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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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8월 17일 화요일 오전 08시 52분 27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無)<3>


번호 : 20/4139                  입력일 : 1999/08/16 20:23:43    자료량 : 71줄
제목 : 교리산책<93>-무(無)<3>      

 지난 호에서  무사상의 둘째 특징으로  “무일물(無一物)”을 짚었다. 
왜 멀쩡이 살아 움직이는 세상의 모든 것을 지워야 하는가. 밖의 것에 
의해서 놀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다. 물질적인 성취와 실패나  사랑하
고 믿고 의지하는 사람의 변덕으로 인해 고통을 겪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 

 무사상의 셋째  특징은“무집착(無執着)”,“무위(無爲)”, 또는“무애
(無碍)”이다. 이 세 단어는 각기 크고 무거운 의미를 갖고 있다. 무자
를 포함하고 있다는 공통점과 함께 차이점도 많지만 상호간에 깊은 관
계가 있다.  집착이 없으면 필연적으로  무위와 무애가 따르고 무위가 
앞에서도 다른 둘이 뒤를 따른다. 

 또 무위와 무애가  없는 무집착은 진정한 무집착이 아니요,  무집착이
나 무애가 없으면  참다운 무위가 있을 수  없다. 집착하지 않고 어떤 
일을 성취할 수 있을까. 널리 이름을 날리는 스타들을 보면 자기 분야
에 미친 듯이 매달린다. 

 자기 일과 목표에 집착하지  않고 성공한 운동선수, 연예인, 사업가는 
없다. 불도를 닦고 참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죽자살자 달려들어야 한
다. 경허스님은 고양이가 쥐잡듯이, 배고픈 이가 밥 찾듯이,  목마른 이
가 물 구하듯이,  늙은 과부가 죽은 자식 생각하듯이 화두에  매달리라
고 한다. 

 또 승패에 관심이 없으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게임이 재미가 없
고, 인생과 사랑에 흥미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영화, 소설, 시, 음악 등
도 무의미하게 된다.  강약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전혀 집착이 없는  사
람은 없다. 부처와 보살에게도 중생을 구하려는 원(願)이 있다.  성현의 
이상도 중생이 마음으로 낮추어서 표현하면 집착이 된다. 

 순진한 무집착은 허무주의가 된다. 집착하지 말아야 할 것은 바깥  세
상이 아니라 바로 안의 “나”이다. 나의 취향, 의도,  방법, 이익, 안락
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공부나  중생교화의 일에 달려들라는 뜻으로 무
를 이해하여야  한다. 만약 우리가  자신의 즐거움이나 행복을 구하려 
하지 않고 아무리 심한 고통도  참고 받아들일 태세가 되어 있다면 속
세나 절집에서 무엇이 두렵고 무엇을 이루지 못하겠는가.

 우리에게는 세계  바둑계의 1인자 이창호가  있다. 그는 시합에 이길 
때마다 큰 돈을 벌고 승용차를  부상으로 받기도 하지만 차 운전을 하
려고 하지도 않고 돈을 쓰려고 하지도 않는다. 건강을 지키기 위한 간
단한 운동이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놀이를 제외하고는 몸과 마음을 
바둑에만 쏟는다. 

 그에게는 돈이 많아서 궁기가 없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써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항상 돈이 남는다. 자기 중심의 집착을  버리는 
것은 우리를 성공자 또는 부자로 만든다.자기를 지운 이에게는  억지가 
있을 수 없다. 보통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결과를 얻으려고 함과 아
울러, 그 결과를 얻기 위한 방법도 자기의 생각과 같기를 바란다. 

 그러나 자신을 중심으로 한 일체의 집착을 지운 이는, 좋은  방법이라
고 하는 것이 기껏해야 원숭이가 공양 시간마다 도토리의 숫자를 바꾸
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이 방법도 좋고 저 방법도 
좋다. 그러니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방법을 고집하지 않는다. 인위
가 없다. 즉 무위를 행한다.

 불교에 있어서 유위는  생사윤회의 업행에 해당하고, 무위는 열반  세
계의 고요에  속한다. 그러나 선에  있어서의 무위는 단순히 교리적인 
것만 뜻하지 않는다. 노자 〈도덕경〉에서 말하는 무위자연의 맛도  함
축되어 있다. 이 무위도 “나” 또는 “나 중심”을 끼워서 읽으면 이
해하기 쉽다. 자기  중심으로 세상에 대해 억지를 부리지 않는다는  것
이다.

 자기 중심으로 집착해서 세상사를 보지 않고, 자기 중심으로 일을  꾸
며서 도모하지 않는 이에게는 이제 아무 것도 걸릴 것이 없다. 자동적
으로 무애자재다. 욕망과 공포의 감옥으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지명
스님> 

*발행일(1730호):1999년 8월 17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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