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limelite (깜찍이중독) 날 짜 (Date): 1999년 11월 3일 수요일 오전 12시 55분 01초 제 목(Title): [퍼옴]카오스이론과 불교9-업과 록인 제 목: 카오스이론과 불교9-업과 록인 PAGE: 1/ 9 ─────────────────────────────────────── 창조적 결정론 "업" 사상의 기본은 과거의 일이 현실에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전생의 업", "조상의 업"이라는 말이 현실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업은 반드시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만일 현재의 일 모두가 과거의 인연의 결과라고 한다면 인간은 단순 한 과거의 노예이며 인생은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결정되어 있다는 결 정론, 또는 운명론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석가모니가 마지막으로 제자 아난에게 남긴 말은 "자등명(자등명)" 이었다. 이 말씀을 상기하면 인간은 과거의 인연의 결과였다 하더라도 이 순간의 결정은 나 자신에게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불교적인 연기론은 연기와 업의 고리에서 인간의 창조성을 강조하고 있다. "창조"는 우연성 속에서도 의지가 주체적으로 개입됨으로써 태어나며, 미래는 불확정적이라는 의미도 내포한다. 복잡계의 하나인 카오스는 일반적으로 "결정론적으로 진행하던 것이 어느 순간 확률론적으로 변한다"고 정의되고 있다. 가장 좋은 보기가 일기예보이다. 일기예보에서는 늘 "오늘 비 올 확률은 몇 %다"라는 식으로 표현하는데, 그만큼 일기를 확실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사실 "확률"이라는 표현에는 이미 맞추지 못할 부분이 상당히 포함 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동전을 던질 때 앞면이 나올 확률이 1/2 이라는 것은 동전을 여러 번 던졌을 때 앞면이 나오는 경우가 두 번에 한 번꼴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음엔 반드시 앞면이 나온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순간의 일기는 결정적으로 말할 수는 있어도, 언제 돌변할지 알 수 없 는 것이므로 확률론적인 예측만이 가능한 것이다. A에서 B까지는 결정론적인 코스를 밟다가도 B에서부터는 두 개의 선 사이에 있는 공간 내의 어느 점에도 도달할 수 있는 확률적인 가능 성이 있다. 요컨대 이 순간은 과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 과거 의 연장선에서 그대로 내일의(B이후의) 일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우연적인 요소가 개입할 요지가 다분이 들어 있다. 먼 과거, 먼 곳에서 있었던,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헤아릴 수도 없는 연기의 결과로 B에 당도했으나 이 순간(B)에서 주체적으로 행한 일이 미래, 또는 자손에 게 커다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교훈적인 의미가 되기도 한다. 따라서 불교적인 인간관, 세계관은 현존재를 연기와 창조성으로 엮는 카오스, 넓게는 복잡계로 보는 입장과도 같다. 이 사실을 넓게 생각한 다면 인간뿐만 아니라 우주, 삼라만상 모두가 우연, 확률적인 창조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 순간 한 순간에는 과거에 의존하는 부분과 주체에 의한 창조성의 부분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곧 자신의 의지가 발동되지 않는 한 과거에 축적된 역사체험, 곧 인과의 쇠사슬에 묶인 미래를 갖 게 됨을 뜻한다. 불교적인 표현으로는 업의 결과에만 의존하는 인생이 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선의 창조성 선(선)은 창조성의 발동이 인과의 고리의 단절로서만이 가능함을 말 한다. 그것은 지금까지 지녀 온 무명, 미망의 현실에서 벗어난 자신의 참모습을 응시하라는 말로 표현한다. 공안을 앞에 두고 마음을 집중시 켜 자아의 내면으로 계속 파고들어간다. 자기가 자기를 객관화하고 분해하여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 다. 자기에게 덮혀 있는 온갖 인과의 결과를 하나씩 떨쳐가는 작업이 기도 하다. "자신의 참모습"의 발견은 곧 이 세상에 태어난 이후 계속 가족, 사 회 등에서 쌓아 온 인과의 과정임을 알아차리고 이들을 벗어던지는 데 있다. "부모가 태어나기 전(부모미생이전)" 또는 "하늘과 땅이 갈라 지기 이전의 세계(천지미분이전)"의 "나"라는 공안이 있다. 