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freeway (limelite) 날 짜 (Date): 2000년 10월 14일 토요일 오전 02시 49분 50초 제 목(Title): 업을 쌓는 사람... 예전에 좋은 인상을 받으며 읽었던 "보리와 임금님"이라는 동화집이 있었는데, 거기의 '보리와 임금님' 편 마지막 쯤에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정확히 기억은 안나고 대충). "보리와 임금님 중 누가 더 황금색이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직접 하기 전에 예와 질문을 던져 보려고 합니다. 몇 사람이 세상의 악업을 끊기 위해서 속세를 멀리해 산으로 올라가 수도를 합니다. 속세가 평화롭다면 이들의 수도 생활은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만, 속세가 평화롭지 않다면 어떻게 될까요? 속세에서 악업을 퍼뜨리던 누군가 수행하는 곳까지 와서 악업을 퍼뜨리면 어떻하지요? 누군가는 심지어 수행자의 수행을 아예 멎도록도 할 것입니다. (좀 끔찍한 예지만 수행자를 살해할 수도... -_-; 역사적으로 종종 사례가 있듯이...) 이런 일이 있더라도 돌고 도는 업이 만들어 낸 문제일 뿐이다면서, 운이 좋은지 업이 좋은지 편히 수행할 수 있는 자신만 수행하면 될까요? 자기만 업을 쌓지 않으면 된다는 생각은, 업이 상호관계 속에 얽혀 끊임없이 생산되면서 끊임없이 전파되는 면을 생각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좋은 업이 종종 다른 좋은 업을 만들어 내듯이, 나쁜 업도 종종 다른 나쁜 업들을 계속적으로 만들어 냅니다. 누군가 그 나쁜 업을 끊어내기 전까지는요. 그 나쁜 업을 누가 끊어야 할까요? > 2817 guest (김 태하 ) 9.22 62 박노자/ 왜 아니오라고 말못하는가? 위 글에서, 우리나라에 불교를 배우러 왔다던 헨릭이라는 사람이 우리나라 불교계의 파시즘적 성격을 지적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중에 호국불교라는 것도 비판의 도마에 올랐었지요. 호국불교라는 용어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불교가 독재와 전체주의에 이용된 점... 우리 국민이 그네들 국민보다 일반적인 의식 수준이 낮은 점... 세상에서 묻은 때를 절에 와서도 씻어내지 못하고 도량을 물들이는 승려들 등등... 이런 문제들에 대한 지적은 충분히 공감하며, 불교에 앞선 나라에 배우러 온 사람에게 오히려 부끄러워 해야 할 점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글 쓴 사람이 이해를 못해서인지 다른 이유로 표현이 안되서인지, 그 글로만 봐서는 악업을 끊기 위해서 창칼을 들어야 했던 옛 승려들에 대해서 온전하게 이해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수행자가 사는 나라에 전쟁이 일어 부당하게 침입을 받고 곳곳에서 악업이 폭증합니다. 무지한 속세인들은 침략의 부당함에 대항한다면서 또 다른 악업을 만들어 냅니다. 그 침략에 의한 악업은 산 중의 수행자와 그들의 도량도 가리지 않습니다. 이럴 때 수행자 들은 모른 척 어디 다른 곳으로 피해서 자기 수행 에만 전념하면 될까요? 차라리 좀 더 악업을 줄이는 방법을 아는 수행자들이 창칼이라도 들고 나서서 세상의 악업을 좀 더 줄이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 뜻이 현대의 독재자에게 이용된 것은 유감이지만, 조선의 승병들이 창칼을 든 뜻은 세상의 악업을 좀 더 줄이고자 하는 것에 가까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그렇게 석가 부처가 깨달음을 얻은 후 오히려 세상으로 나온 뜻하고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이런 행위는, 헨릭이 살던 서양에서 많은 철학자들이 종종 부당한 전쟁과 독재 등에 자기 목숨을 바쳐 싸운 것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그 철학자들이 싸우면서 손에 총칼을 잡고 피비린내를 묻혔다고 해서, 그들 철학의 가치를 깎아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불교적이 아닌 해석이라도 창칼을 잡은 승려들의 행위는 충분히 온당한 것으로 평가될 수 있습니다. 윗글의 헨릭이라는 사람이 만약 정말 이런 면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어쩌면 그 사람에게는 소승적인 자기 참선의 세계가 더 어울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어울리지 못하는 우리나라도 어서 그가 왔다는 나라처럼 살기 좋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자신과 세상을 좀 더 잘 바라보면서, 악업을 쌓는 일도 줄어 들겠지요. 그러기 위해서는 할 일도 많고 싸워야 할 일도 많습니다. 수행자가 편히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면서 수행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만큼 수행자가 사는 세상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 편안한 세상을 위해, 수행자가 편안히 수행을 할 수 있기 위해, 누군가는 손에 더러운 냄새를 묻히면서 궂은 일을 하고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럼, 이제 다시 질문을 해 보겠습니다. 악업이 쌓이고 있는 현실은 한쪽 눈으로 외면하면서 자신만 점잖게 수도를 하는 사람과, 악업이 끊기도록 냄새 묻히면서 싸우는 사람... 외면하는 수행 자와 냄새 나는 속세의 망나니... 둘 중 누가 더 업을 쌓을까요? 누가 더 업을 쌓아야 할까요?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이런 점은 실세계나 비비에스 같은 사이버 세계 어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만두 같은 마두가 횡횡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유치한 논변에 맞상대를 해 가면서 싸웠기 때문에, 고귀한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이 자신의 고귀한 생각을 마음 편히 키즈의 여러 곳에 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지키려하지 않고 점잖게 상대만 해 가지고는 시만두 같은 악업과 그 폐해가 갈수록 늘어난다는 것 역시 실세계와 마찬가지고요. 이럴 때 자기 글의 점잖음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었던가는 생각않고, 자신 글의 점잖음과 싸움 글의 저열함만을 비교해서 싸움의 의미를 낮춘다면, 결국 자기 스스로를 위험으로 몰아가는 행동이 되겠지요. (쉽게 이야기해서 배신 때리고 인과응보 받는 거... ^^) 불교보드에서도 역시... 불교보드의 차분함이 유지되는 것은, 말로 업을 쌓지 않으려는 불교보드인들의 차분함도 큰 역할을 했겠지만, 누군가 잘못된 종교 관을 가진 사람의 잘못된 이야기를 불교보드에서 하는 것을 불교보드 내외 에서 막았기 때문에 지켜진 면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kimdh님 글을 읽고 생각나서 쓴 글이지만, 적고보니 kimdh님 글과 꼭 많이 상관 있다고 할 글은 아니군요. 아무튼, 가만 놔두면 잘못된 글과 생각에 동조하고 말려들어가면서도, 점잖음은 자신의 것 싸움의 저열함의 남의 것이라며 탓하는 경우가 있어 적어봤습니다.) **************************************************************************** ***** 이 아이디는 limelite가 한시적으로 빌려쓰는 아이디입니다. ***** ***** (Kids@Web - http://myhome.hananet.net/~limelite/kids/)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