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8월 31일 화요일 오전 02시 14분 05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無)<5>


번호 : 10/4181                  입력일 : 1999/08/30 16:03:41    자료량 : 67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95                

 불교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 선, 그리고  무사상에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 
“나”이다. 불도를 닦고,  부처를 이루고, 진선미를 찾으려는 것도  모두 나
를 위해서이다. 자기  자신을 어떻게든지 좋게 만들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고민할 것도 노력할 것도 없다.

 그런데 실체적이고 영원불변의 나가 없다는 무아사상에  기반을 둔 선에서, 
“나”라는 문제는 “주체”의  문제로 옮겨진다. 실체로서의 나는  없기 때
문에 무아이지만, 기능으로서의 나는  엄연히 있다. 연료가 제공되는 때에만 
타는 불에게 고정적인  실체는 없지만 큰 집이나 산을 태울 수  있다. 나
라고 하는 기능체의 주인은 누구인가. 나이다. 

 불교와 선에서는 “자성” 즉 “자아의 성품”이라는 말이 두 가지 뜻으로 
쓰여진다. 실체로서의 나를 부정하거나 사물의 공성(空性)을 가리킬 때는 “
무자성(無自性)”즉 “실체적이고 하는  주체의 성품은 없다”고 한다. 그러
나 선에서는 “자성을 본다”거나 “참 나를 찾는다”는 표현을 쓴다.

 이 경우의 “자성”이나 “참 나”는 실체로서의 나가 아니라 기능적 주체
로서의 나를 뜻한다. 무사상에 있어서도 기능적 주체가 중요시 된다. 그래서 
무사상의 다섯째 특징은 “무타(無他)” 즉 “무타주인(無他主人)” 또는 “
무타주체(無他主體)”이다. 나와 세상을 책임 질 사람으로서 남이나 다른 주
인이나 주체가 없고, 오직 나만 있다는 것이다.

 임제선사가 가르치는 “무위진인(無位眞人)”이나 “수처작주(隨處作主) 입
처개진(立處皆眞)”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가. 남과의 비교가 높다고 여
겨지는 자리를 떠남으로써 참 사람이 될 수 있고,  그런 사람은 이르는 곳마
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그 속이 바른 진리의 자리가 된다눈 것쯤으로 
풀이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서 자리  바쁘게 뛰는가. 남들로부터  인정받는 
자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만약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고 나 혼자만 있다면, 
나는 출세라는 자리를 위해서  돈, 명예, 권력에 매달리려고 하지 않을 것이
다. 남이  있다고 생각하고 남을  의식하기 때문에 나는 그렇듯하게  보이는 
자리를 향해서 기어오르려고 한다. 

 무사상은 이러한  나에게 “남은 없다. 오직  너만 있고 네가 바로  세상의 
주인이다”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한다. 내 육신 가운데 나는 어디에 있는가. 
팔, 다리, 배, 가슴,  머리의 어느 한 부분에 있거나, 전체를  합친 곳에 있지 
않다. 적어도 고정적 육체에  나는 없다. 나는 육체와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전체적 기능에 찾을 수 있다.

 이 기능이라고 하는 것은 내 마음이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크거
나 작게 잡을 수 있다. 내가  범위를 정하고 그 주인이 될 수 있다. 현재 눈
에 보이는 세상을  나로 삼는다면 나는 현재의  것만 된다. 천만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고 죽었던 사람들 모두와, 현재부터 미래세가  다하도록 살 사람
들 모두를 나로 삼으면, 나는 끝없는 과거와 끝없는 미래가 된다. 나는 과거 
현재 미래의 주인이 된다.

 내가 어떤 잔치를  베풀기로 했다고 치자. 나는 호스트로서  게스트들이 불
편한 것은 없는지, 음식은  제대로 차려졌는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사
람을 챙겼는지등을 살피기 위해서 동분서주 할 것이다.  식사를 거르면서 손
님 접대에 집중할 것이다. 게스트들이 편안히 앉아  있는 동안에는 호스트는 
온 종일 서 있을 수도 있다.

 헌대, 주인에도  종류가 많다. 모자처럼이름만 덮어  씌워진 주인이 있는가 
하면,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실세 주인도 있고, 현장에서 자기 소임을 다해서 
전체에게 꼭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주인도 있다.  세상을 잔칫집으로 친다면 
세상 사람 하나 하나가 나름대로 주인이 될 수  있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
를 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친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지금 이 자리의 나를 저 주인으로 삼음을  뜻한다. 나 외에 따로 주인
이 없기 때문이다.

*발행일(1732호):1999년 8월 31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