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1월 29일 월요일 오전 09시 35분 03초 제 목(Title): 임제록 4 임제록 시중(示衆) [Ⅳ] 10. 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은 경계 무엇이 마음 마음이 다르지 않는 경계입니까? "그대들이 물으려 하는 순간 벌써 달라져버리니 성품과 모양이 각각으로 나누어진다. 착각하지 말라. 세간, 출세간의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으며, 또한 나는 성품도 없다. 그저 빈 이름뿐이며 그 이름 또한 비었는데, 그대들은 이처럼 저 부질없는 이름을 실답다고 잘못 알고 있으니 매우 잘못 되었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의지해서 변한[依變] 경계들이다. 이른바 보리에 의지함과 열반에 의지함, 해탈에 의지함과 세 가지 불신[三身]에 의지함, 경계[境]와 지혜[智]에 의지함, 보살에 의지함과 부처에 의지함 등이다. 그대들도 의지하여 변하는 국토들 가운데서 무엇을 찾느냐? 나아가 3승 12분교는 모두가 더러운 것을 닦아낸 휴지이고 부처란 허깨비로 나타난 몸이며 조사란 늙은 비구이다. 그대들도 어머니로부터 태어나지 않았느냐. 그대들이 부처를 구하면 부처라는 마(魔)에 붙잡히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라는 마(魔)에 묶인다. 구하는 족족 고통이니 아무 일 없느니만 못하다. 머리 깎은 어떤 비구들은 학인들에게 '부처는 궁극적인 자리[究竟處]나 3대 아승지겁 동안 수행하여 그 과(果)가 다 채워져야 바야흐로 도를 이룬다'고 말해준다. 납자들이여! 만약 부처를 궁극적인 자리라 한다면 어째서 부처님께서는 80년 후에 쿠시나가라 성(城)의 사리쌍수 사이에서 옆으로 누워 돌아가셨으며 부처님이 지금은 어디에 계시는가. 부처도 우리들 생사와 다르지 않음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대들은 32상 80종호가 부처님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전륜성왕도 마땅히 여래이어야 할 것이나 그것은 변화하여 나타난 허깨비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여래께서 몸으로 모습을 보여주신 것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따라주기 위해서 이다. 사람들이 영영 돌아가셨다고 생각할까 걱정하시어 방편으로 우선 거짓 이름을 세워 거짓으로 32상 80종호를 말씀하셨다. 그러나 빈소리일 뿐 몸이란 깨달으신 본체가 아니며 모양 없음이 진실된 형상이다"라고 하였다. 그대들은 부처님에게는 '6신통이 있어 불가사의하시다'고 하는데 모든 하늘의 신선·아수라와 힘센 귀신 역시 신통이 있으니 그들을 부처님이라 해도 되겠구나. 납자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아수라들이 제석천과 전쟁을 하여 패전하면 8만 4천 권속들을 거느리고 연(運)실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고 하니 이들도 성인이라 해야 하겠느냐. 이상은 모두가 숙업으로 얻은 신통이거나 의지함으로 얻은 신통들이다.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물질[色]경계에 들어가서도 물질에 혹하지 않고 소리[聲]의 경계에 들어가서도 소리에 혹하지 않으며, 냄새[香]의 경계에 들어가서도 냄새에 혹하지 않고, 맛[味]의 경계에 들어가서도 맛에 혹하지 않는다. 살 닿는 경계[觸]에 들어가서도 닿음에 혹하지 않고, 생각[法]의 경계에 들어가서도 생각에 혹하지 않는다. 색·성·향·미·촉·법의 여섯 가지가 다 빈 모양들뿐임을 통달한 까닭에 이 의지함이 없는 도인을 얽어매지 못한 것이니, 비록 5온으로 된 번뇌의 몸이나, 바로 이 물건이 땅 위를 걷는 신통이다. 납자들이여! 