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hyoo (문사수) 날 짜 (Date): 1996년01월31일(수) 22시29분39초 KST 제 목(Title): [참선2에 대한 답변] 이뭐꼬 이뭣꼬라는 화두는 본질을 직접 묻는 것입니다. 사실 이뭣꼬라고 그냥 묻기 보다는 "부처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니 이 뭣꼬?" 이렇게 물어나가는 것이 비교적 재미있게 화두를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흔히 화두가 어떤 특별한 꼬투리를 가지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화두란 끝없는 존재에 대한 물음을 가지고 사는 삶입니다. 불교라는 종교에서 마음공부하는데 세가지를 강조해왔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생명이 중생이 아니라 마음이 곧 부처라는 것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과 그 믿음 아래에서부터 움터 나오는 부자유성에 대한 의심과 물음 그리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부자유스러운 삶을 살고 있는 자신에 대한 분노를 강조합니다. 이 세가지로 공부하는 것이 참선의 삶입니다. 화두를 의심하는데 아무생각이 들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화두가 하나의 목적상태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하면 진정으로 자신의 존재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서 "이뭣꼬"를 해야지 하는 이뭐꼬 자체가 그만 목적성이 되었을 경우에 마치 주문을 외우는 것과 같은 맹한 상태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뭐꼬를 하면서 이뭐꼬를 하려고 하는 이것은 또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뭐꼬라는 명제를 어디에다가 던지고 있는가는 스스로 냉철하게 생각하셔야 합니다. 이뭐꼬가 목적성이 되어서 자꾸 이뭐꼬라는 언어에 잡히게 되면 다람쥐 쳇바퀴와 같은 그런 상태를 유지하게 됩니다. 이는 사실 믿음이 확고하게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화두의심을 하기 때문에 기인되게 됩니다. 그리고 화두를 의심하는데는 옛부터 강조된 것이 있습니다. 무엇이냐하면 번뇌망상과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번뇌망상과 싸울 것이 아니라는 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무심법이 아무 생각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번뇌망상이 들면 그 번뇌망상에다가 이 번뇌망상이 무엇인지를 이뭐꼬 해야 하는데 이뭐꼬가 목적성이 되면 화두가 번뇌와 망상을 억눌러 버리게 됩니다. 참으로 화두공부에서 방해되는 사항은 생명의 분출을 억누르는 마장입니다. 번뇌망상이 없는 삶은 시체와도 같습니다. 번뇌망상은 억눌르거나 피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번뇌자체를 냉철하게 의심하면서 번뇌의 주인에 대하여 의문을 던져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번뇌의 주인은 누구인가.. 번뇌가 일어나는 이것은 무엇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부처도 마음도 중생도 아닌데 이뭐꼬" 그러므로 화두가 목적성 자체가 되었거나 아니면 공부가 안되어서 답답할 때는 억지로 할 것이 아니라 번뇌망상이 죽끌듯한 팔딱팔닥거리는 부지런히 부딪히는 생활과 자신의 생명이 죽지않고 절대적인 부처생명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선결적으로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자리에 앉거나 말거나 끝없이 생명의 도약이 번뇌망상으로 드러나는 그 속에서 피하지 말고 물을을 던지는 것입니다. 이 번뇌망상 이것은 무엇인가? 이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번뇌망상의 주인은 부처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라는데 이것이 무엇일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