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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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2월 25일 일요일 오후 07시 29분 59초
제 목(Title): 부처와 선사 1 


조연현 - 부처와 선사 ① ‘무엇을 깨달았다는 말인가’ 2000.11.6 

지난달 24일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조계사 대웅전에서 열린 <간화선 
대토론회>(10월28일치 9면)는 불교계에 많은 화두를 던져준 토론회였습니다.

간화선은 `선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는 이유로 말길을 닫아놓은 채, 신비화에 
가려져서 `성역'으로만 존재해왔기에, 그 동안 불교계안에서 누구도 입을 
뻥긋하기 어려웠습니다. 

간화선을 수행했던 선승들이 대부분의 절에서 `어른'으로, `큰스님'으로 
군림하고 있기에, 누구도 그 권위에 도전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것이 
아집의 파괴를, 그래서 360도 열림을 지향하는 선이 다른 세계엔 완전히 문을 
닫은 채, 자신의 수행법이 아니면 모두 사도라고 하는 `논리'를 낳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이 토론회에서 간화선에 대해 근본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이는 
도법스님이었습니다. 도법스님은 남원 실상사 주지를 하며 
인드라망생명공동체를 이끌고, 지난 조계종 종단 사태때는 총무원장 직무대행을 
하고, 다시 실상사로 낙향을 했던 인물입니다.

10대 후반에 출가해 직접 선방에서 15년정도 수행한 경험을 갖고 있는 그는 
"늘상 그래왔듯이 `좋은 것이 좋다'는 식의 덕담을 늘어놓는 것은 스스로를 
기만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한국 불교(선불교)를 망하게 하는 일이라고 
여겨진다"며 "맞아죽을 각오로, 온갖 비난을 감수할 각오를 하는 심정으로 
한국불교의 납자(선 수행자)사회에 대한 생각을 내놓겠다"며 말을 꺼냈습니다.

"30년전 출가수행자로서 첫발을 내디뎌 나름대로는 비장한 결심을 하고 선원에 
들어갔는데, 첫안거를 지내면서 심한 실망감에 빠졌다. 그 이유는 납자사회에 
선수행을 위한 세계관과 철학, 그에 입각한 사상과 정신의 빈곤, 그리고 그 
정신에 따른 윤리도덕의식의 부재때문이었다. 뚜렷한 대안을 찾을 수 
없었으므로 회의와 갈등을 갖고 있으면서도 십오년정도 납자의 길을 걸었다. 그 
동안 선수행자체에 대한 회의는 없었지만, 납자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은 
처음보다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이처럼 포문을 연 뒤 다섯가지 물음을 던졌습니다.


첫째, 선의 세계관이 무엇인지 또는 선수행에 있어서 윤리 도덕은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둘째, 천태선, 묵조선, 간화선 등 여러 형태의 선 수행이 있는데, 그 세계관은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세째, 부처님께서 깨달은 내용을 연기법이라고 하는데 반해 선사들은 
본래면목(불성, 자성)을 깨달았다고 하고 있다. 내용적으로 같은 것인지, 다른 
것인지, 만일 같은 것이라면 왜 다른 개념들을 사용했는지.

넷째, "화두는 분별심을 타파하는 무기"라고 했는데, 오늘의 간화선 
수행자들에게서 오히려 편견, 독선, 편협, 배타, 이기의 분별심이 더욱 
견고해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지.

다섯째, 선에서는 "교외별전"(글이나 말로 전하지 않는다)을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불교와 선은 다른 것인가, 같은 것인가. 다르다면 불교와 선은 무관한 
것인가. 같다면 왜 "교외별전"이라고 했는가.


지금까지 선사들의 권위에 눌려서, 혹은 궁금증이 골수에 찼음에도 선을 말로서 
이해하려는 무지몽매한 자로 뭇매를 맞을까봐 불교계 안에선 감히 누구도 꺼낼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근본적인 물음을 던진 것입니다.

그가 묻는 요지는 과연 선사들이 본 것이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과 같은 
것인가. 또 석가모니 부처의 깨달음이나 가르침이 가장 경계한 아집과 독선이 
선승에게서 더 심하고, 권력을 잡기 위해 폭력사태까지 일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근대에 크게 깨우쳤다는 선사들이 막되게 한 행동이 무애자재한 걸림없는 
모습이라는 식의 전설같은 얘기는 적지않은 반면, 그런 깨달음을 통해 `내가 
없이' 중생을 위해 헌신했다는 얘기는 빈약한게 사실이니, 그 깨달음의 결과가 
어떤 것이며, 그 수행이 낳는 인간형이 어떤 인간형인 지에 대해 의문을 
던져보고, 되짚어보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또한 이들의 깨달음이 이처럼 중생과는 무관한 것이라면, 자신의 불교를 
대승(중생과 함께 성불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뽐내고, 남방의 불교를 
소승(혼자만 깨달으려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근거는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되어야하지 않을까요.

어찌됐든 도법스님의 문제 제기는 불교계에선 `대단'한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에서 교회가 이렇게 많은데, 왜 사회는 전혀 달라지지 않으며, 교회 다니는 
사람이 훨씬 더 이기적이라는 비난까지 나오느냐는 문제를 교회내의 `뜻있는 
자'들이 이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 최대 종교라는 불교계에서 
이런 문제 제기는 오히려 때늦은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조계종을 이끌어갈 사람으로 손꼽히는데다, 현재에도 최고 
실세로 꼽히는 도법스님이 이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뒤늦긴했지만, 
그 뒤늦음을 만회할 수 있는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불교계 
혹은 선승들이 기득권과 아집을 내려놓고, 열린 논의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겠지요.

불교계의 더욱 활짝 열린 논의를 기대하면서, 석가모니가 깨달은 `연기실상'은 
무엇이었으며, 선사들이 깨달았다는 본래면목은 무엇인지에 대해 다음 메일에서 
얘기를 풀어가겠습니다.

조연현 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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