진짜 부처는 형상에 묶임이 없고 참된 법은 모양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대들은 이처럼 변화로 나타난 허깨비들 위에서 이런 저런 모양을 짓는구나. 애써 구하여 얻는다 하더라도 모두가 여우 도깨비들이며 결코 참된 부처가 아니니, 이는 외도의 견해이다. 진정으로 도를 배우는 사람들은 부처에도 집착하지 않고 보살·나한에도 집착하지 않으며, 3계의 뛰어난 경계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멀리 홀로 벗어나 사물에 전혀 구애되지 않으므로 하늘, 땅이 뒤집힌다 해도 나는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또한 시방세계 모든 부처님이 앞에 나타난다 하여도 한 생각 기쁜 마음이 없으며, 3도(三塗)지옥이 갑자기 나타난다 하여도 한 생각 두려운 마음이 없다. 어째서 그런가? 그는 모든 법의 빈 모습을 보기 때문이니, 변화하여 나타나면 있고 변화하여 나타나지 않으면 없다. 3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며 만법(萬法)은 다 식(識)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꿈 같고 허깨비 같은 허공꽃을 하필 애써 붙들려 하는가"라고 하였다. 눈앞에 법문을 듣고 있는 이 사람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3도 지옥에 들어가도 마치 정원을 구경하며 노니는 듯하고, 아귀·축생에 들어가도 그 업보를 받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 아무 꺼려할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만약 성인은 좋아하면서 범부를 미워한다면 생사 바다에 떴다 잠겼다 할 것이다. 번뇌란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마음이 없다면 얽매일 번뇌가 있겠는가. 분별하여 모양에 집착하느라 헛수고하지 않으면 잠깐 사이에 자연히 도를 얻을 것이다. 그대들이 분주를 떨며 옆 사람들에게 배워 얻으려 한다면 3대 아승지겁을 지나더라도 마침내 생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니 아무일 없이 총림에서 선상(禪牀) 위에 두 다리 꼬고 앉아 있느니만 못한 것이다. 납자들이여! 제방에서 학인이 찾아왔을 때 주인과 객이 인사하고는 대뜸 학인이 한마디를 던져 앞에 있는 선지식을 알아보려고 한다. 시험하는 말을 끄집어내어 선지식의 입가에 들이대면서 '보십시오! 스님께서는 이걸 아십니까'한다. 너희 선지식들이 그 경계를 간파하면 접어서 구덩이 속에다 던져 버린다. 학인은 평소대로 자세를 바로하고 나서 선지식의 가르침을 구하는데 선지식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면 학인은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큰 선지식이시여'하는데, 선지식은 '너는 도대체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놈이로다'라고 한다. 선지식이 경계 덩어리를 학인 앞에 내놓고 희롱을 하면 그 학인은 완전히 알아차리고 하나 하나 주인이 되어서 경계에 혹하지 않는다. 선지식이 몸을 반만큼 드러내 보이면, 학인이 문득 '악!'하고 고함을 친다. 선지식이 다시 갖가지로 차별된 말을 써서 시험해 보면 학인이 '이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노장아'하면 선지식은 '진짜도인이로다'하며 탄복한다. 삿된지 바른지를 구분하지 못하는 제방 선지식들은 학인이 찾아와서 보리·열반·삼신·경계·지혜 등을 물으면 눈 먼 노스님은 그에게 해설해 주고 만다. 그러다가 학인으로부터 힐난을 듣고 나서는 몽둥이를 집어들고 후려치면서 '이 예의 법도도 모르는 놈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선지식들이 자기 안목(眼目)이 없기 때문이니, 저 학인에게 화를 내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중들은 동쪽 서쪽을 구분하며, 갠 날 비오는 날을 좋아하며 등롱(燈籠)과 노주(露柱)를 좋아하는데 보아라! 