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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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feeling (김종선)
날 짜 (Date): 2001년 1월 18일 목요일 오후 11시 55분 02초
제 목(Title): Re: to croce



만일 '나'를 정신과 육체의 조합이 아니라, 육체를 입은 영혼으로 정의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죠. 이 사람이 훗날 생각이 바뀌어서 다시 정신과 육체의 조합이라 
생각할 수 있겠죠? 이와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구요. '나'를 정의하는 것은 
사람의 가치관, 종교, 철학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정의는 이와같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객체(관념)의 조합일 뿐, 실제와는 
별 상관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정의를 내리는 한은 "정의하는 
주체로서의 '나'"는 항상 있습니다. (정의를 내리는 경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의지적, 의식적인 정의내림이고, 다른 하나는 수동적, 무의식적인 
정의내림입니다.) 

정의하는 순간에 분리가 일어난다고 하는 것은 이 정의내리는 '나'의 존재가 항상 
정의에 선행하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無我란, 이 선행하는 존재인 '나'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無가 있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니, 그냥 나라고 할만한 것은 없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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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기에 무아라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그것이 행할 수 있는 물리적인 
범위가 있습니다. 즉 각각의 존재라고 테두리 짓는 객체마다 현실적으로 어떠한 
행위할 수 있는 범위가 있습니다. 사람도 각각 현재 현실적으로 구현된 물리적인 
상황에 따라서 행위를 합니다. 

이 물리적인 상황은 수많은 각각의 다른 사람에 의해서 구별이 되고 또한 
수많은 종의 동물이 있는 것처럼 확연한 현실입니다. 

여기에서 이렇게 글을 읽고 대화하는 것은 스스로의 행위를 기억하고 또한 
볼 수 있는 물리적인 연결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나에 대한 개념도 
결국 이러한 작용에서 일어나는 물리적인 활동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행위하는 인간적인 것이 모두 인간이라는 몸의 구조와 그에 따라서 
일어나는 물질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생명이나 인간의 존재는 결국 이러한 물질적인 체계에서 일어나는 관계 현상을 
말합니다. 

계속 변하는 나라는 것은 결국 이 활동으로 일어나는 모양들입니다. 

인간이든 무생물이든 무엇이든 간에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 이러한 물리적인 
현상으로만 서로 작용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다른 존재의 심리를 있는 그대로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됩니다. 아마 이 자연을 본다면 기독교의 전지 전능한 
하나님이라는 개념은 완전히 허구라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결국 나의 몸이 상대의 몸에 어떠한 작용을 하고 그 반작용에 의해서 일어나는 
현상이 있을 뿐입니다. 

현재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이러한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서로의 상황에서 알고 느낀다면 서로 대화를 할 때에 상대방의 그러한 
현상에 대해서 생각하고 예측하고 수정하면서 의견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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