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7월 9일 금요일 오전 12시 58분 07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무언부동의 처처법계 번호 : 13/4030 입력일 : 99/07/08 19:14:35 자료량 :74줄 제목 : 교리산책-무언부동의 처처법계 언어의 문제와 한계를 알고 그것을 초극하기 위해서 선은 무언(無言) 또는 침묵을 활용하는데, 이 침묵은 선에서 중시하는 다른 측면과도 연관되어 있다. 말없이 있는 세상의 모든 것이 진리의 궁극점(窮極点)을 나타내고 있 다거나 우주라고 하는 큰 법신체(法身體)가 진리를 드러내기 위해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한다. 진리가 말을 떠나 있음을 강조하다 보니, 선에서는 스승과 제자가 이 심전심으로 통하거나 법을 전하고 받게 만들고, 더 나아가 침묵하고 있는 우주 전체와 그 안의 사사물물을 우리에게 진리를 보여 주는 불 신(佛身)의 활동체로 만드는 것이다. 침묵은 언어적 휴식에 그치지 않는다. 여기에는 동작이나 생각의 쉼 도 포함되어 있다. 즉 몸, 입, 마음 세가지의 휴식을 같이 담고 있다. 그런데 선이 아무리 언어로부터 벗어나려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말 대신에 할을 하고 엉뚱한 선문답을 하더라도, 그 역시 일종의 언 어적 표현에 속한다. 몸이나 마음의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선은 이를 잘 안다. 죽비가 소리를 가라앉히려고 하지만 그 역시 소리이다. 언어를 떠나려고 하는 선이 속장경 3분의 2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의 말을 전한다. 선이 침묵과 부동을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이 입과 몸과 생각의 움직임에서 삶의 목표나 보람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목소리와 동작으로 높이 오르기 위해서 기를 쓰고 헐떡거리기 때문이 다. 선은 우리에게 말도 움직임도 없는 시시처처에 진리의 궁극점, 법 신불의 몸체, 최고의 행복점, 또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가르치려고 한다. 선에서는 갖가지 표현으로 불법의 궁극점이랄까 절대점을 묻는다. “부처나 조사가 지금까지 써 온 말을 빼고 한 번 대답해 보라” “무 엇을 부처라 하는가” “불교의 절대적 대의는 무엇인가” “달마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온 이유는 무엇인가” “개에게도 불성 이 있는가”등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질문은 궁극적에 대한 것으로 귀결된다. 저에 대해서 “호떡” “항문의 변을 닦아내는 막대기” “삼베 옷감 세 근” “정원의 잣나무” “날마다 좋은날” “평상심이 바로 도” “무(無)”등의 대답이 있었다. 어떤 선사는 단 지 손가락만을 세워 보이고 다른 선사는 소리를 버럭 지르기만 한다. 부처나 조사가 썼던 표현을 빌리지 않고 생생하게 자신의 말로 불법을 한 마디로 말하면 “호떡”이 된단다. 부처는 삼베 옷감에도 있고, 항문을 닦아 내는 휴지에도 있단다. 어찌 불법이나 부처를 나타내는 것이 이뿐이겠는가. 산, 강, 하늘, 땅, 나무, 풀, 행주, 걸레등이 다 부처가 아니겠는가. 지금 여기 눈앞에 벌어지는 사소한 것들을 떠나서 어디에서 법신체의 얼굴 표정과 손짓을 찾을 수 있겠는가. 어떤 선사는 온 우주가 실타래처럼 얽혀 있는 진리의 몸체라고 한다. 산봉우리나 담장이나 기둥들이 모두 진리의 표현인데, 단지 그것들은 실처럼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실타래는 아무리 길어도 한 군데를 싹 뚝 가위로 자르면 전체가 끊어져 버린다. 중생은 저 실타래를 잘라서 보려고 하고, 부처는 저 실타래를 하나로 이어서 보려고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다른 선사는 삼라만물을 보 물로 표현하기도 한다. 우리가 날마다 보물을 보고, 잡고, 밟고 있으면 서 그것을 보지 못한다.” 흰 구름은 뭉게뭉게 피어 있고, 붉은 해는 눈부시게 밝다. 이 쪽을 보 면 멀리 탁 트였고, 저쪽을 보면 아름다운 강산이다” 선사의 평화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돈과 권력과 명예를 이미 얻었거나 얻기 위해서 말을 많이 하고 몸부림을 치지 않고도, 바로 눈앞에서 부처의 몸체를 보는 모습이다. 단지 침묵과 부동이 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처처에서 우주의 법신체 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배경에는 불성(佛性), 여래장(如來藏), 본각(本覺)사상이 있다. 다음 호에서 이를 살피자. *발행일(1725호):1999년 7월 6일,<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구독신청:(02)730-4488-90기사제보:(02)733-1604,FAX:(02)3417-017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