눈썹털이 몇 개나 남아 있느냐? 이러한 일에는 기연이 갖추어져 있음에도 학인은 알지 못하고서 미쳐버린다. 이런 무리들은 모조리 여우 혼령이 씌운 도깨비들이니 저 훌륭한 학인들에게 '이 눈 먼 중아! 온 천하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드는구나'하며 비웃는 말을 듣게 된다. 출가한 사람은 무엇보다도 도를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 내 경우 지난날 계율에 마음을 두기도 하였고 경론을 연구하기도 하다가 나중에서야 그것들이 세간을 구제하는 약이며 설명하는 말씀인 줄을 알고, 마침내 몽땅 버리고 도인을 찾아가 참선을 하였다. 그런 뒤에 큰 선지식을 만나 뵙고 나서야 도를 보는 안목이 분명해져서 비로소 천하의 노스님들이 삿된지 바른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나온 것이 아니라 몸소 궁구하고 갈고 닦아 스스로 깨달은 것이다. 납자들이여! 법다운 견해를 터득하려 한다면 남에게 끄달리지 않기만 하면 된다. 안에서나 바깥에서나 마주치는 대로 죽여라.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며[殺佛殺祖], 나한을 만나면 나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며,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죽여야만 비로소 해탈하여 사물에 구애되지 않고 투철히 벗어나 자유자재해진다." 제방 납자들이 사물에 의지하지 않고 나온 사람이란 하나도 없다. 여기 나는 처음부터 그들을 처버린다[打]. 손에서 나오면 손으로 치고, 입에서 나오면 입으로 치며, 눈에서 나오면 눈으로 처 버린다. 누구 하나 홀로 벗어나 나온 사람은 없고, 모두가 저 옛사람들의 부질없는 기연과 경계를 통해서 나온 것이다. 나에게는 남에게 줄 아무 법도 없다. 그저 병따라 치료해 주고 묶인 것을 풀어줄 뿐이다. 그대들 제방의 도 배우는 이들이여, 사물에 전혀 의존하지 말고 한번 나와 보아라. 내 그대들과 법을 논하고자 한다. 5년, 10년이 지나도 누구 한사람 나서는 이가 없구나! 모두가 풀과 잎사귀에 달라붙어 사는 대나무 정령들이며 둔갑한 여우로서 똥덩이 위에 달라붙어 어지럽게 빨아대는구나. 눈 먼 놈들아! 저 시방 신도들의 시주물을 마구 쓰면서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하고는 이와 같은 견해들을 내고 있구나. 내 그대들에게 말한다. 부처도 없고 법도 없으며 닦을 것도 깨칠 것도 없는데 어쩌면 그렇게들 바깥으로만 찾으려 하느냐. 눈먼 놈들아!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으니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이냐? 눈앞에 작용하는 이놈이 바로 조사나 부처와 다르지 않은데 그대들은 믿지 않고 밖에서 찾는다. 착각하지 말라. 밖에도 법은 없으며 안에서도 찾을 수 없다. 그대들은 내 말을 듣느니 아무 일 없이 쉬는 편이 낫다. 이미 일어난 것은 계속하지 말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것은 일어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면 그것이 10년 행각 해 온 것보다 나은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런 많은 일들은 없는 것이며 다만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다. 제방에서 온 그대들은 모두가 마음이 있어서 부처가 되려하고 법을 깨닫고자 하며 해탈하여 3계를 벗어나고자 한다. 어리석은이여! 3계를 벗어나 어디로 가려 하느냐? 부처와 조사란 그들을 존경하여 붙인 이름일 뿐이다. 3계를 알고자 하느냐?