부모가 태어나기 전의 나는 물리적으로는 볼 수 없다. 현실적으로 있 을 수 없는 그 시기의 나는 가족, 마을, 나라. 등 온갖 미망의 가치관 에 조금도 물들지 않았을 때다. 그때의 나의 참모습은 지금의 내가 아니라 어떤 인과 연에도 얽매이 지 않던 백지와도 같은 상태이며, 그렇기에 무엇이라도 될 수 있는, 업 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존재인 것이다. 일단 무구의 상태로 되돌아 갈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스스로의 의지 로 무한의 선택지 속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재생할 수 있는 것이다. 우 리는 태어나자마자 바깥 세계의 온갖 것을 오온(오온)으로써 받아들이 고 있다. 오온이란 모든 현상을 구성하는 근원적 요소인, "색, 수, 상, 행, 식"이다. 색은 모양이나 색깔을 지닌 객관적 존재 모두를 지목하 며, 나머지 수, 상, 행, 식은 주관적인 정신 요소이다. 수(수)는 쾌감과 고통 등 감수적인 현상, 상(상)은 모양을 갖는 표상, 행(행)은 그 위에 구성된 의식, 식(식)은 차별.비교하는 의식이다. 이 들 5개를 모아 규정하는 것이 오온이다. 모든 존재와 현상을 구성하는 5개의 요소는 서로 얽혀 있는 것이므로 고정적, 확정적인 것이 아닌 무아(무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오온을 통해서 들어오는 대 상을 진실인줄 알고 있다. "부모말생이전"의 경지가 되면 오온이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이므 로 어떤 과거의 인연의 영향도 받지 않는 깨끗하고 티끌도 하나 없는 상태(청정무구)이다. 그러나 이미 태어난 인간은 현실적으로 태어나기 이전의 자신이 될 수 없다. 지금 살아 숨 쉬는 상태에서 청정무구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반야심경>에 있는 "오온개공"임을 깨닫는 일이다. 반야의 지혜는 태어난 이후 오온을 통해 얻은 지식, 가치관 일체가 허상임을 알아차 리는 것이다. 청정무구의 자유 복잡계의 이론에는 록인(Lock in), 또는 고착화현상을 강조한다. 구체 적인 예를 든다면 시계가 오른쪽으로 도는 것이나 자동차가 좌측통행 을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처음 그와 같이 결정된 것은 필연적인 이유가 아니라 우연한 기회로 그렇게 정해진 데 불과하다. 본래 시계가 오른쪽으로 돌고, 차들이 우 측통행을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일단 정해진 후에는 그 양식 은 바뀌지 않는다. 타이프라이터의 자판의 좌측 첫글은 QWERTY로 배열되어 있다. 이 것은 백여년 전 처음 타이프라이터가 만들어 졌을 때의 구조 그대로이 다. 그것이 반드시 최상은 아니지만 일단 그렇게 정해 놓은 뒤에는 고 착화되어 컴퓨터시대인 요즘에도 그대로 답습되고 있다. 인간의 선입견, 사회적 가치관. 등은 결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어느 시기에 그것이 결정된 뒤에 바뀌지 않고 계속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우리 속담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란 세 살 때 고착화된 성미가 평생동안 변치 않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착화, 곧 록인은 가치관 이 일단 정해진 후에는 마치 자물쇠를 채워 놓은 것처럼 평생 열리지 않고 그대로 지니고 간다는 의미이다. 자물쇠로 잠겨져 있는 인과의 덩어리를 풀어 놓는 것이 곧 자유이다. 불교에서는 일단 정해진 가치관은 태어나서부터 오온을 통해 온갖 환 경조건에서 형성된 것이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지금 내가 지닌 가치와 지식은 착각이며 그 본질은 공이므로 인간의 오염에 물이 들기 이전의 모습으로 되돌아 가라는 것이다. 일단 인과의 고리를 떨 친 청정무구의 상태로 돌아간다면 공간적으로는 삼라만상, 시간적으로 는 미래와 영원, 일체를 나의 주관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어 천지와 한 뿌리가 되고 시간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유무의(자유무석의)의 경 지가 된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발행일(1740호):1999년 11월 2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