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croce) 날 짜 (Date): 2003년 3월 22일 토요일 오후 10시 18분 41초 제 목(Title): to staire 모범답안은 죽은 답안입니다. 어떤 것이 죽은 답안인고 하니 생각에서 나온 것, 알음알이에서 나온 것이 죽은 답안이요. 팔팔하게 지금 여기에 깨어있지 아니한 자아(아상)에서 발생되는 것은 모조리 죽은 답안이라고 합니다. 옛선사들이 어리버리 대답하는 제자의 뺨대기를 후려치는 것은 팔팔하게 살아있는 주인공을 일깨우기 위함이지 '모범답안'을 추궁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사가 제자를 한밤중에 불렀습니다. 제자에게 깨달음을 전수해줄테니 가까이 오라고 했습니다. "XX아!" "네!" 그때 선사는 호롱불을 훅! 하고 불어꺼버렸습니다. 이 순간 제자는 깨달음에 들어갔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이 제자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 그래서 깨달음이란 찬 물을 마셔보아 물이 찬 것을 아는 것과도 같다고 합니다. 선문답은 '생각'이나 '논리', '지식'에 있지 아니합니다. 통상 사람의 의식은 자동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100년을 살아도 채 한달을 깨어있지 못한 채로 숨을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禪에서 생각과 논리와 지식에 근거해 말하는 것을 높이 쳐주지 않고 고함치고 후려치는 까닭입니다. 팔팔하게 살아있는 이것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것이 선불교의 핵심이며, 틱낫한 스님이 줄곧 이야기하는 비파사나라는 관법도 결국 이를 위한 것입니다. 관찰을 면밀히 하여 마음을 고요히하고, 지극히 마음이 고요해지면 맑아지고, 맑아지면 밝아지며 곧 통한다는 것입니다. 통하여 다시 어두워지지 않는 경지를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하지요. 초견성, 일별 이후에도 습기를 제하고 제하여 불퇴전과 행주좌와 어묵동정에 항상하며 자기가 사라져버리고, 어둠에 다시 물들지 않을 때를 위해 수행하는 것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