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17일 토요일 오전 10시 59분 11초 제 목(Title): 이규행/ 이홍지와 법륜공에 대한 올바른 이 이규행/ “법륜공과 한국의 정통 氣 수련법은 같은 뿌리” “법륜공과 한국의 정통 氣 수련법은 같은 뿌리” 李洪志와 法輪功에 대한 올바른 이해 이규행 <언론인·현묘학회장> -------------------------------------------------------------------------------- 중국내에 1억명의 회원과 2백만명의 핵심회원을 거느리고 있다는 파룬궁(法輪功)과 그 창시자 리훙즈(李洪志)가 최근 중국 당국의 대대적인 탄압으로 연일 세계 언론의 초점이 되고 있다. 중국 당국은 파룬궁과 리훙즈를 사이비 종교와 그 교주쯤으로 관제언론을 동원해 연일 비하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파룬궁은 과연 혹세무민의 사이비 종교에 불과한 것일까. 기 수련법의 대가인 이규행 현묘학회장은 리훙즈의 파룬궁은 우리나라 전통 기 수련법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의 전통 도맥과 리훙즈의 파룬궁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일까, 파룬궁의 실체는 무엇인가, 중국이 정말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아봤다. 필자가 이홍지(李洪志)와 법륜공(法輪功)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리 겨레의 전통 기 수련법과의 연관성 때문이었다. 내가 구태여 일반 매스컴에서 쓰는 표기법인 ‘리훙즈’ 또는 ‘파룬궁’이라는 용어를 제쳐놓고 한자의 우리말 발음대로 쓰는 까닭도 우리와의 관련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사실 이홍지 자신 이름의 영문 표기를 Li Hong Zhi 즉 ‘리홍지’로 쓰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의 매스컴이 왜 ‘리훙즈’라고 쓰는지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다. ‘파룬궁’만 하더라도 그렇다. 법륜공의 고유성을 나타내기 위한 표기 또는 현지 발음대로의 표기라고 이해할 수도 있지만 ‘법륜’이란 말을 오히려 우리말 발음대로 쓰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법륜이라는 말은 불교에서 쓰는 용어다. 법륜이란 쉽게 풀이해서 불법(佛法)의 핵심으로써 우주의 순환원리를 뜻하는 것이다. 우주의 창조나 우주의 순환이 둥근 원으로 이루어졌다는 생각을 나타낸 것이 바로 법륜이다. 법륜을 우리나라 선도(仙道)에서는 ‘주천(周天)’이라고 부른다. ‘주천’이란 천도(天道)를 돈다(周)는 뜻이다. 법륜과 마찬가지로 우주를 둥글게 회오리하는 것이 바로 주천이다. 선도에서는 인간을 소우주(小宇宙)로 보고 대우주(大宇宙)와의 연관 속에서 수련하도록 하고 있다. 우주에서 기운이 주천하듯 사람의 몸에서도 기운이 원만하게 돌도록 해야 득도(得道)할 수 있다는 것이 선도의 가르침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도에서는 이른바 소주천(小周天)과 대주천(大周天)을 매우 중요한 공법으로 손꼽는다. 소주천이란 몸통에 기운이 도는 것을 뜻한다. 이른바 단전호흡을 통해 연정화기(煉精化氣)가 돼서 기운이 단전으로부터 하강(下降)하여 성기(性器)와 항문(肛門) 사이의 회음(會陰)을 통과하여 등줄기를 타고 올라가 머릿골 정수리의 백회(百會)를 지나 인당(印堂)을 거쳐 앞가슴 중간과 배꼽으로 내려가 단전에 이르는 과정을 소주천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대주천이란 기가 비단 몸통 뿐만 아니라 전신(全身)을 두루 도는 것을 뜻한다. 소주천이 기 수련의 기초과정이라면 대주천은 그 다음 단계의 중급과정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홍지가 법륜공이란 용어를 고집하는 이유 이홍지의 법륜공은 다른 말로 표현하면 주천공이랄 수도 있다. 그런데 이홍지가 주천공이란 말 대신 법륜공이라고 쓴 까닭은 두가지 점에 연유한다. 첫째, 일반적으로 선도에서 말하는 주천은 상하(上下)의 운행을 뜻하는 것인 데 비해 이홍지의 법륜은 좌우(左右)의 평면적인 원 운동을 뜻하는 것이다. 이홍지의 법륜공은 따라서 소주천이나 대주천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이라고 풀이되기도 한다. 둘째, 이홍지의 법륜공은 불가(佛家)와 도가(道家) 그리고 대도(大道)의 스승으로부터 전수받은 비전(秘傳)의 공법을 통합해 새롭게 만든 것이기 때문에 법륜공이라고 표방했다는 이야기다. 이홍지가 오랜 수련 끝에 세상에 나와 그의 공법을 밝히면서 펴낸 “중국법륜공”(中國法輪功)이란 저서에 보면 그의 수련 전 과정이 소상하게 밝혀져 있다. 