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2001년 2월 15일 목요일 오후 02시 02분 55초 제 목(Title): to guest(tatata) > 먼옛날의 텍스트를 해석하는데 있어서 시대적 배경과 어휘의 정확한 의미를 > 철저히 고증하는 작업은 그야말로 요긴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조차 > '현대적 감각'이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다고 확신할수 있을까요? > 텍스트에만 지나치게 국한해 확장되고 변형된 해석을 일체 허용하지 않는다면 > 경직되고 단순한 해석밖에는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고증과 해석은 별개 문제입니다. 성경이 씌어진 과정과 그 텍스트가 담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몰라도 얼마든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 현대적 감각이든 불교적 감각이든 -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저는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해석은 맘대로 하더라도 원문을 왜곡시키지는 말아 달라는 것뿐입니다. 크로체님께 드리는 글에서 이미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 마음과 구원에 대한 크로체님의 관념 자체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습니다. 마음을 > 비우는 데에 구원이 있다... 멋있는 얘기죠. 그렇지만 전혀 그런 세계관을 갖고 > 있지 않았던 유다야의 경전에 나오는 - 그나마 왜곡된 - 구절의 표현이 단지 > 당신의 세계관과 '부합되는 듯이' 보인다고 해서 함부로 끌어다 붙이는 것은 >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을 잘 모르는 외국인이 심청전을 읽고서 "한국에서는 지금도 절에 돈 바치면 장님이 눈을 뜨게 해준다더라. 돈 없으면 자식도 심심찮게 판다더라. 몸 팔아서 아버지 눈 뜨게 해준 심청이가 참 착하지 않냐?"라고 말하는 경우 이 아저씨가 심청이 착하다고 말하는 것에는 아무런 불만이 없지만 적어도 '요즘 한국에서는 절에 돈 바치면 장님이 눈 뜰 수 있고 돈 없으면 자식도 심심찮게 파는' 상황이 아니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물론 그러다보면 '당신은 한국에 대한 공부 다시 하셔야겠군' 이라는 소릴 들을 수도 있겠죠. > 아이들의 마음이라고 할 때, 아직 세속에 물들지 않고 욕심이 없는 >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것은 누구나가 > 내릴수 있는 보편타당한 해석이라고 봅니다. 그게 보편타당한 해석이라는 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누가 아니랬나요? 저는 아직도 Enlight님께서 왜 저에게 그런 질문을 하시는지 모릅니다. > 스테어님의 글을 보면 성경을 불교적으로 해석하는데 대해 적잖은 거부감을 > 갖고 계신 듯 합니다. 정반대입니다. 저는 기독교 보드에서도 여러 차례 밝혔듯이 성경을 '기독교적인 시각으로만' 해석하는 쪽에 거부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해석의 자유로움이란 텍스트에 분명히 씌어 있는 2+2=4 를 2+2=5 라고 우길 수 있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