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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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Enlight (D.S.)
날 짜 (Date): 2001년 2월 16일 금요일 오전 01시 40분 06초
제 목(Title): 스승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석가도 그랬지만, 달마나 그밖의 많은 선사들의 어록을 보면 
스승들은 거짓말을 자주하는 것 같습니다. 왜 스승들은 거짓말을 
하는지 라즈니쉬의 해석을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유식불교를  강의하는 도광이라는 강사가 대주에게 물었다.
[선사께서는 어떤 마음을 써서 도를 닦으십니까?]
 대주가 대답했다.
[노승에게는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또한 없다.]

도광이 물었다.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 또한 없다면, 왜 날마다 대중을 모아놓고
선을 배우고 도를 닦으라 하십니까?]

[노승에게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데 어디에 대중을 모았다 하는가?]

도광이 소리쳤다.
[선사께서는 왜 사람을 앞에 놓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노승은 사람들에게 권장할 혀도 없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저는 선사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대주가 말했다.
[이 노승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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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에게는 쓸마음도 닦을 도도 없다] 고 한 것은 주시자에 대한 
최고의 표현이다. 그는 마음을 벗어나 있다. 그에게는 도라거나 법이라는 
목적지도 없다. 그 자신이 목적지다. 그 자신이 붓다다. 그 자신이 
도이며 법이다. 그는 진리 자체다. 그러므로 마음을 쓴다거나 도라는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문제는 없다.

도광이 물었다.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 또한 없다면, 왜 날마다 대중을 모아놓고
선을 배우고 도를 닦으라 하십니까?]

  지적인 마음은 이런식으로 작용한다. 그는 대주의 훌륭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했다. 다만 대주의 말을 분석하고 모순점을 찾아냈다.
'이 사람은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또도 없다고 말한다. 그말이 사실이
라면 왜 그는 계속해서 대중들을 가르치는가?'
  지적인 마음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고 어떤 식으로 핵심을 놓치는지 
보라.

도광이 물었다.
[쓸 마음도 없고 닦을 도 또한 없다면, 왜 날마다 대중을 모아놓고
선을 배우고 도를 닦으라 하십니까?]

  어떤 스승에게도 이런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스승 자신도 이문제를
우려한다. 
  석가모니 부처도 깨닫고 나서 칠일 동안 말이 없었다. 누군가 와서 
전법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칠일동안 심사숙고 했지만, 내가 입을 열어야할 아무런 이유도
찾지 못했다. 사람들을 가르쳐서 반드시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방법은
없다. 도달할 목적지가 없으므로 사람들에게 길을 보여줄 수도 없다.
사람들은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듣고 싶어한다. 깨달음을 얻으려면
어떤 원인을 제공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러나 깨달음을 낳는 
원인은 없다. 그래서 칠일 동안 심사숙고한 결과, 나는 내가 무엇을 
말하건 정확한 진실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그것을 말해야 하는가, 아니면 침묵해야하는가? 침묵을 지키는 것이 
더 정직한고 진실한 것 같다. 하지만 이것은 아직도 어둠속에서 헤매
는 사람들 내면의 근원으로 접근한 살람들에게 다소 냉정한 일이 
될 것이다. 조금만 도와주면 조금만 밀어주면 그들은 붓다가 될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그대가 누군가를 밀어 
준다면 그는 화를 낼지 모른다. 그대의 도움이 반드시 자비의 행동으로 
이해되지는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전보다 추해질지 모른다. 그는 더 
야만적인 사람이 될수 있다. 그는 '당신이 뭔데 나를 미는 것이요?
그런 식으로 말하는 이유가 뭐요? 왜 자꾸 사람을 건드리면서 들추어 
내는 것이요?' 하면서 따지고 싸우려 들것이다. 그래서 스승의 길은 
아름다운 것 만은 아니다.  
  그러나 붓다를 부추기고 있던 사람들이 말했다.
[당신의 말이 99.9 퍼센트 옳습니다. 그러나 0.1 퍼센트에 대해 
생각해 주십시오. 99.9퍼센트의 사람들은 실패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천명 중 한사람이라도 붓다가 되는 것을 도울수 있을 
것입니다. 99.9퍼센트에 대해서는 생각치 마십시오. 0.1펴센트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침묵을 지키면 내면의 중심에 
근접한 사람들에게는 아주 냉정한 처사가 될것입니다. 당신의 친절
한 마디가 그들에게 용기를 줄 것입니다. 당신이 그들의 눈을 들여다
보기만해도 그들은 자기 내면의 깊은 심연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어루만짐, 붓다의 따스함, 당신의 몸짓 하나만으로도..]
  결국 붓다가 이 말에 동의 했다. 이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중의 하나다. 그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위대한 어떤 
것이 완전히 잊혀졌을 것이다. 덕분에 아직도 소수의 사람들이 
붓다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적인 마음은 '논리와 인과율에 구해받지 않은 깨달음의
내적인 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마음과 지성은 이것은 모순이다.
고 단정한다. 마음에 의해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 그대는 
마음을 내려놓아야한다. 그러니 정신적 과정이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마음 전체를 옆으로 밀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사념의 장막없이 
곧바로 분명하게 볼수 있다. 도달해야하는 목적지는 없다.  내면의
침묵을 발견하고 그대 자신을 깊이 이해하는 순간, 자신의 뿌리를 
발견하는 순간, 그대는 웃음을 터뜨린다.
"바로 내 뒤에 내안에, 나의 중심에 숨어있는 사람을 그렇게 열심히
찾고 있었다니!"