이홍지는 1951년 5월13일 중국 지린(吉林)성 궁주링(公主嶺)시에서 출생했다. 그런데 이홍지의 생일과 관련, 지금 중국의 공안당국은 맹렬하게 비난의 화살을 퍼붓고 있다. 중국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홍지의 본래 생일은 52년 7월7일이었는데 94년에 호적을 정정했다는 것이다. 이홍지가 그렇게 고친 까닭은 51년 5월13일이 음력으로 석가탄신일인 4월8일에 해당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중국 당국의 설명이다. 다시 말해 이홍지 스스로 석가모니의 환생임을 내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생일까지 뜯어고쳤으며 그로 미루어 봐도 사교(邪敎)의 교주(敎主)가 분명하다고 중국 당국은 비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홍지측은 필자에게 보낸 해명을 통해 중국 당국의 설명이 전혀 터무니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인구가 10억명이 넘는 중국에서 신분증이나 호적의 날짜가 잘못 기재되는 실수는 비일비재하며 이홍지의 경우도 그런 경우에 해당할 뿐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뿐만 아니라 이홍지의 생일은 문화혁명의 와중에 잘못 기재되어 군에 입대했을 때 정정한 일이 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94년 창춘(長春)시 공안당국에 의해 정식으로 정정됐다고 한다. 이홍지의 생일이 음력으로 석가탄신일과 같은 점을 비난의 첫 대상으로 삼는 데 대해 이홍지측은 두가지 점에서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날짜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그날 태어난 사람은 모두 부처의 환생이란 말인가. 중국에는 그날이 생일인 사람이 무려 10만명이 넘는데 그날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둘째, 부처의 깨우침 정도의 수준에 이르려면 반드시 부처와 같은 생일이어야만 하는가. 호적 정정의 실무적인 차원의 것을 억지로 문제삼는 것이 어처구니 없다는 주장이다. 이홍지의 3단계 수련 과정 이홍지는 네살 때부터 수련을 시작했다고 한다. 불가의 독전대법(獨傳大法) 제10대전인(第十代傳人) 전각법사(全覺法師)가 친히 전수한 공을 받아 이른바 ‘진·선·인’(眞·善·忍)이라는 최고의 법문(法文)을 수련했다고 한다. 이때 전각법사는 세존자의 참뜻을 깨우쳐 주었는데 ‘진’이란 바로 진실한 일을 하며, 진실한 말을 하며,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하지 않으며, 일을 잘못했어도 감추지 않고 장래에 반본귀진(返本歸眞)에 이르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선’이란 바로 자비심이 있어야 하고 남을 얕보지 않으며 약자를 동정하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며 남을 돕는 것을 즐기고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고 스승은 가르쳤다. ‘인’은 곤란할 때나 굴욕을 당했을 때 널리 생각하고 견디어 내며 원망하지 않고 마음에 품거나 보복 않으며 고생 중의 고생을 겪으면서도 보통 사람이 참을 수 없는 것을 참아내는 것을 일컫는 것이라고 스승은 풀이해 주었다. 어린 이홍지는 8년 동안이나 전각법사의 수련을 받았다. ‘진·선·인’은 말하기는 쉬워도 실천하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때 이홍지는 득도하기 위한 심성(心性)의 기초를 단단하게 닦았다고 한다. 이를 바탕으로 상승대법(上乘大法)과 대신통(大神通)을 구비하게 됐다는 것이다. 여기서 ‘상승대법’이란 삼승법(三乘法)의 최고 경지를 뜻하는 것이다. ‘삼승’이란 하승(下乘), 중승(中乘), 상승(上乘)으로 구분되는데 ‘하승’이란 기초적인 공법을 뜻하는 말이고 ‘중승’이란 중급공법, ‘상승’이란 최고의 공법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신통’이란 이른바 천안(天眼)과 천이(天耳)가 열리는 초능력의 경지를 일컫는 것이다. 이홍지가 12세 되던 해 첫번째 사부가 떠나갔다. 그는 떠나면서 “또 다른 사부님이 와서 너를 가르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두번째 사부는 주로 그에게 도가(道家)의 공부를 가르치면서 주먹 쓰는 권법과 발로 차기, 그리고 창검술도 연마시켰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내·외공(內外功)도 동시에 수련시켰다고 한다. 