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6월 28일 월요일 오전 11시 38분 45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선 번호 : 39/4009 입력일 : 99/06/19 15:01:14 자료량 :66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 86 우리의 교리산책은 참 멀리 돌았다. 〈아함경〉의 연기법으로부터 시작해서 〈반야경〉의 공, 〈법화경〉의 성구, 〈열반경〉의 불성, 〈해심밀경〉의 유식, 〈화엄경〉의 유심, 〈대일경〉과 〈금강정경〉의 밀물교, 〈무량수경 〉 등의 정토교 교리를 여기 저기 찝쩍거려 보았다. 이제 우리 앞에는 선이 산처럼 놓여 있다. 앞으로 수회에 걸쳐서 선에 있는 교리적 흔적이랄까 뼈 대를 살펴볼 것이다. 선은 일체의 얽매임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불교가 선의 모태이지만, 선 은 그것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으려고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치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치겠다”는 극언으로 선의 자유성을 표현하려고 한 다. 그래서 일반인 내지는 타종교인들도 선에 대해서는 마음을 열려고 한다. 선에는 일체의 고정적인 도그마가 없다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정말 선은 불교로부터 완전히 멀어진 것일까. 선에는 불교의 교리가 없을 까. 선은 불경도 무시하고, 그 속의 진리도 부정할까. 결론부터 잘라 말하면 그렇지 않다. 선도 분명히 불교에 속한다. 선의 목적은 부처를 이루기 위함 이요, 성불하기 전까지 부처님에게 의지한다. 선사들도 “선은 부처님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요, 경전은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라는 말에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말은 마음에서 나오고, 마음은 말로 표현된다. 불교가 중생을 깨우치는 가르침이라면, 말이 없이 마 음만 있을 수 없고, 마음 없이 말만 있을 수 없다. 불경과 조사 어록을 많이 읽은 한 수행자가, 유별나게 돈오돈수의 조사선을 주창하던 방장스님을 찾 아가서 법을 묻게 되었다. 수행자가 불경과 조사 어록을 인용하며 공부의 궁극점에 대해서 이야기 하 니까, 방장스님은 “너는 지금 교리로 따지고 있으니, 선과는 거리가 멀다” 고 말했다. 그러자 그 수행자는 “선과 교는 하나입니까 둘입니까”라고 물 었다. 이에 방장스님은 침묵으로 대하고, 그 수행자에게 각별한 친절을 베풀 었다. 선종의 “세 군데서 부처님의 마음을 가섭에게 전했다”는 이야기 가운데 서, 먼저 유명한 염화미소(化微笑)를 생각해 보자. 부처님이 꽃을 들자 가섭 이 빙그레 웃었다.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는 언어를 넘어서 빙그레 웃었 다. 부처님과 가섭존자 사이에는 언어를 넘어서 마음과 마음으로 통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이야기의 사실성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선종에서 이 스토리를 맞게 믿고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종에서도 대대로 선의 진수를 전하는 최초의 스승으로 부처님을 꼽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있어서의 남종선의 출발점이고, 한국불교 조계종의 뿌리인 혜능대 사가 발심하고 출가한 계기를 보자. 그는 나무꾼으로 어머니와 자신의 생계 를 꾸려 가던 어느 날, 한 탁발승의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들었다. 그 가 운데서도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基心)”즉 “집착하지 않으면서 도 세상을 멋있게 꾸밀 마음을 내라”는 말에 크게 깨친 바가 있었고, 그로 인해 중국 선종의 5조인 홍인대사에게 출가하게 되었다. 조계산 혜능대사가 〈금강경〉을 중시했고, 최근에 종헌이 고쳐지기 이전 까지 한국의 조계종은 기본적인 소의경전으로 맨 먼저 〈금강경〉을 명시했 었다. 그러면 신수를 중심으로 한 북종선에서는 불경을 외면했는가. 그렇지 않다. 〈능가경〉이 있다. 달마대사로부터 시작해서 혜가대사를 거쳐 대를 이어가며 〈능가경〉을 소의경전처럼 중시했다. 선종 초기에 있어서 선 수 행자는 “능가사(楞伽師)”라고 불릴 정도로 〈능가경〉을 따른 것이다. 임제종계가 〈화엄경〉과 가까웠다고 한다면, 조동종계는 〈법화경〉을 중 시하는 천태종과 인연이 있었다. 고려의 보조국사는 “정혜쌍수(定慧雙修)” 라는 한 마디로 선과 교리를 다같이 중시했고, 조선의 서산대사도 선교일치 를 가르쳤다. 그렇다면 선은 불경이나 교리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휘둘리지 않으면서 부처님의 마음을 바로 읽는 새로운 교리 해석의 시도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발행일(1723호):1999년 6월 22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