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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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8월 23일 월요일 오전 11시 59분 00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無)<4>


번호 : 14/4162                  입력일 : 1999/08/23 10:52:48    자료량 : 74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94              

  무(無)-(4)
  불교의 가르침은
  양극단 논리 철저부정
  집착없는 안목 가져야
‘바른 지혜’얻어

 선(禪)이나 불교 일반에서  무사상과 관련하여 가장 빈번하게 제기되는  질
문은 “무분별(無分別), 무일물(無一物), 무집착, 무위(無爲), 무애(無碍)에 철
저하다 보면 결국  허무주의가 되는 것이 아니냐”이다. 사실 이  질문이 초
심자의 것만은 아니다. 선수행자들이 가장 경계하는 함정이기도 하다. 

 저 물음에 대한 답은  무사상의 넷째 특징인 “무무(無無), 무위위(無爲爲), 
또는 무착생심(無着生心)”이다. 고정적인 무는 끝까지  부정되어야 하고, 인
위를 피하면서도 생산적이고 창조적인 노력이 있어야 하고 집착하지 않으면
서도 부처님의 몸인 이 세계에 장엄하기 위해 마음을 내야 한다는 뜻이다. 

 근본부터 다시 더듬어  보자. 무엇을 위해 참선을  하는가. 삶을 좋게 하기 
위해서다. 참다운 “삶”이  무엇이냐와 “좋다”는 것이 어떤  상태를 뜻하
는 것이냐를 규정하는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리 의견의 격차가 크더라도, 어떤 형식이든지 살아  있다는 것과 좋다는 
점은 부정될 수 없을 것이다. 

 불교 일반에서도 상주론(常住論)과 단멸론(斷滅論)  즉 어떤 주체가 변하지 
않고 항상 존재한다든지,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고 완전히 절멸된
다는 양극(兩極)을 부정한다.  선도 허무주의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무를 
가르치는 선사들이  실제로 부처와 조사를  다 부수거나, 제자들을 다  쫓아 
버리고 절을 허물어 버리지는 않는다.

 한 사람이라도 더  깨우쳐서 불조의 혜명을 이어  가도록 줄기차게 노력한
다. 유명한 선사들은 대부분  많은 제자들을 두고 있다. 선사들이 무를 가르
치지만 이를  고정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면  그 자체가 또다른 집착이  된다. 
구름은 흩어지기 마련이라는  점에서 무이지만, 여기에 집착하면  구름이 흩
어지는 도리만 알고 다시 모이는 도리는 모르게 된다. 

 모인 구름이 영원하지  않다는 점에서 무이지만 그것에  빠진다면 다시 그 
무도 부정되어야 한다. 산과 물에 부정과 긍정을 가하면 다시 산은 산, 물은 
물이 된다. 그러나 여기에 집착이 있으면 그 또한 부정되어야 한다. 무는 끝
없는 부정을 뜻한다.  단지 부정하면서도 온 우주를  부처님의 몸으로 보고, 
그 몸을 지혜와 자비로 장엄하는 노력은 권장된다.

 무집착을 전제로 노력하는  무위(無爲)의 행위와 자기 중심의 집착이  없이 
무대를 꾸미려고 하는 가다듬어진 의욕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무가 무
위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역사,  창조, 생산, 현실등이 중요시된다. 선을 활용
해서 정치와 사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선은 소매상이 아니다.  도매상이요 공장이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
음에서부터 흘러나오므로, 그 원천을  바로 잡으면, 잡다한 세상사도 좋아지
게 된다.

 한 선수행자가 형식에 집착해서 수행을 하니까 스승은 그의 앞에서 기왓장
을 간다. 수행자가 이유를 물으니 스승은 기왓장으로  거울을 만들 것이라고 
대답한다. 수행자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할 때, 스승은 그대의 참선도 기왓
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드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수행자가 바른 수행법을 물으니까 스승은  수레가 가지 않을 때 소와 수레 
가운데 어느 것에 채찍질을 해야 할 것인지를 묻는다.  선이 무자를 쓰는 것
은, 마치 수레가 아닌 소를 치듯이, 마음의 뿌리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현실의 우리는  돈, 권력, 명예로  세상에서 게임을 만들고 있지만,  컴퓨터 
프로그래머들은 컴퓨터 안에서 게임을  만든다. 현실은 분명히 손에 잡히고, 
컴퓨터의 게임은 화면 속에만 있다. 그러나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마음
속에서는 두 게임이  크게 다를 바 없다. 현대의 도시문명이라는  파일이 지
워지는데는 컴퓨터의 파일이 지워지는 것보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 걸리겠지
만, 언젠가 지워질 것은 분명하다.

 우리가 컴퓨터 게임에  집착하지 않듯이 현실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다면, 
그러면서도 게임을  만들고 그것을 즐길  수 있다면, 이것이 무사상에  있는 
창조적 측면의 좋은 설명이 될 것이다. 

 *발행일(1731호):1999년 8월 24일,    구독문의 (02)730-448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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