두번째 사부는 2년간에 걸친 혹독한 수련을 끝마치면서 “나는 팔극진인(八極眞人)이라 부른다. 구름처럼 사해를 떠도니 정처가 없다. 내가 간 후 사회에 큰 재난이 있을 것인즉 너는 그에 구애받지 말고 열심히 연마해야 하느니라” 하고 훈계했다고 한다. 天眼과 天耳가 열리는 초능력의 경지 이홍지가 세번째 사부를 만난 것은 72년 그의 나이 21세 때였다. 이 스승은 도호(道號)를 진도자(眞道子)라고 하며 장백산, 즉 백두산의 대도(大道)를 전하러 왔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진도자는 앞의 두분 스승과는 달리 도복이나 도포를 입지 않고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났으며 어디에 거주하는지도 끝내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는 데도 종적이 없었고 가는 데도 흔적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엄했는지 시키는대로 하지 않으면 심한 체벌(體罰)을 가했다고 한다. 진도자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주로 내수공(內修功)이었는데 이를 통해 주의식(主意識)을 연마했다고 한다. 대도에서는 몸을 단련시키는 외공(外功)보다 심성과 덕(德)을 닦는 내공을 중시(重視)하며 특히 심성수련을 일상생활중에서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대도의 진도자는 74년 떠나갔고 그뒤에도 여러분의 사부들이 잠깐씩 다녀갔다는 것이 이홍지의 수련 경험담이다. 그런데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세번째 사부인 대도의 진도자이다. 왜냐하면 백두산에서 내려온 대도의 진도자라고 밝힌 것은 바로 우리 겨레의 전통적인 도맥과 연결고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 이홍지의 법륜공이 우리의 전통 수련법과도 직·간접으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시사해 주는 대목이다. 실제로 중국 당국이 이홍지를 비판한 문서를 보면 이홍지가 배운 장백산(백두산)의 공법은 그곳에 고래(古來)로 창궐했던 샤머니즘의 유형에 속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심지어 이홍지가 내세우는 법륜도(法輪圖)도 태극(太極)과 불교의 卍자(字)를 접합시킴으로써 샤머니즘의 정형을 나타낸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천하 道脈을 양분해온 백두산과 곤륜산 역사적으로 볼 때 배달민족 또는 밝민족의 도맥(道脈)은 백두산이 중심을 이룬다. 이에 반해 지나족(支那族) 또는 한족(漢族)의 도맥은 중심을 곤륜산(崑崙山)에 두고 있다. 오늘날의 중국은 물론 다민족(多民族) 국가이기는 하지만 주류는 한족이 차지하고 있다. 한족은 역사적으로 그들의 조상을 황제(黃帝)라고 일컫고 도맥 역시 황제에서 비롯한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황제는 선도를 동쪽 땅의 자부선인(紫府仙人)에게서 배웠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여기서 자부선인은 다름아닌 우리의 조상이며 동쪽 땅은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지역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중국의 식자(識者)들은 이 점을 애써 부인하려 든다. 자부선인에게서 배운 황제의 선도는 자연히 종주(宗主)의 땅에서 멀리 떨어진 곤륜산에 중심을 잡았고, 이어서 천축(天築), 즉 인도로 전파됐다.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출현으로 절정을 이룬 뒤 달마선사의 동행(東行)으로 다시 회귀해 온 것이 그동안의 선맥 흐름의 한가닥이라고 볼 수 있다. 아무튼 인도의 상황을 예외로 친다면 오늘날 동양의 선맥 또는 도맥은 양대 산맥으로 이루어졌다고 보아 틀림없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 양대산맥의 중심은 바로 장백산(백두산)과 곤륜산이다. 지금도 이 두 산에는 최고의 신선 또는 큰 스승으로 추앙받는 두 분의 신사(神師)가 건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백두산의 큰 스승은 백봉(白峯)신사라고 불린다. 물론 이밖에도 다른 여러 가지 이름으로도 불린다. 곤륜산의 큰 스승은 소륵(疏勒)신사라고 부른다. 백두산의 백봉신사에게는 9명의 수제자(首弟子)가 있고 그 9명의 제자가 각각 수많은 제자를 거느리면서 도맥을 관장하고 있다. 백봉신사는 한말(韓末)인 1905년 홍암(弘巖) 나철(羅喆)에게 백전(伯傳)을 통해 단군(檀君)의 가르침을 도맥으로 전한 바로 그분과 동일인물로 추정된다. 