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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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yonho (Song)
날 짜 (Date): 1995년06월28일(수) 09시40분29초 KDT
제 목(Title): RE:윤회사상에 대하여


  불교의 특징중의 하나는 윤회사상이라 할 수 있는데 실상 윤회는 그 훨씬
이전부터 인도에 있어왔던 것입니다.  우파니샤드나 베단타에도 윤회에
대한 언급이 나오고 부처님 당시의 이른바 육사외도의 대부분도 윤회를 인정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석가모니 부처님은 오히려 윤회에 대하여
언급을 하지 않았음을 초기경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후대에 내려오면서 특히 유식학파에서 윤회를 부처님이 설했던 12연기와
관련하여 설명합니다.  즉 12연기를 사용하여 윤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구조를 상당히 자세하게 밝혔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들이 목표로
한 것은 결코 윤회가 실재로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윤회의 주체가 '무아'라는 것을 밝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윤회의 주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윤회가 있을 수 있는가?  그리고
윤회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아와 윤회의 중간을
매개하는 것으로써 그들이 도입한 것이 12연기의 맨 처음에 나오는 바로 '무명'
이라는 것입니다.  무명, 즉 실상에 대한 무지와 이에 따른 잘못된 집착이
업을 만들고 그것이 생로병사의 고통이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혹(惑)-업(業)-고(苦)라 한다.)

  무아란 나라고 집착할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빼고 윤회가
실재로 있는지 없는지를 맹목적으로 따지는 것은 쓸데 없는 짓일뿐만 아니라
자아가 실재로 존재한다는 잘못된 편견에 빠질 수 있는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교를 믿는다는 것은 윤회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나라고
믿는 이 나가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물론 이때의
나란 가짜 나입니다.  불교에서 윤회를 거론하는 까닭중의 하나는 설사 그것이
존재하더라도 그 이면에는 무아가 있다는 것을 밝히고자 함입니다.    따라서
윤회를 올바로 이해한다는 것은 생명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본래의 무아로
되돌아가서 자리이타의 보살행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송 연호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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