  그러나 도광은 즉시 말했다.
"그것은 모순입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명상과 방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유가 뭡니까?"

  대주가 말했다.
[노승에게는 송곳 꽂을 땅도 없는데 어디에 대중을 모았다고 
하는가?]

 대주는 말한다.
'내게는 대답할 마음이 없다. 내게는 그대가 느끼는 모순을 시원
하게 풀어줄 어떤 마음도 없다.'

  도광이 소리쳤다.
[선사께서는 왜 사람을 앞에 놓고 거짓말을 하십니까?]

  이것이 영원한 문제다. 스승은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다. 스승의 
거짓말은 자비심에서 나온다. 그의 거짓말은 그대가 도약할 수 있도
록 발판을 마련하는 준비 작업이다. 그러나 그의 거짓말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속된 마음은 오직 평범하고 천한 것만 생각한다. 이런 마음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없다. 스승이나 성인에게서 눈에 보이는 
성스러운 행동을 보길 원하고 신통술같은 것을 보길 원한다. 스승들이
평범하면 속된 인간으로 바라본다.

  대주가 말했다.
[노승은 사람들에게 권장할 혀도 없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이제 도광이라는 이 지식인은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다. 노승 대주는
말한다. [노승은 사람들에게 권장할 혀도 없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는가?]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이다. 그러나 대주가 옳다. 그의 말은 우리가 
살아 가는 평범하고 속된 세상을 초월한다. 깨달은 사람은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는 존재계가 그 자신을 통해 말하도록 허용할 뿐이다. 
그러므로 충분히 수용적인 사람은 스승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붓다의
눈을 본다. 붓다는 더 이상 자기의 혀를 갖고 있지 않다. 그는 
존재계에 모든 것을 바쳤다. 그는 더 이상 혀와 눈과 손을 갖고 있지
않다. 이제 존재계가 무엇을 원하는 그는 존재계를 따른다. 그는 삶
전체를 존재계에 일임했다. 그러나 지식인들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주는 명백한 거짓말을 한다. 혀가 없다면서 여전히 말을 한다. 그러
면서 혀도 없는데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냐고 반문한다.
 
  이것이 스승이 당면한 과제다. 말을 하는 순간 그는 진리를 오염 시
킨다. 아무리 노력해도 진리를 말로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약간의 
향기를 전해줄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향기또한 충분히 지성적인 사람들만
감지될수 있는 것이다. 스승의 말은 공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공허
하지 않다. 그대가 누군가에게 (사랑한다) 고 말할때 이말은 진실이
아니다. 어쩌면 사회의 관례에서 나온 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스승이 (나는 그대를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문자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스승의 말은 공허하지 않다.

  도광은 스승과 같은 차원에 오르지 못했다. 높은 봉우리에 있는 
것을 저자거리로 갖고 내려와야 하는 스승의 애로 사항을 도광은 이해
하지 못했다. 스승은 그대와 똑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그대안에 열망을 불러 일어켜야한다. 그대에게는 열망 자체가 없다. 그대는 
꿈속에서라도 붓다가 되기를 원한 적이 있는가? 이 삶의 근원이 어디인지 
의심해 본적이 있는가?
  목적지가 없다 할지라도 스승은 그대를 위해 목적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아주 훌륭한 구도의 길이다. 진리를 발견하기 위해
서는 아주 멀리 여행해야 하면 그대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한다.' 고 말해 
주어야 한다. 인간의 마음은 어려운 것에만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마음은 분명하고 단순한 것에는 흥미가 없다. 바나나 껍질을 스스로 벗기는
것을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면 
전세계가 관심을 같는다. 이것은 사람들의 에고를 만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간단한 것은 매력이 없다. 간단한 것을 갖고는 에고를 주장할 수 없다. 

스승은 그대가 붓다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깨달음이라는
목적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스승이 (그대는 붓다다) 라고 말해도 
그대는 이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도광이 말했다.
[저는 선사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은 지금 말씀을 하고 계시면서도 (내게는 혀가 없다)고 합니다.
당신은 방편과 목적지에 대해 가르치면서도 (쓸마음도 없고 목적지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주가 말했다.
[이 노승도 모른다.]

  대주는 자기도 모르겠다고 인정했다.
"내가 어떤 목적으로 쓰이는지는 나를 사용하고 있는 존재계만이
안다. 나는 존재계에 모든 것을 일임했다. 만일 존재계가 나를 통해
거짓말을 하고자 한다면 나는 거짓말을 할 것이다. 존재계가 나를 통해
다른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나는 그일을 할 것이다. 나는 우주의 손에 
나 자신을 맡겼다."

  대주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을 말하고 있다. 스승은 그 자신의 개체성
이라는 측면에서는 절대적으로 부재한다. 또한 우주적 체험에 관한 
한 그는 절대적으로 현존한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지성과 가슴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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