백전은 두말 할 나위 없이 백봉신사의 수제자의 한 사람이 아니었나 싶다. 백봉신사 명에 따라 이홍지에 大法 전수 가능성 예나 지금이나 백두산의 백봉신사는 그곳에서 천하의 운기를 조율하면서 좀처럼 거동하지 않는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그 제자들이 큰 스승의 명을 받고 도맥을 전수하고 행공의 가르침을 펴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른바 도(道)의 세계에서는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 도를 전수받는 것은 매우 예외에 속하는 일이다. 대개 스승이 제자를 골라 ‘법’(法)과 ‘인’(印)과 ‘결’(訣)을 전수하여 도맥을 이어가게 한다. 이렇게 볼 때 이홍지에게 대법을 전수한 진도자는 백봉신사의 명에 따라 그렇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점은 이홍지 자신도 분명하게 밝힐 수 없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진도자가 이 점을 분명히 밝히지 않았을 수도 있고 또 설령 스승의 가르침이 있었더라도 이홍지가 밝힐 입장이 아닐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이홍지는 스승 진도자가 떠난 뒤 군에 입대하여 지린성 삼림경찰총대(森林警察總隊)의 나팔수로 근무했고 82년에는 창춘시에 있는 한 식품회사의 보안계(保安係)에서 일했다. 그동안에도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84년부터 당대(當代)의 ‘기공’(氣功)에 대한 본질적인 연구를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일부 기공전수반에도 참가하여 체험을 쌓았다. 이런 이홍지의 경력과 관련해 중국 공안당국은 철저하게 신상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이홍지가 네살 때부터 세 사람의 큰 스승에게서 배웠다는 이야기는 새빨간 거짓말이며 자기를 신격화(神格化)하기 위한 조작극이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심지어 초등학교와 중학교의 성적표까지 공개하면서 평범한 아이였다고 발표하는가 하면 이홍지가 성장할 때의 이웃 사람들의 증언과 사회에 진출한 뒤의 생활 내용도 밝히고 있다. 중국 당국은 이홍지의 기공에 대한 경력을 88년 이후부터였다고 공개했다. 기공 경력이 짧은 사람이 초능력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위해 어릴 때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받았다고 속이고 있다는 것이 중국 당국의 공식 견해다. 이런 중국 당국의 발표에 대해 이홍지측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소에 부치고 있다. “거짓말은 영원히 거짓말”인데 어떻게 ‘참’을 수련하는 사람이 속임수를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어렸을 때부터 이홍지에게 큰 가르침을 전수한 스승들은 남들이 알 수 없게 은밀하게 공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그런 가르침을 공개적으로 베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부연된다. 이밖에 이홍지의 법륜공에 대해서는 그의 성장 본거지인 창춘에서 기공 수련을 받은 일부 제자들의 내부고발이 있었던 것으로 발표되었는가 하면 기존의 기공단체나 지도자들의 비난과 비판도 있었고 종교단체들의 반발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법륜공처럼 단시일 안에 광범위한 회원의 증가가 있게 되면 부작용이란 으레 있게 마련이다. 오늘날 법륜공의 회원은 중국 본토에서만 약 1억명이고 전세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고 한다. 1억명이라는 숫자는 98년말 현재의 중국공산당원 6천1백만명보다 많은 숫자이며 법륜공 회원 가운데는 다수의 공산당원이 가입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중국 당국은 1차적으로 법륜공에 가담한 회원들을 탈퇴시키면서 대대적인 법륜공 탄압을 시작했고 드디어 불법화 조치를 단행했다.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은 법륜공 같은 “전통적인 미신활동의 확장을 방치하면 우리 당(黨)의 진지(陣地), 즉 설 땅이 없어진다”고 밝혔다고 한다. 