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Enlight (D.S.) 날 짜 (Date): 2000년 12월 21일 목요일 오전 06시 02분 44초 제 목(Title): Re: 뜰 앞의 잣나무 크로체님은 잣나무는 보았지만 부처는 보지 못했군요. 부처가 무엇이냐는 제자의 질문에 뜰앞의 잣나무다 라고 대답한것은 잣나무에 심오한 뜻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잣나무에 어떠한 상징을 부여하면 그건 선불교가 아닐뿐만 아니라 불교가 아닙니다. 잣나무에는 아무런 뜻이 없습니다. 마른 똥막대기에 아무런 뜻이 없듯이 말입니다. 그럼 왜 뜰앞의 잣나무라고 하였는가 풀어보겠습니다. 제자가 스승을 바라보며 부처를 물어 보았을때는 스승에게서 부처의 어떠한 설명이나 형상을 바랬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는 제자에게 스승은 엉뚱하게도 '네 마음이 부처다" 라고 하지 않고 ''뜰앞의 잣나무'다 라고 말을 합니다. 분명 제자는 웬만한 경전쯤은 넉근히 소화해 낼수 있는 실력의 소유자였을 것입니다. 이렇게 문자에 매달려 있는 제자들에게는 화두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경전이 필요없다는 것이 아니라, 화두선은 근기에 맞춰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도통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는 차근차근 경전을 이해 시키며 화두선에 들게 하는게 좋습니다. 아무튼 이렇듯 경전과 부처라는 상에 집착한 제자에게 전혀 어뚱하게도 뜰앞에 있는 잣나무를 가리킨데에는 설명하기 복잡한 뜻이 숨어 있습니다. 거기에 잣나무가 있던 소나무가 있던 개구리가 있던 아무 상관없습니다. 제자는 뜰앞에 있는 잣나무를 보기위해서 뒤 돌아 봐야 합니다. 대충 여름의 한 낮이라고 합시다. 제자는 스승의 얼굴을 쳐다보며 부처를 찾고 스승은 눈앞에 보이는 잣나무에서 부처를 찾습니다. 이건 공간적으로 대조적인 상황입니다. 제자는 뒤통수에 눈이 달리지 않는한 고개를 돌려 시선을 스승에게서 벽으로 벽에서 문으로 문에서 마당으로 그리고 잣나무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잣나무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제자가 잣나무를 바라보지 않으면 이 공안은 시작부터 틀린 것입 니다. 그래서 그 상황에 있지 않는 사람은 이 공안을 풀수 없습니다. 스승이 잣나무라고 말하는 순간 시선의 이동과 함께 잣나무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게 뭔소리인가 하고 의심하는 순간 사고를 멈추어야 합니다. 더이상 거기서 사고를 하게 되면 이 화두는 가치가 떨어집니다. 이 순간 스승의 시야와 제자의 시야가 같은 방향으로 있게 됩니다.� 이때 스승이 제자의 뒤통수를 쳐도 좋고, 제자의 이름을 불러도 좋습니다. 그러면 제자는 다시 시선을 스승에게 옮겨오게 됩니다. 이제 서로의 시선이 마주칩니다. 스승이 보는 세계와 제자가 보는 세계가 합쳐져서 360도를 이룹니다. 제자가 부처라 생각했던 스승이 앞에 있고 스승이 부처라 불렀던 잣나무가 뒤에 있습니다. 그리고 공간적으로 방과 마당이 연결됩니다. 즉 하나의 큰 원이 그려지는 셈입니다. 이것을 심오하게 일원상이라 불러도 무방합니다. 과연 여기서 제자가 이 화두의 본뜻을 알아 차릴수 있는지 없는지는 어디까지나 제자의 몫입니다. 부처를 맞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여라 라는 말이 있습니다. 절대 형상있는 부처나 보살을 구해서는 불도를 이룰수가 없습니다. 만약 내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당장 그 잣나무를 댕강 베어 갖다 버렸을 것입니다. 마음밖에서 부처를 구할수는 없는 것입니다. 마음밖에서 부처를 찾는 제자에게 스승은 잣나무를 가리키며 뒤를 돌아보게 한것입니다. 잣나무에는 어떠한 심오한 뜻도 없으며 스승이 대답하기 귀찬아서 대충 내 보낼려고 둘러댄 대답이 아닙니다. 스승은 한번 제자가 볼수 없는 뒤통수의 세계를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 제자는 그것을 봐야하고 다시 스승과 눈을 마주침으로서 큰 동심원을 그려야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고가 멈추어 지는 순간 내면의 부처가 나타나는 것으로 이 공안은 풀어집니다. -------------------------------------- Show me your smil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