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2001년 1월 5일 금요일 오전 08시 25분 48초 제 목(Title): Re: 판단, to croce, staire 스테어님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뛰어난 지적 능력의 소유자 이십니다. 또한 어느 누구 못지않게 경전과 책들을 많이 보신 분들 중에 한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핏보면 순진한듯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여기서 왠만한 사람이면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을 겁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면서 질문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점은 공감하시겠죠? 스테어님께서 왜 그런 질문을 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스테님의 삶의 모습이기때문에 제가 판단할 것이 아닙니다. ----------------------------- 저의 지적 능력은 제가 가늠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뭐라 말씀드릴 수 없으며 저의 독서량 역시 누구와 비교해 본 적이 없으니 스스로 재량할 바 아닙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불교에 대해 이것저것 줏어들은 게 적지 않음에도 불교에 대한 저의 지식은 겉핥기에 불과하며 일견 사소해보이는 데에서 크게 오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연전에 제가 기독교보드에 이렇게 쓴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은 절대자에 의해 주어지는 것이며 결코 스스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지만 불교에서의 해탈이란 누구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해탈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글에 대해 크로체님께서는 이런 지적을 하셨습니다. "대체로 맞는 얘기지만 '해탈에 도달한다'는 표현은 잘못이다. 오히려 '해탈에 이미 이르러 있음을 깨닫는다'고 말하는 편이 적절하다." 지적받기 전에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는 문제입니다만 사소한 곳에서 저는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부처의 상 문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소박한 질문을 드린 이유는 크로체님을 곤경에 빠뜨리거나 불교를 공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처는 상을 만드는가 안 만드는가'라는 일견 당연해보이는 질문에 대해서조차 저로서는 자신있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며 그로 인해 더 이상의 추론이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문제는 크로체님의 답을 듣고서도 여전히 개운하지 않다는 거죠. 상을 안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을 여읜다 라는 설명에 부합되지 않는 구석이 여전히 경전이나 석가의 행장 여기저기에 남아 있기도 하고 좀더 근본적으로는 그런 설명의 근거가 전혀 주어지지 않은 채 마치 당위론인 듯 주장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크로체님이나 다른 분들께서 불교보드에 올리신 많은 글에 대해 제가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체로 이와 같습니다. 물론 '근거'를 찾아나서는 것은 저의 방식일 뿐입니다. ^^ ps. 이미 짐작하시겠지만 저는 뜨거운 매운탕에 입을 데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편입니다. pps. 윤상이를 아신다니 반갑군요. 오랫동안 소식을 전하지 못했는데 연락이 닿으신다면 안부를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