중국 당국은 유심론(唯心論)과 유신론(有神論)은 유물론(唯物論)과 무신론(無神論)을 바탕으로 한 마르크스주의의 적(敵)이며 중국 정부가 과감하게 공격해야 할 반역사적 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이 진정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에 따라 지금 중국공산당은 전 당원에 대한 ‘유물론’과 ‘무신론’ 교육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실제로 최근 “인민일보”(人民日報)에 실린 논문을 보면 ‘이홍지의 사설(邪說)을 비판하는 일은 마르크스주의의 유물론과 무신론 교육을 보급하는 일과 같은 것’이라고 정의(定義)할 정도이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실들은 오늘날 중국의 위기가 어디에 있는지 시사해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역사가들은 중국의 역사에서 의화단(義和團)이나 백련교(白蓮敎) 같은 비밀결사(秘密結社) 또는 신흥종교의 발호가 청나라의 패망을 재촉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오늘날 법륜공사태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알 수 없지만 중국 당국이 그처럼 위기의식을 갖는 까닭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이홍지와 법륜공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은 어떤 측면에서 보더라도 비정상적이다. 사람들에게 좋은 마음을 갖고 건강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비정치적인 단체를 탄압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도 보기 드믄 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에서도 집회·표현·종교의 자유를 탄압하는 방식이 문화대혁명대를 방불케 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수많은 죄없는 수련자들을 체포, 감금하고 기공 서적들을 불태우는 양상은 마치 2천년 전 진시황의 폭력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바야흐로 이홍지의 법륜공은 중국 내부의 문제에서 국제문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인권문제의 본질을 되묻게 해주고 있다. 이홍지는 95년 이래 중국을 떠나 미국 뉴욕에 거주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이홍지에게 영주권을 주어 그의 신분과 활동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홍지는 마치 오늘의 사태를 예견한 듯 피신(?)한 셈인데 정작 이홍지 자신의 해명은 그렇지 않다. 이홍지는 92년에 닻을 올린 법륜공이 3년만에 중국내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졌기 때문에 세계로 전파하는 출발점으로 미국에 자리잡았다고 주장한다. 사실 중국 내에서의 법륜공의 세 확장은 엄청난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법륜공은 기간(基幹)조직으로 법륜대법 연구회가 있고 그 밑에 법륜공 총지부(總支部)가 39개소이고 그 아래 1천9백여개의 지부와 2만8천여곳의 수련장을 갖고 있으며 총 수련인원 약 1억명에 핵심회원이 2백만명이라고 한다. 이같은 숫자는 기존의 중국 기공단체 가운데서는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지적된다. 우리나라에서도 그렇지만 중국에서도 이른바 기공사 가운데는 엉터리가 적지 않고 사교(邪敎)와 사설(邪說)로 사람을 현혹하기 일쑤다. 특히 중국에서는 기공사가 수련을 전수하는 곳이 대부분 공원이나 공공장소로 국한되어 있고,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공공집회를 허가받아 하도록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기공사들이 공원이나 광장에서 강습비를 받고 기공을 가르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엉터리 기공사들은 처음에는 무슨 큰 공력이나 있는 듯 큰소리치면서 사람들을 모아 강습비를 받아 챙기고 줄행랑을 놓기도 한다. 그러나 이홍지의 법륜공을 이런 엉터리나 사교(邪敎)집단으로 보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다. 어떤 의미에서 법륜공은 종래의 기공과 한 획(劃)을 긋는 차원의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법륜공은 종래의 기공이 지닌 문제들을 해소하면서 한차원 높은 심신수련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교적 색채 뚜렷한 법륜공 아무리 가짜가 판을 치고 사설(邪說)이 활개치는 세상이라 할지라도 엉터리 기공이 단 시일 안에 1억명이 넘는 회원을 갖기란 불가능한 일에 속한다. 