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6월 15일 화요일 오전 01시 42분 41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염불과 참선의 겸수 번호 : 21/3965 입력일 : 99/06/12 11:52:45 자료량 :69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염불과 참선의 겸수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문 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마 는, 그 중에서도 가장 간절한 것 중의 하나는 사람이 죽은 뒤 49재일에 설 하는 영가법문일 것이다. 어떤 법사의 법문을 최상으로 치나? 참선공부를 많 이 한 선사의 법문이다. 선사는 영가의 위패를 법상 앞에 놓고 마치 살아 있는 이에게 말하는 것처 럼 생멸을 지운 해탈의 길을 설한다. 그리고는 영가가 극락에 왕생해서 아 미타불의 수기를 받고 필경에는 무생법인(無生法忍) 즉 나고 죽음이 없는 진리를 터득하라고 타이른다. 영가법문에서만 선사의 입에서 아미타불을 설하는 것이 아니다. 상단법문 을 할 경우, 청중들에게 특별히 강조하고자 하는 게송을 읊은 다음에는 설 법자와 청중이 다같이 “나무아미타불”을 길게 빼서 외운다. 정토와 참선 이 뒤섞여 있는 것이다. 염불과 참선을 겸해서 닦는 방법의 뿌리는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멀 리 중국에서부터 있었다. 공사상의 연장인 성구(性具)사상을 전문으로 연구 하고 가르치는 천태종 계통의 조사들, 유식사상을 전문으로 연구하고 가르 치는 조사들, 선을 전문으로 닦는 선사들 가운데도 정토를 겸해서 닦는 이 들이 있었다. 명나라 주굉이 엮은 〈선관책진(禪關策進)〉의 많은 부분이 정토와 선을 겸수하는 문제에 할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명칭상 선종으로서의 조계 종 종조인 고려시대의 보조국사는 〈염불요문(念佛要門)〉을 지어서 참선과 함께 정토교를 가르쳤고, 조선시대 선맥을 이은 서산대사도 염불의 필요성 을 역설했다. “왜 정토와 선을 겸해서 닦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보다 이론적인 체계 를 세운 유명한 참선 전문가로는 영명연수(永明延壽)선사가 있었다. 그는 〈 만선동귀집(萬善同歸集)〉을 지어서, 근기가 출중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 에게 있어서 정토와 선을 겸해서 닦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수행법이라고 주 장했다. 참선하는 이가 염불을 겸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에게 뿔이 더 생긴 것과 같 다는 비유도 들었다. 뿔이 없는 호랑이만으로도 무섭기가 이루 말할 수 없 을 정도로 강한데, 거기에다 뿔까지 달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연수선사는 이런 비유를 들어서 염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어떤이가 억울 하게 구속되었을 때, 자기 능력으로 그 억울함을 밝히고 감옥에서 나올 수 있으면 그렇게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없다면 다른 이의 힘을 빌려 야 한다. 또 무거운 짐을 운반할 때, 그 운반거리가 짧거나 자력으로 가져 갈 수 있다면, 그리 하면 된다. 그러나 그런 능력이 자기에게 없으면 남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피할 일도 아니다. 짐을 차에 싣고 가면 될 일을, 반드시 자신이 직접 옮기겠다고 고집을 피 울 필요는 없다. 염불할 때 찾는 아미타불은 감옥에서 억울한 사람을 구해 낼 변호사나 최고 권력자와 같고,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주는 동행자나 자 동차와 같다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근기가 낮은 참선자가 염불을 겸 해야 할 더 좋은 비유를 인용한다. 바다를 건너서 섬에 가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고 치자. 그가 지금 나무를 심어서 키우고, 그것으로 배를 만들어서 바 다를 건너려고 한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겠는가. 선착장에 있는 배를 빌려서 타고 가면 된다. 반드시 자력의 참선으로 도를 이루겠다는 것은 마치 나무를 심어서 배를 만들겠다는 것과 같고, 남의 배를 빌리는 것을 염불해서 부처님의 힘을 빌 리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서산대사는 또 이런 비유도 인용한다. 어린이가 어찌 할 바를 모를 때, 큰 소리로 울면 어머니가 와서 모든 일을 해결해 준다. 참선 수행자가 마장을 만났을 때, 아미타불을 부르는 것은 어머니를 부르는 것과 같다. 어머니의 도움을 받으면 간단히 해결될 터인데, 공연히 자존심을 내세울 필요가 없다 는 것이다. *발행일(1722호):1999년 6월 15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