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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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2월 25일 일요일 오후 07시 35분 08초
제 목(Title): 부처와 선사 3


출처: 한겨레 

조연현 - 부처와 선사 ③ - 해탈의 길 2001.2.9 

내일 오후엔 조계사에서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를 주제로 화엄광장이 열린다고 
하는군요.

선가에선 깨달음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금기시하지만, 선가에선 선가의 
방식대로 논쟁보다는 화두 일념에 몰입하되, 교학이나 다른 방편에서까지 
선가의 방식을 적용할 필요는 없다는 느낌입니다.

다른 방편으로도 중생들이 깨달음의 길로 한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으리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을 깨달을 것인가>라는 말은 깨달아야 할 무슨 대상이 있는 것같은 
느낌을 줍니다. 깨달음은 당위론적으로 깨달아야할 대상이라기 보다는 `실제는 
어떠한가'라는 물음을 통해 본 실상쪽일 것입니다.

석가모니가 말한 깨달음이란 깨달아야할 대상을 설정해 놓은 신념 체계와는 
다릅니다.

통상 사람들은 믿는대로(신념대로) 경험하기 마련이지요. 
수많은 기독교 수도원과 불교 도량들을 취재하면서도 느낀 바지만, 기독교 
수도원에서 깊은 명상을 하며, 부처나 관세음보살을 만났다는 이는 없지만, 
하느님·하나님, 예수님을 체험했다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절집 등 불교 기도도량에선 반대로 하느님·하나님, 예수님을 
체험했다는 이는 없지만, 부처나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약사여래를 
체험했다는 이들도 적지않습니다.

이미 기도하는 이들이 특정한 신을 대상으로 정해놓고, 그를 체험하기를 간구한 
결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깊은 명상 속에서 체험한 내면의 세계가 같은 것이니, 
다른 것이니에 대한 얘기는 일단 차치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모습은 
`믿는대로 경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석가모니가 말한 깨달음은 석가모니 부처라든가, 아미타불이라든가, 
관세음보살같은 대상을 보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존재의 실상을 보려는 것이지요.
이 몸은, 이 마음은, 이 생각은, 이 우주는 실제 어떠한가.
정말은, 진실은 어떤 모습인가를 탐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신념체계를 익히고 배워 완벽히 습득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몸이나 우주 등 물질 등을 냉철히 살펴 보면, 크고 작고를 막론하고 생겼다가는 
머물렀다가 무너지고, 사라지고, 다시 생기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어떻습니까. 그 또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의 고정관념이나 이데올로기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한 남자에, 한 
여자에 대한 생각에 사무치기도 하지만, 결국 마음이란 생겼다가, 머물렀다가는 
언젠가 변하고, 결국은 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세한 번뇌에서 부터 업이라 할만한 관념 또한 다르지 않습니다.

이처럼 무상한 것에 매달려 집착하는 것이 괴로움의 원인이요, 이 생멸의 법을 
확고히 알아 어떠한 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을 해탈했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몸이 나다. 이 집이 내 것이다. 이 이름이 나다. 이 직위가 나다. 이 
이데올로기가 나다. 이 신념이 나다-이처럼 특정한 것에 대해 집착하는 마음을 
떠나는 것이 해방의 길, 자유의 길이라고 볼 수 있는 셈입니다.

이 뭐꼬?
당신은 누구입니까. 몸입니까. 지금 그 마음입니까.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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