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그대들 마음자리를 떠나 있지 않으니 그대들의 한 생각 탐내는 마음이 욕계이고, 한 생각 성내는 마음이 색계이며, 한 생각 어리석은 마음이 무색계로서 그대들 집에 있는 살림살이들인 것이다. 3계(三界)는 스스로 내가 3계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소소영령하게 만물을 비추고 세계를 가늠하는 그 사람이 곧 3계에다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대덕들이여! 4대로 된 몸뚱이는 덧없는 것이다. 나아가 위·간·쓸개와 지라, 머리카락·털·손톱·이빨 등도 오로지 모든 법이 빈 모양임을 보여줄 뿐이다. 한 생각 마음이 쉴 때를 보리수(菩提樹)라 하고 한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하는 때를 무명수(無明樹)라 한다. 무명이란 머물 곳이 없으며 처음도 끝도 없다. 그러므로 생각생각 마음이 쉬지 못한다면 저 무명의 나무 위에 올라가 4생 6도에 들어가서 털 쓰고 뿔 달린 짐승이 될 것이다. 그러나 쉬기만 하면 그대로가 청정법신의 세계다. 그러므로 한 생각이 나지 않으면 보리수에 올라 신통변화하여 3계에 뜻대로 화신의 몸을 나투고 법희선열(法喜禪裂)을 맛보며, 몸에서는 저절로 빛이 날 것이다. 옷을 생각하면 비단 옷이 천겹으로 걸쳐지고, 밥을 생각하면 백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히 차려지며, 다시는 황액병사(橫厄病死)같은 일이 없으니, 보리는 머물 곳이 없으므로 얻을 것도 없다. 납자들아, 대장부가 더 무엇을 의심하느냐, 또 눈앞에서 작용하는 것은 누구냐, 잡히는 대로 쓰면 될 뿐 이름 붙이지 말 것이니 그것을 깊은 돗[玄旨]이라 한다. 이렇게 볼 수 있다면 꺼려할 법이란 없다. 옛사람이 말하였다. 만 가지 경계 따라 변하는 마음이여! 변하는 그 경계 참으로 그윽하여라 생사를 따라 성품을 깨달으니 기쁨도 없고 근심도 없도다. 선종의 견해로는 삶과 죽음이 돌고 도나니, 참선하는 사람들은 매우 자세히 살펴야 한다. 주인과 객이 만났을 때 곧 말들이 왔다 갔다 하다가 혹은 사물에 맞게 모습을 나투기도 하고 혹은 온몸으로 작용하기도 하며, 혹은 기연과 방편으로 짐짓 기뻐하거나 성내기도 하며, 혹은 몸을 반만큼 나타내 보이기도 하며, 혹은 사자를 타기도하고 코끼리를 타기도 하는 것이다. 만약 진정한 학인이 대뜸 악!하고 고함을 치고는 먼저 끈적끈적한 아교(阿膠)단지를 내놓으면 선지식은 그것이 경계인 줄 분별하지 못하고 거기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낸다. 학인이 악! 하고 고함을 치면 앞의 선지식은 이를 놓아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이것은 의사도 못 고치는 고질병이니 이것을 두고 "객이 주인을 간파한다[客看主]"고 한다. 또 다른 경우는, 선지식이 아무 것도 내놓지 않고 학인이 묻는 족족 빼앗아버린다[奪] 학인은 빼앗기고 나서는 한사코 놓아 버리려고 하지 않는데 이것을 두고 "주인이 객을 간파한다[主看客]"라고 한다. 또는 어떤 학인이 청정한 경계를 선지식 앞에 내놓으면 선지식이 그것이 경계인 줄을 알아차리고 집어다가 구덩이 속에 던져버린다. 학인이 "참으로 훌륭한 선지식이십니다"하면 선지식은 "쯧쯧!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구나"한다. 그러면 학인이 절을 하는데 이것을 "주인이 주인을 간파한다[主看主]"고 한다. 또 어떤 학인이 목에 칼을 쓰고 발에는 족쇄를 찬 채 선지식 앞에 나타나면 선지식은 그 위에다 칼과 족쇄를 한 겹 더 씌워버린다. 그러면 학인은 기뻐 날뛰면서 피차를 분간하지 못하는데, 이것을 "객이 객을 간파한다[客看客]"고 한다. 대덕들이여!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모두가 마(魔)와 이단(異端)을 가려내 삿되고 바른지를 알게 하기 위해서이다. 진정한 마음이란 몹시 어렵고 불법은 심오하지만 알고 나면 쉬운 일이다. 내가 종일 저들에게 입이 닳도록 말해 주어도 공부하는 이들은 도대체 마음을 쓰지 않고 천 번 만 번 밟고 가면서도 도무지 깜깜하다. 