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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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rama (박화균)
날 짜 (Date): 1995년08월04일(금) 15시20분03초 KDT
제 목(Title): RE]노용호님 질문



글쎄요 
제가 잘은 모르지만 불교인의 입장에서 대답해보겠읍니다.
1.착하게 살면 깨달은 것이 아닌가?
불교의 가르침을 말하는 다음과 같은 경귀가 있읍니다.
제악수선| 악한 일을 하지 않고 착한 일을 하며
이고득락| 고통을 떠나서 즐거움을 얻는다.
전미개오| 어리석음을 떠나서 깨닫는다.
위의 게송에서 보듯이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는 충분히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남들에게 잘 해주지만 자기자신은 괴로운 사람이 있습니다.그래서
요즘 심리학에서는 사람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서 윤리도덕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지요.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착하게 살면서 자기 자신도 괴로움이 없고  자유로와야 합니다.즉 억지로 착하게 
사느라 속으로 끙끙 앓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지요.
깨닫는다는 것은 글쎄요 좀 어렵네요.잘은 모르겠고 자기 마음의 주인이 되는 것,
자유로와지는 것 정도가 아닐까요.
2.불교와 단학
우선 단학에서도 호흡은 다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식호흡을 백날 해도 기를 느끼지 못하면 단전호흡이 아니지요.
불교에서도 호흡은 중요한 수행법입니다.그러나 중요한 것은 호흡을 수련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단학에서는 보통 호흡을 가늘고 길게 조정하려고 합니다.그렇지 
않은 유파도 있지만요.불교에서 호흡은 집중의 대상(사마타),또는 관찰의 
대상(위빠사나)입니다.호흡자체를 억지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관찰함으로써 마음을 고요히 하거나(사마타),제법무아의 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참선에서도 호흡을 조정하는 경우가 있으나 그 경우도 중심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있는 것입니다.
또 단학의 목표는 성통공완이라고 해서 자기자신의 본성을 찾아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읍니다.얼핏 보면 불교와 비슷하지요.하지만 불교에서는 
영원한 나 같은 것을 인정하지 않읍니다.제법무아입니다.물론 어떤 사람은 소아는 
존재하지 않지만 대아는 존재한다,또는 진공묘유다 이런 어려운 말을 
쓰지만요.그렇게 어려운 것은 잘 모르겠고요 불교의 목적은 고집멸도에서 알 수 
있듯이 고통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와지는 것입니다.단학의 목표와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무아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요.무아는 단학뿐만 아니라 불교와 다른 
사상이나 종교,수행법과의 차이점을 말해주는 지표입니다.
3.불교와 신통
앞에서 말했듯이 불교의 가르침은 고통에서 벗어나 자유로와지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이것과 신통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지요.수행을 하다 보면 신통이 생기는
경우도 있지만요.그 경우에도 거기에 집착한다면 자유가 아닌 속박의 길로 
접어드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신통에 집착하면 접신이 된다고 하는데 잘 모르겠고요.
또 어떤 사람은 신통은 수행을 잘못 한 결과이고 특히 마음 속에 바라는 것이 있을 
때 생긴다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신통은 무기에 빠지기 때문에 나타난다고도 하고요.무기는 마음이 
아주 고요해지는 것을 말하는데 한마디로 멍청한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사람이 신통을 부려야지 신통이 사람을 부려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4.좌선외의 수행방법
좌선을 어떤 의미로 말씀하신 것인지 잘 모르겠군요.예를 들면 간화선을 
말씀하시는지 아니면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않아서 ㅎ錚�  것을 말씀하시는지?
어떤 스님,아니 대부분의 스님들이 특히 큰 스님일수록 화두를 들지 않으면 
깨닫지 못한다고 하지만요,제 생각에는 그렇지 않은 것같아요.
부처님 당시에 깨달은 기연을 보면 정말 다양하거든요.거해스님이 쓴 
법구경(고려원)을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제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야기를 떠들었군요.하지만 위의 이야기는 아마도 불교
입문서에 나오는 모범답안에 가까우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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