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8월 1일 일요일 오전 08시 29분 03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無)2 지난 호에서 우리는 무사상의 무분별, 무사량, 무심 또는 무념의 측면을 살핀 바 있다. 분별심의 한 예로 신창원에 대한 우리의 이중적인 마음을 들 었다. 국민들의 감정적 동정심과 이성적 죄인 규정이다. 이를 본 독자들 가 운데는 전화를 걸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면 도대체 뭐란 말이냐"고 힐난하는 이도 있었다. 무사상은 바로 다양한 측면의 사안 가운데서 한 측면만을 붙잡아 그 사안 전체를 하나의 측면으로 묶어 버리는 우리의 마음을 경계하고 있다. 우리가 예전에 공부한 바 있는 일념삼천(一念三千) 관법(觀法)은, 한 마음에 지옥에 서부터 부처까지 열의 단계가 있고, 다시 각 단계에 또한 열 단계가 포함되어 있다고 관하는 것이다. 지옥에 부처가 있고, 부처에도 지옥이 있다는 뜻이다. 신창원의 지옥 악행도 인간계의 우리가 느끼는 고통, 절망, 분노, 파괴심, 헐떡거림, 방황, 반항, 탈옥심등 드라마처럼 보여 주었다. 죄인에게도 우리의 마음이 있고, 감옥밖에 있는 우리에게도 죄인의 마음이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신창원이 가진 지옥의 마음속에도 막연하나마 부처를 향한 마음이 들어 있다. 그러니 그의 다양한 측면 가운데 어느 하나만을 들어서 전체를 미화(美化) 하거나 추화(醜化)할 수가 없지 않는가. 무사상의 둘째 특징은 “무일물(無 一物)” 즉 “마음밖에 본래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한 물건도 없다”이다. 불교의 연기법이나 공사상은 필연적으로 모든 사물의 영원한 존재를 부정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반드시 다른 것에 의존해 있고, 또 그 의지처 역시 다른 것에 의존해 있다. 모든 것이 서로 기대어 있음으로 그 가운데 어느 하나만 변화해도 다른 것은 따라서 변화된다. 우선 시간과 우리의 마음은 세상이 의지하는 기본이다. 이 둘은 움직이게 되어 있다. 그러니 세상의 모든 것은 변화하는 과정에 있을 수밖에 없다. 사물은 사람이 제멋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부귀, 권력, 명예, 승리, 성공, 행복 등의 개념과 단어도 사람이 만들어 낸 것이다. 본래 부터 있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있을 수도 없다. “무일물”에는 이미 만물이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무상(無常)과 고정적이고 실체적인 나가 없다는 무아(無我)가 전제되어 있다. 시간적으로 무상하고 공간적으로 무아라면, 어떤 다른 것을 꼽아서 있다고 하겠는가. 하루살이의 태어남과 죽음은 하루만에 우리의 눈으로 확인할 수가 있다. 봄에 피는 꽃이 시든다거나, 여름에 무성하던 나뭇잎이 가을에 단풍이 든다는 것은 바로 볼수 있다. 병들고, 늙고, 죽는 것이라든지, 돈과 권력의 무상함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저 변화의 주기가 길 경우에 문제가 생긴다. 임기 7년이나 5년을 보장받은 대통령이 취임할 때도 그 초기에는 권력이 영원불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만약 변화하지 않는 기간이 백년이 넘는다면, 우리는 무일물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변화는 반드시 오기 마련이다. 무일물은 이 진리를 가르치고자 한다. 그런데 사물이 앞으로 겪게 될 모든 변화의 단계를 알아차려서, 그것들을 현전의 사물에 끼워서 본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구태여 무일물이라고 할 것이 없다. “유일물” 즉 “한 물건이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래서 선에서는 “유일물”을 내세우고 “그것이 크기로 말하면 우주보다 더 크고 작기로 말하면 가장 작은 티끌보다도 더 작다”는 식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또 다른 방면에서 “유일물”을 말할 수 있다. 바람이 불어서 깃발이 펄럭 이고, 세월이 무상해서 모든 것이 무너지기는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마음이 변화를 일으켜 보는데 문제가 있다. 만약 욕망과 번뇌의 겉마음을 지우고 진여의 속마음으로 세상을 본다면, 강물이 한 찰나도 쉬지 않고 흐르고, 생사가 시시각각 벌어지더라도, 세상은 항상 그대로 여여할 것이다. 묘하게도 “한 물건도 없다”는 말과 “한 물건이 있다”는 말은 통하게 된다. *발행일(1729호):1999년 8월 3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 포교사> 기사제보Fax:(02)3210-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