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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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9년 4월  9일 금요일 오후 05시 15분 36초
제 목(Title):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정토신앙과 선수행


번호 : 1/96                 입력일 : 99/03/29 18:34:20      자료량 :70줄

  제목 : 지명스님의 교리산책-정토신앙과 선수행

 지난 호에서 정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다. 멀리 있는 정토, 현실
속의 정토, 그리고 마음의  정토이다. 그렇다면 나름대로 이상세계를 나타내
는 의미로서의 정토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정토는 아미타불이 주불로 있는 서방
정토 극락세계를 말한다. 또한  정토교는 저 서방정토, 그 곳에 있는 아미타
불의 이상, 그리고 저 정토에 이르는 방법을 전하는 가르침을 의미한다.

 지난 호에, 현재 한국불교에 있어서, 유발 신도가 생을 마쳤을 경우에는 그
천도 예식을 저 서방정토의 미타신앙에 의해서 행하고,  삭발 승려가 입적했
을 경우에는 도솔천에 태어나서 수행하다가 속히 사바세계로 다시 돌아오라
는 축원을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본 한 독자가 승려들의  도솔천 신앙
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해 왔다.

 현재 승려들에게 있어서 도솔천 신앙이 두드러지게  강하지도 않은데, 축원
문이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승려들의 전체적인  신앙인 것처럼 일반화해서
말하면 되느냐는 것이다.

 그렇다. 모든 출가자가  재가신도는 서방정토로 보내고, 자신들은 도솔천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출가자 가운데도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출가자 가운데도 서방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이가
있을 것이다. 출가자들에게만 도솔천 신앙이 특별히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불교는 실제로는 통불교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 종지는 선
종을 표방하고 있다. 선종은 자력에 의한 성불과  생사해탈을 궁극의 목표로
하고, 정토교는  자력 외에 타력도  이용해서 극락세계에 가는 것을  목표로
한다. 자력 성불이라는 목표를 가진 출가자들의 자존심은  드러내 놓고 미타
신앙에 안주하는 것을 꺼리게 한다.

 조실 스님들의 결제  해제 상단 법문은 생사해탈을 강조한다.  천상에 태어
나면 자기가 지은 복을 다 쓰고 났을 때,  다시 아래로 내려와서 지옥, 아귀,
축생으로 윤회할 수도 있다고 한다. 성불해서 윤회의  굴레로부터 완전히 벗
어나는 참선 공부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물론  서방정토와 천상은 일치하
지 않는다.

 욕계, 색계, 무색계의 많은 천상들은 서방정토와  다르다. 그럼에도 참선 정
진하는 출가 수행자들은  극락에 들렸다가 더 높이  올라가는 우회로보다는,
이 몸을 가지고 바로 깨쳐  바로 부처가 되는 직행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고 해서 출가  승려들에게 서방정토 신앙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전국  사찰의 출가자들은 신도 망인을  위해서 천도재를 지극정성으로
모신다. 서방정토가 좋기 때문에 신도들에게도 권할 것이고, 신도들이 그 곳
에 왕생하기를 바랄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망인이 일반신도가 아닌 출가자 자신의 부모 형제 중의 한 명이라고 하
더라도, 그를 위해서는 서방정토 왕생을 기원하니, 정토에 대한 믿음이 없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그러면 왜  출가자들의 신앙이 저처럼 이중적인  듯이
보이는가. 자력교(自力敎)와 타력교(他力敎), 난행도(難行道),  이행도(易行道)
의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참선 수행자들에게 있어서는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력에 의해서 닦아
나간다는 자존심, 또는  번뇌와 생사로부터의 해탈을 위해서  쉬운 우회로가
아닌 어려운  직선로를 간다는 자긍심이  있다. 왕생정토는 불 보살의  힘을
빌리는 쉬운 길이므로 수행 전문가가 아닌 신도들에게  권하고, 전문가인 자
신들만이라도 힘든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력과 타력은 완전히 갈라놓을 수 없다.  누구의 힘이라고 이름 붙
이든 우주 가운데 무엇인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자력은  있을 수 없다. 타력
을 빌리더라도 자력이  있어야 한다. 돈을 빌리더라도 말할 힘이  있어야 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선하는 출가자들도 기도를 통해서  정진할 힘을 충전
시키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또 선과 정토를 겸해서 닦기도 한다. 이 선정겸수(禪淨兼修)에 대해서는 별
도의 난을 마련할 것이다.
 *발행일(1712호):1999년 3월 30일, 구독문의 (02)730-4488-90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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