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1월 13일 토요일 오후 02시 36분 41초 제 목(Title): Re: to croce 나는 존재한다,라는 것은 하나의 상념입니다. 이것은 문자로 표현되어서 그런 것인데, 문자로 표현되기 이전의 그 느낌을 단어로 표현하자면 '존재감' 정도일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느끼는 때는 깊은 잠 속에서 막 깨어나려는 참입니다. 의식이 깨어나면서 육체를 느끼고, 중력을 느끼고, 눈을 뜨면서 '여기'가 아딘지를 인식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존재감'은 잠든 의식이 오감으로 흩어지면서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이 때에는 막연히 존재할 뿐, bbasha님도, 크로체도 딱히 내가 누구다하는 것이 없습니다. 나는 크로체다,하고 생각이 일어나는 것은 조금 더 후의 일입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것은 마치 발가벗고 자던 사람이 일어나면서 옷을 입는 것과도 같습니다. 기억이라는, 자아정체성이라는 相을 입어야만 크로체도 있고, bbasha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 相을 매일 아침 입고 나서 하루종일 그 옷에 따라 자기를 주장하고 살아가지요. 그 相과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잠에 빠져 그 둘을 떠나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일 아침이 다시 올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나'라는 것은 1인칭 대명사입니다. 이 육체, 이 마음, 이 정신의 총체를 가리키는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나'라고 할 때에는 여기에 많은 相들이 붙어 개성을 띤 '나'를 가꾸어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나이는 몇 살, 성별은 남자, 직업은 무엇이고, 인종은 황인종에다가 남한, 서울에서 살고 있다는 식입니다. 불교에서는 그 존재감 역시 연기(이것이 있음으로 저것도 있다)에 의해 일어나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그 존재감이라는 것도 나고 사라지는 空한 것이라 하는 것입니다.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다하여 제법무아라고 합니다. 존재감과 특별한 개성을 입은 육체와 마음,정신의 총체를 가리키는 '나'라는 단어는 그 모든 것들이 있기 이전의 그것을 가리키는 말은 아닌 것입니다. 부모미생전이라 하여,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기 이전의 '나'란 무엇이냐는 화두도 있습니다. 과연 그 '나'가 지금의 '나'와 어떻게 같고, 또 어떻게 다른가? '나'는 과연 나고 죽는 허망한 것인가? 하는 것이죠. >크로체님이 사용하는 '나'란 것은 무엇인지 그 정확한 뜻을 알려주신다면 >'대답하는 것이 과연 '나'라고 할만한 것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는데요. 제가 묻는 것은 bbasha님의 相을 걷고, 육신도, 교육받고 경험을 쌓은 마음도 치우고나면 무엇을 두고 bbasha님이라 할 것인가?입니다. 즉, 진짜 순수하게 bbasha님이라 할 것은 무엇인가를 묻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