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Mind ( 이승환) 날 짜 (Date): 1995년07월07일(금) 16시40분12초 KDT 제 목(Title): [수행] 문사수님께 정말 이해를 못하시는군요. 저는 그래도 문사수님이 어느정 도는 저와 같은 것을 이미 공유하고 계시는 줄 알았는데 아마 그렇지 않거나, 그렇다 하더라도 인정을 하시지 않으시는 것 이겠지요. 단 10분이라도 다른 어떠한 번뇌도 일으키지 않는 화두 삼 매에 혹은 어떤 삼매라도 좋으니까 들어 보신 적이 있으십니 까? 그리고 그것이 자유롭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없으십니 까? 번뇌와 욕망으로부터의 자유. 이것보다 더 큰 자유가 어 디에 있겠습니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러한 경험이 단순한 일회성의 경험으로 끝이 날 것이지만 그것이 그렇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시간의 자유, 하루의 자유, 일주일의 자유, 일년의 자유, 자유의 시간은 점점 늘어갈 것이며 자유의 크기 또한 점점 커 녀갈 것입니다. 그리고는 결국 궁극적인 자유를 얻을 것이지 요. 문사수님이 지금 하시는 수행으로부터 그러한 모든 시간을 뛰어넘는 자유를 얻으실 수 있나요? 중생은 본래 부처입니다. 부처는 모든 것에 얽매이거나 머 무르지 않지요. 정말이지 자유롭습니다. 문사수님 역시 자유를 위해, 해탈을 위해 나아가고 계시겠 지요. 문사수님의 노력에 많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새삼스레 무엇을 더 말하겠습니까. 한가지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제까지 말씀드린 모든 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경 험과 스승님의 경험이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저를 믿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문사수님의 자유이지요. 하지만 나아가는 방법이 있고 나아간 사람이 있 다는 것 외에 제가 말씀드린 것이 불가능한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어찌 증명하겠습니까. 저는 분명히 예전보다 더욱 자유로우며, 이미 완전한 자유, 해탈의 길을 전해 들었고 그것으로 나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 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문사수님의 방법이 무엇을 말하는 지도 알며 왜 제가 그것 을 택하지 않는지는 문사수님도 아실 것입니다. 이러한 토론이 꼭 필요한 것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문 사수님의 글에서 점점 저에 대한 반감을 느끼게 되는군요. 자 유를 위해 나아가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위해 비판하는 것은 좋지만 이러한 감정적 대응은 결코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문사수님을 위한 비판은 더이상 하고 싶지 않군요. 필요하시 다면 글을 올려주십시오. 앞으로 저의 다른 글들을 많이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