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valley (이 상 제) 날 짜 (Date): 1999년 5월 27일 목요일 오후 08시 10분 33초 제 목(Title): Re: 고 >고딩 때, '남들 다 하는 걸 뭣하러 굳이 나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에 >남들 노는 데도 안 끼고, 혼자만의 취미에 빠져 살았드랬죠. 대딩때도 거의 >그랬고. 덕분에 고요한 왕따 생활을 누릴 수는 있었습니다만 사회적 경험은 >매우 좁은 범위로 국한되고 말았습니다. 어제 뉴스엔 "모든 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빈집털이를 한 우등생에 관한 기사가 나왔는데, 차라리 그런 아해덜이 >더 훌륭한 공감 능력이 있지 않을까 한 번 생각해 봅니다... 공감은 개체의 맥락 밖에서 이루어집니다. '남들...'은 먼소류라는 개체적 맥락 안에서 일어난 생각입니다. <고요한 왕따 생활>도 그 생각에 의해 이끌어진 체험이지요. 그 생각의 고리를 추적해보면 반드시 인과관계가 존재합니다. 최초의 충격은 외부에서 들어왔을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반응한 판단이 씨앗으로 심어지지요. 이것은 즉각적인 공감이 아니라 비디오 테잎처럼 자체적인 스토리와 결말을 가진 채 기계적으로 펼쳐지는 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스토리 내부의 원인-결과는 그럴 듯 하지만, 비디오 테잎 자체는 처음부터 스토리의 원인-결과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빈집털이를 한 우등생도 자기 생각에 빠져서 맥락을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모든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빈집털이 체험이 끌어져 나왔습니다. 그러면 그 생각은 어디서 왔을까요? 역시 인과관계가 있고, 충격은 외부에서 들어왔습니다. 거기에 반응한 판단이 씨앗이 되었겠지요. 이 소년은 9시 뉴스에 종종 비쳐지는 얼굴 가린 절도범들의 심정을 이해하게 되었을까요? 그렇다면 이 소년은 대단히 침착합니다. 구속된 죄인을 공감하려면 그가 된 뒤, 그 이 후에 다시 주시자watcher로 떨어져 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마치 체온계가 다른 사람의 온도를 재기 위해서는 잠시 식혀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공감은 의도한 순간 거의 즉각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이 소년의 경우에는 죄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원 상태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적어도 그 소년의 맥락에서는 말입니다. Be egoists--perfect,cultivated,refined. Go on working on your ego and make it a beautiful statue, because before you give it back to the god, it must be something worth giving, it must be a present. -B.S.O.Rajnees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