그런 뜻에서 이홍지와 법륜공은 무게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물론 법륜공의 엄청난 확산력에는 이홍지의 카리스마적 요소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법륜공의 공법이고 그 공법이 갖는 효과다. 법륜공은 매우 단순한 다섯가지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익히기 쉬운 것이 특징으로 꼽힌다. 다섯가지 동작 가운데 네가지는 이른바 입공(立功)으로 서서 하는 동작이고 나머지 한가지는 좌공(坐功), 즉 앉아서 하는 좌선으로 이루어진다. 서서 하는 동작의 첫째 공법은 불전천수법(佛展千手法)이라고 부르며 사람 몸의 이른바 백맥(百脈)을 여는 데 공효가 있다고 한다. 둘째는 법륜장법(法輪粧法)이라고 한다. 이 동작은 생혜증력(生慧增力), 즉 지혜를 생기게 하여 공력을 증가시키는 공법이다. 셋째는 관통양극법(貫通兩極法)이다. 몸 안을 깨끗하게 정화(淨化)하는 공법이라고 일컬어진다. 넷째는 법륜추천법(法輪周千法)이라고 부르는 동작이다. 이 공법은 온몸에 기를 돌리면서 순환시키는 것이다. 다섯째의 공법은 신통가지법(神通加持法)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좌선으로 일관하는 방법이다. 비록 앉아서 하는 것이지만 이 공법은 앞에 한 네가지 입공의 공력을 높이면서 신통력까지 얻게 하는 전반적인 총정리의 수련법이라고 일컬어진다. 법륜공의 이 다섯가지 동작은 어디까지나 수련의 ‘원만’(圓滿)을 얻기 위한 보조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원리와 추구하는 목표는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진·선·인’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심성’을 닦고 ‘덕’을 쌓음으로써 참다운 인간이 되는 것이다. 법륜공은 92년 5월 중국 기공과학연구회의 직속공파(直屬功派)로 인정받아 공식 활동에 들어갔으나 95년 이 단체를 탈퇴했다. 중국 당국에서는 제명했다고 하지만 이홍지의 탈퇴 주장을 들으면 심상치 않은 상황이 이미 그때부터 벌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홍지는 92년부터 95년까지 3년에 걸쳐 수많은 수련회를 열었으나 자발적으로 열었다기보다 기공과학연구회의 주관으로 그렇게 했다고 말하고 있으며 3년 동안의 수련회를 통해 중국에서의 공법 전수는 완결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홍지가 기공과학연구회를 탈퇴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이 단체가 진정으로 기공을 연구하고 보급하기보다 돈벌이에만 열중했기 때문이었다는 이야기다. 이홍지는 기공을 가르치는 사람은 돈벌이를 목적으로 해서는 안되고 최소한의 비용을 수련자에게 부담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홍지는 제자들에게 교재비 이외의 별도 수련비를 받는 사람은 자기의 제자가 아니라고 파문선언을 했다. 어쨌든 이홍지는 법륜공을 수련하거나 전수하는 이들에게 엄격한 규율과 바른 심성을 요구하고 있다. 이홍지의 이런 가르침이나 행동양식은 기존의 기공 지도자들에게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다른 기공에서는 애써 피하는 정신적인 요소와 영적(靈的)인 문제를 법륜공에서는 과감하게 도입한 것이 특징이다. 이홍지는 법륜공이 불교는 아니지만 불가의 공법을 공개한 것이며 그 공법은 석가모니 이전의 법문(法門)에 속하는 것이라고 설파(說破)하고 있다. 불법과 대법(大法)을 아우른 이홍지의 법륜대법연구회는 스스로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사회주의 사회인 중국에서 용인받을 수 없는 신흥종교의 색채를 감추기 위한 것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홍지의 주요 저서인 “중국법륜공”과 “전법륜”(轉法輪)을 찬찬히 읽어 보면 종교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만약 종교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됐더라면 당초부터 종교를 표방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이홍지의 법륜공은 세기말적인 현상의 하나라는 점에서도 귀추가 주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