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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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9월  8일 수요일 오전 12시 58분 14초
제 목(Title): 카오스이론과 불교<2>-피타고라스 한계와 �


번호 : 11/4201                  입력일 : 1999/09/06 14:08:26    자료량 : 144줄
제목 : 카오스이론과 불교<2>-피타고라스 한계와 연기론      

 B.C. 6세기는 과학 수준이 낮았던 때였기 때문에 ‘모든 것은 수이다
’라는 피타고라스의 철학은  설득력을 지녔었다. 가령 손가락의  개수
는 5개이며, 정다면체의 개수도 5개이고, 행성의 개수도 5개(당시의 과
학지식)라는 식으로  모든 5와 관련되는 이  현상들을 5의 형이상학적 
의미로 파악했던 것이다. 

 특히  피타고라스는 정삼각형,  정사각형으로 구성되는  정입방체로써 
정4면체, 정8면체, 정20면체의 존재를 밝혔다. 그리고는 정4면체와  정6
면체, 정8면체,…  등의 아름다운 대칭성을 지닌  정입방체들이 다음과 
같이 대응한다고 생각했다. 

. 정4면체 = 불
. 정6면체 = 흙 
. 정8면체 = 공기
. 정20면체 = 물

 피타고라스 학파는 이들 네 개의 정입방체와 정5각형으로 만들어지는 
정12면체를 합쳐서  정입방체가 모두 5개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였으
나, 당시 원소로는 불,  흙, 공기, 물의 4원소만을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정12면체는 별개로 특별취급을 받았다. 

 이때 원소의 개수는 꼭  5개여야 이야기가 들어맞는데 철학과 현실의 
관계를 합리화 할  때 나타나는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동양철학(주자
학)에서도 이와 같은 경향이  있었다. 가령 눈의 결정은 6각형이고, 거
북의 등무늬도 6각형이다. 따라서 물의  수는 6, 또는 6은 물을 나타낸
다는 식이다. 

피타고라스의 한계
 요컨대 피타고라스는 이와 같이 여러 개의 대상에 ‘5’라는 수가 있
음으로써 5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  음악
과 수학의 관계는  지난 주에 이미 설명했는데, 음악 외에도  피타고라
스는 아름다움에 수가  개입됨을 ‘황금분할(또는 황금비)’로 설명했
다. 
 황금분할이란    직사각형은     가로,    세로의    길이의     
비가                                   
=1.6183.......일 때가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것인데, 이 비율은  불상에
도 나타난다.


 이와 같이 천문학, 기하학, 수론, 미학 ..... 등에 수가 관련되어 있었으
므로 피타고라스의 ‘모든 것은 수’라는 신념은 더욱 더 확고해질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믿음은 현대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희랍
의 지적 세계에서는 보편적이었다. 

 피타고라스가 기하학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가장 큰 이유는 ‘증명
’을 중시했기 때문이다. 증명은 곧 논리적으로 설명되는 것만이  진리
이며, 곧 진리는 증명되는 것이라는 믿음이다. 

황금분할이 나타난 불상
 직각삼각형에 관한 삼평방의 정리,  즉 밑변의 제곱 + 높이의 제곱 = 
빗변의 제곱(a²+b²=c²)은 어느 문명권에서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
던 명제이다. 

 한국에서도 옛날에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맨처음 기둥을 반듯하게 
직각으로 세워야 하는데 기둥과  밑변, 빗변의 길이가 3, 4, 5가 될  때
(3²+4²=5², 즉 9+16=25)가 그렇게 된다고 확인했다. 

 이 사실을 처음으로 증명한  것도 피타고라스학파였으므로 이 정리에 
그의 이름이 붙는다. 당시로서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으나 기어코  증명
에 성공한 피타고라스는 소 백마리를 신에게 받쳤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리에 대한 믿음이 증명의  성공이라는 구체적 사실로 나타났기 때문
이다. 

 또한 피타고라스는 명상을 통해 행성들이 하늘을 돌면서 연주하는 아
름다운 음악소리를 들었는데, 피타고라스 교도는 그 수학과 명상을  통
한 수양이 쌓이면 피타고라스와도 같이  그 하늘의 음악을 들을 수 있
다고 믿었다. 

