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크로체) 날 짜 (Date): 2001년 1월 5일 금요일 오전 11시 28분 14초 제 목(Title): Re: 질문 석가는 유교의 5륜을 어겼다고 하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석가는 왕자로서 왕의 말을 듣지 않고 왕위세습을 거절했고,(군신유의) 또한 아버지말씀을 거역하고 집을 나갔습니다.(부자유친) 처자식이 있는 몸이었지만 이들을 버림으로서 남편으로 할일 또한 못했습니다. (부부유별) ===================================================================== 유교의 5륜은 당위의 相입니다. 공자가 옳다고 믿었던 相의 총체가 유교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당대를 거치고, 역사적으로 옳다고 받아들여지면서 사회적인 相이 된 것이죠. 유교의 相을 받아들이는 입장standpoint에서 보면, 석가는 패륜아입니다. 군신은 유의해야하고, 부자는 유친해야하며, 부부는 유별해야한다.라는 相을 받아들여 세상을 바라보고, 경험의 모양을 한정짓는 사람들을 오늘날에는 무척 보수적이다, 고루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죠. 오늘날 현대인들의 相과는 맞지 않는 점이 많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부모를 토막살해한 대학생 사건이 있었습니다. 유교의 5륜으로 해석하면 이것은 있을 수 없는 패륜입니다. 심리학적 관점으로 이 사건을 보면 원인-결과로 나타남을 봅니다. 심리학자가 심리학적 소견에 의해 이 사건을 분석한 뒤, 개인적으로 유교적 윤리에 비추어 개탄하고, 분노할 수도 있습니다. 코레프니쿠스였던가요? 지동설을 얘기했죠. 당시 사람들은 천동설을 믿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그 相을 패러다임이라 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때만 해도 인간이 달나라에 가게 되리라고 믿는 사람은 극소수였지요. TV에 방송되어 모든 사람이 눈으로 보게 되자, 우주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이 대중적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한계'가 깨진 것입니다. 칼 루이스와 같은 걸출한 육상선수가 100m를 9초 안에 주파하면 사람은 9초안에 100m를 달릴 수 없다는 과학자들의 相이 깨져버립니다. 이것은 실제로 일어난 예들입니다. ========================================================================= 또 한가지는 해탈에 관해서입니다. 불교는 삶의 집착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어 세속의 고통과 망상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세속에 대한 집착은 버렸다고 하더라도 , 깨달음/해탈에 대한 집착이 더 크게 자리잡아 결국 해탈에 이르기 전까지는 고통의 연속 아닌가요? 깨달음에 다가갔다고 해도, 한 사람이 살아가며 깨달음의 끝이 어딘지를 어떻게 알것이며, 결국 이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처음에 의도했던 바와는 달리 더 큰 고통을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닌지 생각됩니다. ========================================================================= 깨달음/해탈에 대한 집착도 집착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출가한 뒤, 온갖 스승들을 찾아가 갖은 법을 배웠으나 결국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보리수 나무에 앉아, 완전히 포기했습니다. 그 후에 무엇인가가 일어났지만, 그 일은 그 누구도 모릅니다. 삼세제불, 석가모니부처님도 모르는 일이고, 역대조사도 아는 바 없는 일입니다. '아는 사람'마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시작은 苦입니다. 생노병사의 苦이자, 존재하는 것 자체의 苦입니다. 그래서 일체개고라 합니다. 더 큰 고통, 작은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다는 것, 그리고 윤회한다는 것, 죽어도 다시 태어난다는 것 모두가 苦의 바다입니다. 苦에 대한 어렴풋한 인식,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절망의 바램을 發心이라 합니다. 이것은 돈을 벌어야 처자식을 먹여살릴텐데하는 구체적인 苦가 아니라 전면적인 苦입니다. 석가모니는 몸도 건강하고, 똑똑했으며, 거기에다 왕자였습니다. 무엇 하나 구체적인 苦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지요. 무료함과 허무함의 생활 속에서 발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