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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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5월  7일 월요일 오전 11시 51분 51초
제 목(Title): '내가 있다'는 느낌


'내가 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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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잠에서 깨어나면 세계가 갑자기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매일 경험하는 
문제입니다. 세계는 어디서 옵니까?
답: 어떤 것이 생겨날 수 있으려면 그보다 먼저, 그것이 그에게 생겨나는 어떤 
사람이 존재해야 합니다. 모든 나타남과 사라짐은 어떤 불변의 배경에 대해 
어떤 변화가 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문: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는 저는 의식이 없었습니다.
답: 어떤 의미에서 말입니까? 잊어버렸다는 것입니까, 아니면 경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까? 의식이 없을 때에도 경험을 하지 않습니까? 앎이 없이 
그대가 존재할 수 있습니까? 기억이 없었다, 그것이 그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증거입니까? 그리고 그대가 자신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하나의 실제적인 
경험이라고 이야기한다면 그것이 타당하겠습니까? 그대는 마음이 존재하지 
않았다고도 말하지 못합니다. 누가 부르면 그대는 깨어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깨어나면 '내가 있다'는 느낌이 먼저 있지 않았습니까? 잠을 자고 있을 때나 
기절했을 때에도 어떤 종자 의식(seed consciousness)이 존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다가 깨어나면 '내가―육신이―세상 안에 있다' 하는 경험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연달아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모두 동시에 
일어납니다. 한 세계 안에 한 육신을 가지고 있다는 단 하나의 생각이지요. 
어떤 사람이거나 다른 사람이 아니고서 '내가 있다'는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까?
문: 저는 항상 자신의 기억과 습관을 가지고 있는 어떤 사람입니다. 저는 다른 
어떤 '내가 있다'도 알지 못합니다.
답: 아마 어떤 것이 그것을 알지 못하게 가로막겠지요. 다른 사람들이 아는 
것을 그대가 모른다고 할 때, 그대는 어떻게 합니까?
문: 저는 그들의 지시에 따라, 그들이 그것을 알게 된 원천을 추구합니다.
답: 자신이 단지 하나의 육신인지, 다른 어떤 것인지, 아니면 전혀 아무것도 
아닌지를 아는 것이 그대에게는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대의 모든 문제는 그대의 
육신의 문제라는 것을 모릅니까? 즉, 음식, 옷, 주거, 가족, 친구, 이름, 명예, 
안전, 생존 등, 이 모든 것이 그대 자신이 단지 하나의 육신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의미를 상실합니다. 
문: 제가 육신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은 이익이 있습니까?
답: 그대가 육신이 아니라고 하는 것도 그다지 맞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대는 일체의 몸이기도 하고 심장이기도 하고 마음이기도 하며, 그 
훨씬 이상이기도 합니다. '내가 있다'는 느낌 속으로 깊이 들어가십시오. 
그러면 알게 됩니다. 어디에 잘못 두었거나 잊어버린 물건을 그대는 어떻게 
찾습니까? 그것을 내내 염두에 두고 있다가 문득 기억해 내지요. 존재의 느낌, 
'내가 있다'는 느낌은 가장 먼저 떠오르는 느낌입니다. 그것이 어디서 오는지 
자신에게 묻거나, 아니면 그저 그것을 고요히 지켜보십시오. 마음이 움직이지 
않고 '내가 있다' 안에 머무르면 그대는 어떤 상태에 들어가는데,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체험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애쓰고 또 애쓰는 것이 그대가 해야 
할 일의 전부입니다. 어쨌든 '내가 있다'는 느낌은 항상 그대에게 있지만, 단지 
그대가 거기에 육신, 느낌(감정), 생각, 관념, 소유물 등 온갖 것을 덧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자기동일시물自己同一視物(self-identifications)이 
그대를 오도誤導합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그대는 자신을 그대의 본래 모습과 
다른 어떤 것으로 착각합니다.
문: 그러면 저는 무엇입니까?
답: 그대가 뭐가 아닌지를 알면 충분합니다. 그대가 무엇인지는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앎이란 것이―지각한 것이든, 개념으로 인식한 
것이든―이미 알려진 것을 가지고 묘사하는 것을 의미하는 한에서, 자기 
앎(self-knowledge)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무엇이다라는 것은, 그것을 아주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부정해 버리지 않는 한, 
묘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대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즉, 
'나는 이것이 아니다. 나는 저것이 아니다'라는. '이것이 나다'라고 말해봤자 
그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것은 허튼 소리일 뿐입니다. 그대가 '이것'이나 
'저것'으로 내세울 수 있는 것은 그대 자신일 수가 없습니다. 확실히, 그대는 
다른 '어떤 것'일 수가 없습니다. 그대는 지각할 수 있거나 생각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그대가 없이는 어떤 지각이나 생각도 있을 수 
없습니다. 그대는 가슴이 느끼고, 마음이 생각하고, 몸이 움직이는 것을 관찰해 
보십시오. 지각하는 행위 자체가 그대는 자신이 지각하는 그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대 없이 지각이나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까? 어떤 경험은 
(누구에겐가) '속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나와서 그것을 자기 경험이라고 
선언해야 합니다. 경험하는 자 없이는 그 경험은 실재하지 않습니다. 경험에 
실재성을 부여하는 것은 경험자입니다. 그대가 가질 수 없는 경험이라고 하면, 
그것이 그대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문: 경험자라는 느낌, '내가 있다'는 느낌, 그것도 하나의 경험 아닙니까?
답: 분명히, 경험되는 모든 것은 하나의 경험입니다. 그리고 모든 경험에 
있어서 그것을 경험하는 자가 일어납니다. 기억은 연속성의 환상을 창조합니다. 
실제로는 각 경험에는 그 자신의 경험자가 있으며, 동일성(identity)의 느낌은 
모든 경험자-경험 관계의 뿌리에 있는 공통 인자에 기인합니다. 동일성과 
연속성은 똑같지는 않습니다. 꽃 하나 하나가 자신의 색상을 가지고 있지만, 
모든 색상은 동일한 빛에 의해 나타나듯이, 많은 경험자들도 나뉘어 있지 않고 
나눌 수도 없는 자각自覺(awareness) 안에서 나타나는데, 이 자각은 기억 
안에서는 각각 분리되어 있지만, 본질에 있어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이 본질이 
모든 경험의 뿌리요, 토대이며, 무시간 무공간의 '가능성'입니다. 
문: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답: 그것을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것이니까요. 만약 그대가 
기회를 준다면, 그것이 그대를 얻겠지요. 비실재非實在에 대한 집착을 
놓아버리십시오. 그러면 실재가 얼른 그리고 유유히 자기 자신 속으로 발을 
들여놓을 것입니다. 그대 자신이 이것이나 저것이라고, 혹은 이것이나 저것을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러면 그대가 일체의 근원이자 심장이라는 
깨달음이 올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선택이나 편애가 없고 집착도 없는 큰 사랑, 
모든 것을 사랑받을 가치가 있게 하고 사랑스럽게 만드는 어떤 힘이 올 
것입니다. 

 

-삿상 위드 니사르가다타 마하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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