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2월 24일 토요일 오후 07시 33분 50초 제 목(Title): Re: to didier 잘난체 하는 속물근성의 고갱이를 보는군요. -_-; ------------------------------------------------ 저런! 이제 슬슬 흉내낼 레퍼토리가 떨어져가죠? 이번 글은 조금 독창성이 보입니다. 그 속물근성이란 낱말 역시 당신 자신이 제기한 말은 아니죠. 최근 불교보드에서 그 말의 원조는 staire님입니다.(스노비즘) staire님이 스노비즘이라는 낱말을 꺼내자마자 당신은 스노비즘 운운하며 또다시 앵무새임을 증명했지요. staire님의 스노비즘論(3462번)은 중국 禪佛敎가 중국인 특유의 스노비즘과 결합된 일종의 변형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이해의 정도/옳고 그름을 떠나 상식적으로 가능한 타당한 추측으로서 받아들일만한 의견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스노비즘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옳거니!하고 공격의 도구로 삼았죠. (3470번) 3470번 글을 보면, 당신이 반론의 주요한 무기로 삼았던 相이라는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음을 실토하고 있습니다. ( "그저 말하기 편리한 두리뭉실한 개념이란 느낌밖엔 없읍니다." ) 그럼 '그저 말하기 편리한 두리뭉실한 개념이란 느낌밖엔 없"는 相이라는 개념은 반론할 때 아예 쓰지 마세요. 뜻도 모르는 말 가지고 자꾸 반론을 펴니까 앵무새라는 소리 밖에 더 듣습니까? 당신은 자꾸 잘난체하는 속물근성이라고 앵무새 반복하듯 말하지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고 모르는 것을 배우는데에는 잘나고 못난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아는 사람이 선생이요, 몰라서 배우는 사람이 학생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이치입니다. 60살 먹은 할아버지, 할머니도 50대 禪師한테 삼배를 하고 법문 듣습니다. 육신의 나이나 세간의 학식, 위치같은 속성은 위대한 佛法의 진리를 배우는 데에는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아무 쓸모도 없는 것입니다. 구청의 컴퓨터 교실같은데만 가도, 동네 나이든 아줌마, 아저씨들이 새파란 구청직원한테 선생님,선생님 하면서 즐겁게 컴퓨터를 배웁니다. 당신은 지금까지 모르고 살아왔던 相이라는 것을 여기 불교보드 저에게서 배웠습니다. 제대로 이해는 못한 것 같지만 어쨌든 그런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거죠. 지금 문제는 모르던 것을 배운 사람(bbasha)이 가르쳐준 사람(croce)보고 방금 배운 지식을 무기(相에 대한 어설픈 지식)로 속물근성이니 하면서 대드는 격입니다. 배우고 싶지 않다면 그런 소리도 하지 마시고, 불교보드에도 기웃거리실 필요없습니다. 나는 점잖게 있는 당신에게 잘난체 한 적 없습니다. 당신이 '나는 못났는데, 당신은 그렇게 잘났소?'하는 식으로 나왔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가 잘난 사람처럼 보이게 된 것뿐이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