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크로체) 날 짜 (Date): 1996년04월04일(목) 15시46분38초 KST 제 목(Title): 왜??? 같은가? 다른가? 거기에 무슨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까? 왜 더이상 말하지 않았는가? - - - 왜? 라고 묻습니다. 뭔가 그 이유가 있을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에 대한 원인분석과 대안제시적 사고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들은 항상 왜? 라고 묻습니다. 그것은 시간의 흐름을 단선적으로 파악하여 불안한 미래를 개선해보고자 하는 데서 나옵니다. 우리들은 항상 묻고 스스로 대답하고 대안을 제시하면서 자기가 만들어 놓은 관념의 충돌-갈등 속에서 생명력을 소진시켜 버립니다. 생명력이 공허한 결론을 내기 위한 사고의 흐름 속으로 낭비되고, 진짜 자신의 내면은 어떤 다른 무엇을 갈망하는데, 그것을 억누르기 바쁩니다. 다른 방식으로 충족시키려 합니다. 그러면서 가끔 진지하게 돌아보면서 `왜 사는가? 무엇때문에?' 하고 다시 묻습니다. 과거 수없이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지만 며칠 안가서 다시 잊어버렸던 씁쓸한 기억 때문에 이제는 더이상 그런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삶이 가끔 공허해질 때가 찾아오면 어쩔줄 모릅니다. 죽고 싶어집니다. 우리를 얽어맨 것은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관념의 체계입니다. 자승자박이지요. 일체유심조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은 마음이 모든 것이라는 뜻인데,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일체유심조'가 틀렸다고 믿거나 아예 모르면 일체는 마음과 무관하게 흐릅니다. (다시 말하자면 믿음의 중심이 없어 에너지가 불필요한 곳으로 분산됩니다.) 일체유심조를 받아들이면 그 순간부터 그것은 위력을 발휘합니다. 서서히. 점점 가속도가 붙어, 일정 수준을 넘게 되면 영원히 꺼지지 않는 발전소가 됩니다. 그러므로 일체유심조는 믿으면 힘을 발휘하는 진실이요, 안 믿어도 말 자체의 의미에 의해 파괴되면서 적용되는 절대 진리입니다. 이렇게 절대진리는 어떤 경우에나 적용됩니다. 깨달음이라는 것. `나는 깨닫지 못했다'는 생각이 깨닫지 못한 중생을 만듭니다. 이 즉각적인 실존이 무엇인가하고 묻기 시작해서 `대상'으로서의 `나'의 실체를 인식하려고 발버둥쳐봤자, 대상으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찾을수 없습니다. 절망의 밑바닥에 도달해서 모든 노력이 멈출때 드러나는 `그것'. 그 `찾는자', 즉 그 의문을 가지고 찾아헤메는 주체가 찾던 바로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찾을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잃을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연기에 의해 외계와 동시에 나타나고 동시에 사라지므로, 태어나지도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객관이 없는 상태에서 주관의 생멸은 환상이며 거꾸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결국 `나'라는 인식은 우주가 존재하는 한 태어남이 없이 존재하고, 우주가 사라지면 나도 사라지는데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영원히 죽는 것,즉 죽음조차 없는 것입니다. ~~~~~~~~~~~~~~~~~~~~~~~~~~~~~~~~~~~~~~~~~~~~~~~~~~~~~~~~~~~~~~~~~~~~~~~~ "All those moments will be lost in time, like tears in rain. Time to die." - Roy Batty, <Blade Runner> December Croc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