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2월07일(수) 01시10분20초 KST 제 목(Title): 뭐라 이야기 해도 좋지만... 그렇게 그냥 논점을 피하지는 마십시요. 아무리 나는 진아 그 자체다라고 말해도 그것은 크로체라는 삶과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크로체님은 무엇을 하겠습니까? 무엇을 하자는 것입니까? 묻는 물음에 그 물음은 가치가 없다 그렇게 말하면서 어떤 사랑을 하시겠습니까? 인과와 연기에서 자유로움... 작년에 핀 진달래와 금년에 핀 진달래는 분명히 다른 진달래이지만 그래도 다 진달래입니다. 윤회가 없다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한 것을 모르기에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수도 없이 많은 진리에 대한 설명도구와 용어가 있습니다. 방법에 의해서 도에 들어갈 수는 없으나 즉설주왈로 수도 없이 많은 삶의 궤적을 이야기 합니다. 그렇때 마다 크로체님은 다음과 같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본질이 아니야... 그렇다면 결국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의 이원론을 세상에 만들게 됩니다. 말로는 부구부정을 말해도 크로체님의 말에는 본질과 본질이 아닌 것이 따로 있습니다. 윤회를 인정하는 마음의 세계에서 윤회는 실제합니다. 그럼 인정하는 마음말고 다른 마음을 말하면서 크로체님은 언제나 허상속을 살 생각인가요?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는 모두 같다가 아닙니다. 그런게 싫으면 그냥 불교는 틀렸다 그렇게 말해야 합니다. 도데체 얼마나 시간이 많으면 크로체님은 부처를 판단하고 노자를 판단하고 예수를 판단할 시간이 있는 지를 모르겠군요. 모르면 모른다고 말한다는 사람이 어째서 묻는 내용에 대하여 안다 모른다가 아니라 엉뚱한 변호를 해야 되나요? 그리고 사람이 사용하는 습성의 말을 가지고 그가 견성정도 했다.. 깨달았다는 그런 투의 말을 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인도의 상키야라는 철학과 명상집단의 체계일 뿐입니다. 선가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일면불 월면불... 깨달아도 크로체님은 그냥 크로체입니다. 그리고 한번 더 생각을 해보십시요. 만일 믿음의 정도라고 그가 부처가 아니고 깨달아야 부처라는 말이 있을 수 있는 말인지를요.. 다음의 쓰임의 문제가 나왔으니 더불어 말할 것은 깨친후에 쓰임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오도하면 쓰임은 익히는 것이 나니라 쓰임 자체가 곧 깨달음과 동시인 것만을 불교에서는 깨달음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살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깨침은 깨침의 환상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