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3월18일(월) 17시26분55초 KST 제 목(Title): [불교신앙11] 11. 법회 : 이곳이 극락(極樂)이다 생사해탈(生死解脫)이란,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 육신은 죽지만, 이것이 나의 참생명이 죽는 것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입니다. 우리가 옷을 입고 다니다가 옷을 갈아입을 때, 옷이 바뀌어 지는 것이지 몸에는 아무런 영향이 없음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몸뚱이가 없어지더라도 '참생명은 결코 죽지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합니다. 염불(念佛)하는 사람이 죽으면 반드시 극락세계에 갑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죽은 다음에 극락세계에 간다고 하는데, 과연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보통은 심장이 멈추는 것을 죽음이라고 합니다. 죽으면 극락에 간다고 했으므로, 심장고동이 멈추면 극락갔다고들 생각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죽음이 참다운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글자 그대로 완전히 죽어야 합니다. 육신도 죽고, 육신에 대한 집착도 없어서, 다시는 육신을 갖겠다는 생각도 없는 사람만이 극락에 갑니다. 그렇다면 구태여 심장의 고동이 멈출 때까지 기다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일상생활에서 죽음을 확고하게 알게 되면 세상사는 의미가 달라집니다. 절대무한의 생명을 살고 있으면서 그것을 모르고 지내는 사람이 중생이기 때문에, 우리를 불러주시고 계시는 "나무아미타불!" 소리에 우리가 "예!"하고 대답하고 나가는 그것이 신앙의 참뜻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경우를 만나더라도, 기쁘기 한량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아주 행복하게, 아주 기쁘게 살고 있는 것같이 느껴지겠지만, 그 세계는 죽음으로부터 끊임없이 추적을 받으며 살고 있는 인생에 불과합니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란 '나의 참모습을 드러낸 소리'이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수행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염불은 내가 부처님을 불러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나를 불러주고 계신 소리에 응답하는 소리입니다. 성불하는 유일한 길은 "부처님을 믿고 염불하여 성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염불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수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부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거기에 맞게 살아갈 뿐입니다. 염불로써 부처님이 이루어 놓으신 성불에 동참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혹 염불수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이미 성불이 끝났기 때문에 염불할 필요가 없다", "부처님이 성불하셨기 때문에 나의 성불도 끝났다"고 하면서 염불을 하지 않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은 성불이 되었다는 사실 조차도 충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언제까지나 스스로를 중생이라고 규정하는 사람의 모습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이란, 중생세계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염불의 심리(心理)를 세 단계로 나누어서 생각하여 봅시다. 첫째 단계에서는, '생사(生死)가 있는 내가 생사가 없으신 부처님을 찾아가야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는 처음 종교에 입문해서 가지는 생각입니다. 다툼의 세계에 있는 내가 부처님을 찾아간다는 의미입니다. 둘째 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을 조금 더 깊이 하면,'내가 부처님을 찾아왔다는 말은 부처님께서 날 부르고 계시기 때문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째 단계에서는, 신앙의 의미가 한 등급 높아집니다. '부처님은 항상 문을 열어 놓고 계신다. 문을 열어 놓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찾아 온 것이다. 중생이 부처님을 찾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부처님이 문을 열어놓고 나를 기다릴 뿐만 아니라 나를 빨리 오라고 부르고 계신다. 그래서 내가 부처님을 찾아왔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볼 때, 법회(法會)에 몸을 담았다는 것은 참으로 뜻이 깊습니다. 지금 우리가 직접 몸으로 느끼지 못할지 모르지만,'나의 참생명, 부처님생명'을 외우고 나무아미타불을 들으면서 세상을 사는 우리들은 죽음으로부터 추적받고 있는 인생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법회에 나와서 나무아미타불을 듣고, 나무아미타불을 외우고 있는 순간순간이 영원한 가치가 창출되는 순간입니다. 이와같이 자랑스런 법회를 아끼고 법회에 나오는 열의가 있어야 합니다. 물론 바쁘고 몸이 아프고 고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법회가 열린다고 하면 그 법회에 나가기를 불속을 뚫고서라도 가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법문듣고 있는 이 자리, 우리가 자리한 법당은 이렇게 가치있는 자리이고 모임입니다. 그러므로 앞에 계신 분, 옆에 계신 분이 귀중한 인연이고 그 속에 끼어 있는 '나또한 귀중한 법우중의 한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언제나 가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