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wwww (DD15러셀) 날 짜 (Date): 2000년 12월 12일 화요일 오후 05시 26분 05초 제 목(Title): 뜰 앞의 잣나무 옛날에 부처란 무엇입니까 하는 질문에 한 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니라.' 했다고 합니다. 언듯 보기에 이런 선문답은 이해하기 어려운 암호문 같지만 그 당시 상황에서는 가장 쉬운 방편일 수 있습니다. (직지인심) 가령 그 뜰 앞의 잣나무가 오래되어, 잎이 다한 고목이라면 어떨까요. 또한 때가 찬바람 스산한 늦가을이거나 눈내리는 한겨울이어서 잎 하나 없는 알몸이라면 또 어떨까요. 부처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런 저런 경전의 말씀을 들어서 말하는 것보다 그냥 뜰 앞에 앙상하게 서있는 잣나무를 말없이 가리켜 보이는 것이 업식의 구름을 걷고 기틀을 깨치게 하는 가르침일 수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그 제자는 뜰 앞의 잣나무를 보면서 자신의 본성을 보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부처란 저 뜰 앞의 잣나무처럼 잎이 다 떨어진 고목나무 같은 것이다.' 뜰 앞의 잣나무를 가리켰던 선사는 자신도 뜰 앞의 잣나무와 같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탐진치의 번뇌의 잎사귀들이 다 떨어진 無心의 상태를 뜰 앞의 잣나무에 비유하였던 것이죠. 저 뜰 앞의 보잘 것 없는 잣나무. 잎사귀도 없이 앙상하지만 거기엔 고통도, 집착도 없이 그저 평화로울 뿐입니다. 어쩌면 제자는 佛法이란 것이 나뭇잎을 풍성하게 하고, 과실을 많이 열리게 하는 것이라 믿었을 지도 모릅니다. 깨달은 부처는 온갖 신통을 부릴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스승은 냉정하게 뜰 앞의 잣나무를 가리킵니다. 佛法이란 비우고, 버리고, 죽어가는 과정에 가까운 것이라는 지극히 실망스럽고, 평범한 사실을 뜰 앞의 잣나무에 비유하며, 그래도 부처가 되고프냐? 그러면 내 불법의 종지를 전해주리라 하는 것입니다. 해탈과 열반, 불법의 깨달음은 완전한 죽음을 뜻합니다. 업을 받아서 다시 태어나는 인생의 불완전 연소를 지향하지 않습니다. 공덕을 쌓아서 천국에 태어나고자 하는 유위법이 아닙니다. 만일 깨달음을 추구하는 사람이 완전한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영생이나 극락왕생과 같은 유위법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불법이 아니라 외도의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다음생을 기약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