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2월 25일 일요일 오후 11시 54분 09초 제 목(Title): to bbasha :) 차분하게 글 잘 쓰셨네요. 일요일 늦은 밤에 님의 글을 읽으며 옛일을 한번 돌이켜봅니다. bbasha님의 말씀도 일리 있습니다. 제 잘못과 오해도 있고, 님의 잘못과 오해도 있죠. 두 사람 다 실수할 수 있는 인간이니까요. 앵무새라는 소리는 더 안하겠습니다. 워낙 비아냥거리시길래 좀 심하게 몰아봤습니다. 이렇게 차분한 면목을 진작 보여주셨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 님이 그렇지 못했던 것은 제 탓도 있습니다. 제 '발작'과 망가짐은 개의치 않습니다. 좀 발작하고 망가지면 어떤가요? 저도 평범한 사람입니다. 성직자인 것도 아니고, 거룩하신 부처님도 아닌데 뭐 어떻습니까.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잔 걸치며 좀 취하더라도 오해 풀리고 이야기 통하면 기분좋은 그런 보통사람일 뿐인데요. (사실 술은 잘 못합니다. 좋아하지도 않구요. 그런 분위기는 무척 좋아하지만 술이 안받는 체질이라서요. ) 그리고 변명같지만 심하게 몰아붙이면서도 정말 화낸건 아닙니다. 요즘 注視가 깊어지고 있는터라 감정이 흔적을 남길 정도로 각인되지는 않습니다.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에 눈 좀 내린다고 불꺼지지는 않지요. 님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심한 말을 했지만, 그런 相들을 길게 가져가지는 않는다는 걸 알아주세요. 그런 相들을 만들어 던져놓고, 오랫동안 가져갈만큼 악한 사람 아닙니다. 금방 잊어버리고, 새롭게 대하는 편이니 그 점에 대해선 염려 안하셔도 됩니다. bbasha님도 제 욕 많이 하시고, 저에 대해 相을 많이 던지셨는데, 그 역시 저에겐 뜨거운 장작불의 열기에 눈 녹듯이 이미 다 사라지고 없는 것입니다. 저에겐 이미 다 지난 일이며, 제 속에는 지금도 주시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저는 지난 일의 제 자신과 남의 잘잘못에 개의치 않고, 현재에 깨어있으며, 언제나 문제삼는 것은 오직 현재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과거의 지식, 기억, 相을 가지고 얘기하는 것은 오직 현재에 그것이 문제로 대두될 때 뿐입니다. 밤이 늦었군요... '나는 존재한다는 것도 相이다'라는 문장에서 발단이 되었다고 하셨죠. 이점에 대해 bbasha님의 이해하려는 노력을 저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물리학 얘기가 아니라 불교의 사성제 중 하나인 諸法無我를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물리학보다는 심리학 쪽 얘기에 가깝다는 점을 먼저 인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금강경에 四相을 여의면 곧 여래를 본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이 四相 중의 하나가 我相입니다. 아상이라는 것은 '나라는 생각'이죠. 고정된 주체로서 존재하는 내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의지를 부리며, 느끼고, 생각하며, 울고 웃고 화내며 절망하는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백두산이 있다는 물리적 사실과는 다른 심리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사실 백두산이라는 명칭과 개념도 엄밀히 말하면 相입니다. 네가지 相이 심리적 차원에서 불교가 문제삼는 相인 반면, 물리적 대상에 대한 명칭이나 개념 역시 相이긴 하나, 그리 문제 삼지 않습니다. 네가지 相이 문제되는 것은 그것이 잘못된 인식의 결과물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망상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백두산을 백두산이라 부르자고 약속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기표와 기의가 명확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라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그 '나라는 생각'과 거기 붙어있는 많은 잘못된 관념들이 우리 삶과 죽음의 기본적인 방향타가 되어 중생적 삶을 이끌 수밖에 없어지므로 문제삼는 것입니다. 무엇을 '나'라고 정의할 것인가를 엄밀히 생각하고 사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명확하게 개념이 정립되지 않은 채, 그냥 살아갑니다. 죽음 뒤에 어떻게 되는가 역시 미지의 영역입니다. "과연 '나'라고 할만한 무엇, 轉生하거나 죽은 뒤에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는 영혼과 같은 주체가 있는가? 무엇을 '나'라고 할 것인가?"를 엄밀히 살펴보지 않은 채, 인정해버리고 나머지 세가지 相 역시 마찬가지로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지나쳐가기 때문에 우리 삶이 중생과 부처의 하늘,땅 차이가 벌어지죠. 佛敎는 이런 잘못된 관념들을 바로 깨쳐서 본래 부처인 우리 자신을 알자는 것이어서, 문제로 삼습니다. 문제로 삼는다했지만, 그 문제를 풀어서 다른 관념으로 대체해서 풀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相을 여읜다는 말은 相(이미지, 관념, 조건지어진 지식화)의 세계와 영영 이별하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전혀 다른 존재적 차원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사고, 사념의 세계 속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미지의 차원이 무궁무진한 보물창고처럼 숨겨진 채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천국에 갈 수 없으며, 하나님 나라가 바로 그대와 내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모두 그것을 발견하자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