난 것인데, 그 씨앗은 이전의 나무에 서 생겨난 것이며, 그 이전의 나무는 또 그 이전의 씨앗에서 생겨난 것으로서 그 소급됨은 끝이 없기 때문에 시작을 알 수 없읍니다. 그런가 하면 지금의 나무에서도 씨앗은 생겨나서 다시금 미래세가 다하도록 다음의 나무, 다음의 씨앗으로 이어져 갈 것이니, 정녕 나무의 참성품은 어떤 것이겠읍니까. 어제 의 나무, 그저꼐의 나무, 전의 나무, 전전의 나무와 씨앗도 흘러가고 변화하여 참성품이라 할 수 없으니 이를 두고 어떻다 하겠읍니까. 그뿐만이 아닙니다. 하나의 씨앗이 자라서 나무가 되려면, 갖가지 인연의 공덕 으로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심어질 땅과 거름과 햇볕과 물이 있어야 하고, 그밖에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갖가지 인연들이 서로 어울려서 한그루의 나무는 싹트고, 자라고, 잎과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나무 한 그루의 문제는 마침내 온 우주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로 파악됩니다. 이렇게 삼계는 법의 망으로 서로 인연지어 얽혀서 서로가 서로에게 이로움을 주기도 하고 해를 입히기도 하는 것이니,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게 경솔 할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읍니다. 우리들이 하는 작은 행동 하나, 말 한마디 가 어김없이 이 법계에 울려 퍼지고 있으니 법망의 세밀함이란 두렵기 그지없다 하겠읍니다. 그러면서도 일체 유위법이 흐르고 변하여 영원하지 못하고 텅비었으니, 세상의 이치를 살피자면 마치 마술사가 헛것을 허공 중에 나타냄과 같이 그 텅비어 없는 곳으로부터 나타난 것으로, 그 뿌리도 근원도 없읍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닥치 는 고는 고가 아니며, 낙이 낙이 아니니 오직 영원한 것은 진리, 즉 주인공이 있 을 뿐입니다. (주) == 이 내용은 대행스님의 법어를 김정빈 아찌가 엮어 낸 책에서 발췌하고 있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