 케플러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케플러(J. Keppler, 1571∼1630)도  이따
금씩 천문학적인 관측을 하던 중 피타고라스와 같이 천상의 음악을 들
었다고도 한다. 

 그것은 마치 석가모니의 제자들이 수양, 선정(禪定)을 통해 해탈의 경
지에 이른다고  믿었던 것과도 같은  것이다. 피타고라스 교단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져 갔지만  ‘모든 것은 수이다’와 ‘증명’에 관한 
신념만은 후세에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왔다. 

 또한 플라톤(Platon, BC 429∼347)이 자신의 아카데미 입구에  ‘기하
학(수학)을 모르는 자  이 문을 들어오지 말지어다’라는 현판을 걸어 
놓고, 신은 수학자임을 믿었던  것이나, 유클리드가 왕자에게 ‘기하학
(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던 것은 이들에게는 수학이 단순한 지
식이 아닌 신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뉴튼 역학과 미적분은 미래에  나타날 천체 현상을 정확히 예언
하였다. 프랑스의 수학자 라플라스(P.  S. Laplace, 1749∼1827)는 천체
뿐 아니라 모든 것의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고, 수학의  힘으로 알아
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른바 라플라스의 결정론이다. 

 드디어 피타고라스의 신앙고백 ‘모든  것은 수’라는 신념이 절정에 
이른 것이다. 또 천문학자 존스(J.  H. Jeans, 1877∼1946)는 ‘신은 수
학을 탐닉하고 있다’고까지  말했다. 그러나 이처럼 확고하게  믿어져 
왔던 신념이 미신이었음이 차차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의 철학 ‘연기론’은 피타고라스교도의 관심이 외적인 자연 
대상이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주로  내적인 마음의 세계를 문제 삼았
다. 니체(F. W.  Nietzche, 1844∼1900)는 ‘지구가 돌든,  태양이 돌든 
자신의 실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투철한 이성적인 철학이기는 하지만  불교는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별
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불교와 과학의 거리는  멀어지기만 
했었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결정론의 신화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근대  과학
에 과분한 자신을  가졌었던 것은 마치 페니실린이  처음 등장했을 때 
그것이 모든 병을 고치는  만병통치약이라고 여겨졌던 것과도 같은 양
상이었다. 뉴튼  이래 근대 과학의  업적들은 결정적인 결함을 지니고 
있었다. 

 포앙카레(H. Poincare, 1854-1912)는 엄밀한 계산을 거쳐 뉴튼 역학은 
운동체가 2개인 경우에만 설명이 가능한 것이며, ‘3개의 행성이  서로 
인력으로 얽혀 있을 때의  궤도(위치)는 계산할 수 없음(삼체문제)’을 
밝혀냈다

 즉 태양과 지구,  태양과 달의 관계에서는 다른 천체로부터의  인력이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작기 때문에 두 개의 운동체로 간주하여도 계
산 결과에 오류가 없었던 것이다. 

 지구와 태양 이외에  수많은 천체가 있지만 이들의  인력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미미하며,  2층에서 떨어뜨린 돌맹이가 직선으로 땅에  떨어
지는 것도 돌맹이와 지구의 인력  외에 다른 것들의 인력은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기 때문이다. 

삼체문제의 등장

 하지만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것이 3개 이상일 경우에는 서로 작용
하는 인력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복잡하기 때문에 계산이 불가능한 
것이다. 즉 3개의 물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행성궤도는 매우  복잡
하며,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연기론에 입각한 방법론이 필요해진다. 

 인간의 마음이나, 사회 현상 등을 결정하는 요인은 3개뿐만이 아니며, 
무수히 많다. 이에 대한 합리적 사고는 ‘연기론’이며, 수학의 언어로
는 복잡계의  사고이다. 수학, 넓게는 과학의  한계를 돌파함에 있어서 
불교를 보았다는 것은 이러한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물리적 현상 뿐만  아니라 피타고라스가 중요시 한 ‘증명’,  ‘논리
’의 기본은 yes, no의 이분구조이다. 하나의 명제는  반드시 yes 아니
면 no의  결정이 가능할 때만 성립된다.  연기론에서 태어난 선문답은 
이분법의 논리를 초월하는 복잡계의 논리라고나 할 수 있다.
                                       <김용운 한양대 명예교수>

*발행일(1733호):1999년 9월 7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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