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5월 4일 화요일 오전 03시 35분 14초 제 목(Title): 법보/견성과 성불의 차이점 번호 : 2/274 입력일 : 99/05/03 19:00:27 자료량 :67줄 제목 : [511호]중국선사 사상과 견성탐구 2-견성과 성불의 차이점 '견성'은 일체중생이 소유하고 있는 근원의 본성 체득하는 것 '성불'은 불교의 이상적 존재상인 부처 이름을 일컬어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개인적 깨달음과 모든 사람들이 그 깨달음을 함께 이룬 전체적 깨달음이고, 이런 깨달음을 순수 불교 용어로 표현할 때 견성이나 오도 및 성불 등 여러 단어로 나타내지고 있다. 이중 견성과 성불은 여타보다 흔히 사용되 고 있는 대표적인 용어이다. 이 견성과 성불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의 내용인 가. 일반적으로 견성은 선가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말이고 성불은 전통적으로 이어진 순수 용어로 이해되면서 용어는 다르지만 내용은 같은 것으로 취급되는 경 향이 있다. 우선 어원적으로 본다면 견성이나 성불은 모두 교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단어이 다. 견불성(見佛性)이나 견자성(見自性)의 준말인 견성의 경우 《열반경》의 불성 사상이나 《여래장경》 및 《부증불감경》 등의 여래장사상에 기인하고 있는 것으 로 만유의 본질이자 근원으로서의 본성이 있다는 것, 중생의 본원적 모습과 관련 해 본다면 일체중생이 붓다와 똑같은 존재가 될 수 있는 '본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고, 성불은 불교의 성립이래 부파와 대승 및 선불교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설해져 온 불교의 최종 목적지이다. 곧 견성이란 일체중생이 소유하고 있는 근원 의 본성을 체득하는 것이고, 성불은 불교의 이상적 존재상인 부처를 이룸을 나타 낸다. 문제는 근원의 본성을 보았다고 하는 견성과 부처를 이룸인 성불이 같은 것이냐 하는 것, 다시 말해 견성했다고 하는 것이 불교 수행의 마지막 도달지이자 최종 완성인 성불과 같은 상태인가 하는 것이다. 결론적인 것을 먼저 언급한다면 같은 것으로 보는 것과 다르게 보는 것 두 가지가 병존하고 있다. 같은 내용으로 보는 것은 교학의 일부 내용과 선에서의 돈오돈수의 관점이고, 달리 보는 것은 선의 돈 오점수사상이다. 교학의 경우 《열반경》의 사자후보살품과 같이 불성을 佛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 관점이다. 사자후보살품에서는 불성을 설명하며 불성이 곧 제일의공이고 제 일의공이 중도이며 중도가 불이라고 하고 있다. 불성 = 제일의공 = 중도 = 불이라는 것으로 이에 의한다면 불성을 보는 견성은 부처를 이루는 성불과 같은 내용의 것이 된다. 또 돈오하면 곧바로 돈수가 된다는 선의 돈오돈수는 육조혜능을 비롯해 마조나 오가 선사 등 조사선의 조사들이 한결같이 견지하고 있는 관점으로 견성을 성불과 완전히 동등한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직지인심 견성성불의 성구 중 견성성불이 견성하여 성불하는 단계적 형태가 아니라 견성이 곧 성불이라는 의미이다. 돈수를 강조하고 있는 육조의 《단경》에는 悟後漸修가 아니라 悟人頓修를 언급 하면서 깨달으면 곧 부처라는 '悟卽佛'의 구절을 보이고 있으며, 특히 오가에서의 임제는 '나의 견처는 부처와 하등 다르지 않다'고 설하면서 나아가 견성하여 깨달 은 존재를 살아 있는 조사라는 '活祖', 또는 부처와 동등한 조사라는 의미의 '祖佛' 이라는 용어로 표현하고 있다. 견성이 성불과 같은 것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지금 의 깨달은 존재가 과거의 부처보다도 더욱 존귀한 존재라고 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돈오점수설의 경우 견성이 성불과 다른, 곧 성불을 위한 전단계로서의 필요조건으로 설명하고 있다. 《선가귀감》의 경우 수행을 위해 돈오가 있어야 한 다는 견성을 밝히면서 이치는 단번에 깨칠 수 있지만 현상사에서의 번뇌는 일시에 제거되지 않는다는 '理雖頓悟 事非頓除'를 언급하고 있다. 견성이 곧 성불이 아니 라 견성한 이후 계속 수행하여야만 불지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이다. 또한 교의와 관련해 볼 때 소·대승에서 모두 설하고 있는 깨달은 붓다만이 갖 는다는 18불공의 능력을 선의 견성 구절에서 구체적으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에 서 견성과 성불이 내용적으로는 차이가 있는 것임과 동시에 같은 성불이라 하더라 도 관점을 다소 달리하고 있는 것을 살필 수 있다. 이처럼 견성과 성불은 인용 전적에 따라 같은 내용으로도 볼 수 있고, 혹은 다 른 내용으로도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선에 있어 중국에서는 같은 것으로 보는 것이 주된 흐름을 이루고 있는 반면 보조지눌로부터 이어지며 한결같이 돈오점수설을 취하고 있는 한국에서 는 견성을 성불처럼 완전한 완성으로 보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다. 종호 스님〈동국대학교 선학과 교수〉 법보신문 제511호(1999년 5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