아무 형체도 없으면서 밝고 뚜렷한 이것을 학인들은 믿지 못하고 명칭과 의미로만 이해하려 한다. 쉰이 넘도록 바깥으로만 송장을 짊어지고 다니는구나. 이렇게 짐을 지고 천하를 돌아다니는데 짚신 값 찾을 날이 있으리라. 대덕들이여! 내가 밖에 법이 없다고 말하면 공부하는 이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안으로 알음알이를 내어 벽을 보고 앉아서 위 잇몸에 혀를 찰싹 붙이고 꼼짝않고 담담히 앉아 있다. 그리고는 이것을 조사문중의 불법이라 여기는데 정말 잘못이다. 만약 움직이지 않는 청정한 경계를 옳다고 여긴다면 저 무명을 주인으로 잘못 아는 것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담담하고 캄캄한 깊은 구덩이가 참으로 두렵도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 저 움직이는 것을 옳다고 인정한다면 모든 초목들이 다 움직일 줄 아니, 그것도 응당 도(道)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움직이는 것은 바람[風大]이고, 움직이지 않는 것은 땅[地大]이니, 움직이고 움직이지 않음이 모두 다 자성이 없다. 그대들이 만약 움직이는 곳에서 그것을 붙잡으려 하면 그것은 움직이지 않는 곳에 서 있고, 움직이지 않는 곳에서 붙잡으려 하면 움직이는 곳에 서 있어서 마치 물속에 잠긴 물고기가 물결을 치면서 스스로 뛰어오르는 것과 같다. 대덕들이여!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은 두 가지 경계이니 의지함이 없는 도인이라야 움직임도 쓰고 움직이지 않음도 쓰는 것이다. 제방의 학인들이 찾아오면 여기 나는 세 가지 근기로 끊는다. 중, 하근기가 오면 경계만 빼앗고 그 법은 없애지 않으며, 중, 상근기가 오면 경계와 법을 함께 빼앗으며, 맨 으뜸 근기가 오면 경계와 법과 사람을 다 빼앗지 않는다. 만약 격(格)을 벗어난 견해를 가진 사람이 오면 여기 나는 전체로 작용하여 근기를 따지지 않는다. 대덕들이여! 이 정도 되면 공부하는 이의 경계는 바람 통할 곳도 없어서 전광석화라도 벌써 지나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약 눈동자를 두리번거렸다 하면 빗나가고 마음으로 헤아리려 하면 틀리며 생각을 움직였다 하면 어긋나니, 아는 이라면 눈앞을 여의지 않는다. 대덕들이여! 그대들은 똥자루를 짊어지고 바깥으로 달음질치며 부처를 구하고 법을 구하는데 이렇게 내달려 구하는 바로 그놈을 그대들은 아느냐? 생생하게 움직이나 뿌리와 줄기가 없으니 오무려도 모이지 않고 펼쳐도 흩어지지 않는다. 구하면 구할수록 멀어지고 구하지 않으면 도리어 눈앞에 있어서 신령스런 소리가 귓전에 들리거늘 사람들이 믿지 않는다면 일생을 헛수고할 뿐이다. 납자들이여! 한 찰나 사이에 문득 연화장세계에 들어가고 비로자나 국토에 들어가며, 해탈국토에 들어가고 신통국토에 들어가며, 청정국토에 들어가고 법계에 들어가며, 정토에 들고 예토에 들어가며, 범부의 세계에 들고 성인의 세계에 들어가며, 아귀·축생의 세계에 들어가서 곳곳마다 찾으나 아무데서도 생사가 있음을 보지 못하니 그것은 빈 이름일 뿐이다. 허깨비 같은 허공꽃을 애써 붙잡지 말지니 얻고 잃음과 옳고 그름을 한꺼번에 놓아 버려라. 납자들아, 나의 불법은 정통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 마곡(麻谷)·단하(丹霞)·도일(道一)·여산(盧山) 그리고 석공(石鞏)스님으로부터 한 가닥으로 세상에 두루 행하여 퍼졌으나 아무도 믿지 않고 모두 다 비방들만 한다. 도일스님의 활용처는 순일무잡하여 3백명, 5백명 되는 학인이 모두가 스님의 뜻을 보지 못하였다. 여산스님은 자재하고 참되어 역순(逆順)의 경계에 작용하는 곳을 학인들은 그 경계를 헤아릴 수 없어 모두가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단하스님의 경우는 구슬 놀리는 솜씨가 은현 자재하여 찾아오는 학인들마다 모두 꾸짖음을 들었다. 