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3월19일(화) 17시35분07초 KST 제 목(Title): [RE] 불교란,깨달음이란,극락이란 >우리가 괴롭고 힘들때면 종교에 의지합니다. >그러나 종교가 전부다는 아닙니다. >종교는 어디까지나 종교일뿐 사회 전체는 아니지요. >종교없이도 행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제일 부러워하는사람들 >이죠. 사회적인 개념으로는 종교를 알 수 없습니다. 종교에서 보는 사회가 보편성일 수 있지만, 사회가 특수성이기 때문에 사회적 시각으로 보면 종교는 특수한 영역처럼 보이나 전체 사회라는 곳에서 종교를 봄은 마치 갈대로 하늘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깨달음이란 무엇일까요? >깨달은 사람이 부처일까요? >깨달으면 행복한가요? >깨달으면 밥안먹고 삽니까? >깨달으면 하늘을 날아다니나요? 정직해 집니다. 모르는 걸 안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들 무슨 소용있겠습니까? >누가 와서 그 깨달은 사람에게 소원이 있으니 들어달라고 합시다. >과연 그 사람이 그 소원을 들어 주는 것이 옳습니까 아니면 >안들어 주는 것이 옳습니까? 그사람이 자기종교를 믿기때문에 >소원을 들어주어야 합니까? 아니면 자기종교를 믿지 않기때문에 >그 소원을 안들어주어야 합니까? 그냥 행동을 합니다. 들어줄 상황이면 들어주고 들어줄 상황이 아니면 들어줄 능력이 없다고 말합니다. >왜 우리는 괴로운가요? >왜 우리는 꼭 행복해 지려고 노력해야 합니까? >삶이란 고통 스럽다는데 누가 그렇게 당신을 고통스럽게 합니까? >생로병사를 벗어나기 위애 해탈을 해야 한다는데 나고 죽음이없으면 >꼭 행복합니까? 한번 태어나면 한번 죽는 것은 당연 하지 않나요? >여기 막대기 하나가 있다고 합시다. 한쪽 끝이 있다면 다른쪽 끝이 >반드시 있지요. 짧거나 길거나 차이 일뿐 아닙니까? 그건 가정의 세계가 아닙니다. 생노병사가 고통스럽다는 것은 가정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입니다. 지금 고통스럽기에 해탈을 향하는 것이지, 해탈해도 별거겠느냐는 것은 완전히 가정의 세계입니다. >왜 우리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열중하지 못하나요? >왜 남이 자기 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다 내가 만든 일이고 내가 원하는 일 아닙니까? >돈 적게 벌면 어떻고 가진게 없으면 어때요? >나를 필요로하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능력을 나누어 주는 기쁨 같은것을 >왜 모르시나요? 기쁨을 기쁨 자체로 느끼고 슬픔을 슬픔 자체로 느끼지만 그것에 끄달려 다니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남보다 훨씬 더 기쁨을 누리고 남보다 훨씬 더 고통을 느껴도 과거의 것이나 미래의 것을 끌고다니지를 않습니다. >극락이 누가 있다고 하던가요? >갔다 와본 사람이 있답디까? 극락은 나눔을 기쁘게 받는 곳이지 특정 장소가 아닙니다. >극락 --- 극단적인 즐거움이 있는곳. >어긴 즐거움만 있나요? >즐거움이 무엇입니까? 매일 맛있는것만 먹는 데 입니까? >아니면 먹지안아도 배불른 곳 입니까? >정치가들은 거기 가면 득표를 많이 할 수 있나요?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매일 고기만 먹나요? >여색을 좋아하는 사람은 원하는 여자를 맘껏 취할 수 있나요? >극락은 그렇다면 없는 것 일까요? 이와같은 곳은 극락이라고 하지 않고 천상이라고 합니다. 천상은 권태로 끝을 맺는 욕망이 만족되는 세계이고 여전히 윤회하는 세계입니다. >거기에는 가릉빙가의 음악이 흘러나온다는데 나는 서태지 음악이 >더 좋은데 과연 즐거움을 얻을 수 있을까요? 극락에도 축생이 있고 뭐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현상적으로는 똑같이 있습니다. 가릉빙가의 음악은 서태지의 음악과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무엇 때문에 괴로와 할까요? >세상이 미워지고 사람이 미워지고 자신이 미워지고 하십니까? >그런 분들은 극락에 가지 마시고 아프리카 르완다 또는 >보스니아 전쟁터에가서 한번 그런 말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부처님에게 기도하면 복을 주나요? >자신이 쌓지도 않은 복을 어찌 부처님이 주시나요? >그럼 깨달음을 주시나요? >그럴 능력이 있었다면 2500년 전에 중생을 다 해탈 시켜 주시지 >왜 안그러셨을까요? 이미 완전하게 복으로 충만된 생명이라는 것을 2500여년전에 확인시켜 주었고 모두 다 완전생명이라는 것을 확인해 주셨지만 아니라고 하고 있을 뿐입니다. >생로병사가 즐겁지 않으십니까? 목에 칼이 들어와도 즐겁다 말하기는 영 쉬운 일은 아니죠. >나에게 떨어진 괴로움들이 내가 괴로와서 괴로운건가요, 아니면 >괴로운일이 괴로움을 주어서 괴로운가요. 내몸이 괴로운가요? >내 생각이 괴로운 가요? 몸은 점점 나이가 들어 죽어가는데 , >왜 생각은 점점 줄지않고 늘어만 갈까요? 생각이 늘어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엄청나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잘 작동하는 겁니다. 잘 사는 겁니다. >깨달아도 별수 없습니다. 그저 세상을 살아가야죠. 그러나 >결코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마십시요. 세상은 세상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를 주세요. 나는 또 태어날수 있습니다. 세상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는 겁니다. 삶이 나오는 근원지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나는 또 태어나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에만 나이지 이 순간이 지나면 행복을 느낄 나도 남에게 나를 줄 나도 이미 다른 나입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어떤 나를 주어야 할까요? >그러나 채워지지 않는 질문이 있죠. 그럼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나고.. >누군가 그랬죠. 벼랑에 매달려 나무가지 하나를 잡고 있다는 기분으로 >살라고 뭐든지 그렇게 해보세요.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이런 기분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과 그렇게 살 수 밖에 없다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어서 이렇게 사는 것과는 아무래도 다르겠습니다. >자꾸 생각하지 마세요. 생각은 사념의 흐름일뿐 >그것이 자기자신은 아닙니다. >잘 관찰하세요. 예의 주시하세요. 자기 마음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사념의 흐름이 자기 자신이 아니지만 사념을 있는 대로 관찰하고 주시하는 것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념의 배경인 참모습에 대한 인정속에서 주시할 수 있지 그냥 주시하려는 노력은 마음을 더욱 억누릅니다. 생각을 많이 하건 생각을 하지 않건 그런것 하고는 별로 관계가 없고, 말을 많이 하건 침묵을 하건 그런 것하고도 별로 관계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