마곡스님의 활용처는 황벽(黃檗)이 써서[苦] 모두 가까이 하지 못 하였고, 석공스님의 활용처는 화살 끝에서 사람을 찾은 것이니 오는 자가 모두 두려워하였던 것이다. 오늘 이 산승의 활용처는 진정으로 이루기도 하고 부수기도 하면서 신통변화를 부린다. 어느 경계에 들어가나 곳곳마다 아무 일 없어서 경계가 뒤바꿔 놓지 못한다. 누가 찾아와 구하면 나는 나가서 그를 보지만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내가 몇 가지 옷을 입어 보이면 학인은 알음알이를 내어 한결같이 나의 말속으로 말려 들어오고 만다. 애닲다. 눈 먼 중들이여! 안목 없는 사람들은 내가 걸친 옷을 푸르다 누르다 붉다 희다 하고 착각한다. 내가 옷을 벗어버리고 청정한 경계로 들어가면 학인은 한번보고는 기꺼운 생각을 내다가 또 내가 벗어버리면 망연자실하여 미쳐 달아나면서 나에게 옷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그에게 "그대는 나의 옷 입는 그 사람을 아느냐"'하고 물으면, 그는 홀연히 고개를 돌려보고 나를 알아보게 되는 것이다. 대덕들이여! 그대들은 옷을 잘못 알지 말아라. 옷이 움직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옷을 입을 수 있는 것이다. 청정한 옷도 있고 무생(無生)의 옷과 보리의 옷과 열반의 옷도 있으며 조사의 옷도 있고 부처의 옷도 있다. 대덕들이여! 다만 소리와 명칭, 개념따위만 있을 뿐 모든 것은 옷 따라 변하는 것들이다. 배꼽 아래 기해단전(氣海丹田)으로부터 울려 나와서 이빨에 딱딱 부딪쳐 그 의미를 이루는 것이니 그것이 허깨비로 변화한 것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대덕들이여! 밖으로는 소리 내어 말을 하고 안으로는 마음 먹은 것을 표현하며 생각으로 헤아리는 것은 모두가 옷들인 샘이다. 그대들이 그렇게 걸친 옷을 실다운 견해라고 인정한다면 티끌 겁을 지난다 하더라도 옷만을 알았을 뿐이므로 3계에 돌고 돌며[循環] 생사에 윤회하게 되니 아무 일 없이 만나도 알아보지 못하고 함께 이야기해도 이름을 몰라보느니만 못하다. 오늘날 학인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대개가 명칭을 잘못 알고 알음알이를 내기 때문이다. 큰 책자 위에다 죽은 노장들의 말을 베껴 가지고 남이 보지 못하도록 세 겹 네 겹 보자기에 싸 놓고는 그것을 '오묘한 이치'라고 하면서 애지중지하는데 크게 잘못된 일이다. 바보들아! 말라빠진 뼈다귀 위에서 무슨 국물을 찾고 있느냐. 좋고 나쁜 것도 모르는 어떤 작자들은 경전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따져 의미를 만들어낸다. 이는 마치 똥덩이를 머금었다가 다시 뱉아서 다른 사람에게 먹여주는 것과도 같고 세인들이 귓속말로 비밀을 전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일생을 헛 보내면서도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라고 떠벌리나 다른 사람에게서 불법(佛法)에 대해 질문을 받으면 입 다물고 한마디 말도 없으니, 눈은 새까만 굴뚝 같고 입은 서까래를 건듯 꽉 다무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무리들은 미륵부처님이 나온다 하더라도 저 다른 세계로 쫓겨나서 지옥에 떨어져 갖은 고초를 받을 것이다. 대덕들이여! 그대들은 부산하게 제방을 쏘다니며 무엇을 구한다고 발바닥이 판대기가 되도록 돌아다니느냐. 원래 구할 부처도 없고, 이룰 도(道)가 없으며, 얻을 법(法)도 없다. 밖으로 모양있는 부처를 구한다면 그대들과는 닮지 않은 것이다. 그대들의 본래 마음을 알고자 하는가? 함께 있는 것도 아니고 떠나 있는 것도 아니다. 참 부처는 형상이 없고, 참 도는 바탕이 없으며, 참 법은 모양이 없다. 이 세 법이 섞여 한 곳에 융화한 것이니 이를 알지 못하는 자를 망망한 업식중생(業識衆生)이라고 부른다. 출처: 우곡선원(http://www.wookok.or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