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B.W.L) 날 짜 (Date): 1999년 4월 7일 수요일 오후 07시 35분 19초 제 목(Title): Re: [질문] 버림과 애착의 공존에 대하여 일체개고,의 '개'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전체는 고통도, 즐거움도 알 수 없습니다. 나뉘어져 개체로서 존재할 때만 고통과 쾌락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집착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집착은 나 아닌 다른 어떤 것에 대한 것이므로 분리감에서 옵니다. 착각에서 비롯되는 환상입니다. 대상에 집착한다는 것은 저 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거나, 갖지 못함을 아쉬워하는 것이겠지요. 그러나 진실은 잃어버릴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고, 갖지 못할 것도 없고, 아쉬워할 것도 없으며 집착하는 주체 또한 망상입니다. 마음이 어떤 대상, 예를 들어 돈이나 명예, 좋아하는 사람 같은 온갖 물질적, 비물질적 대상에 집착할 때, 그 집착의 대상들은 마음의 어떤 특정한 의식적,무의식적 목적을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하십시오. 미래를 보장해주거나, 마음을 살 맛 나게 해주고, 마음이 스스로 모자른 부분이라 규정한 것-콤플렉스를 보완해줄 수 있는 수단이라 마음은,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집착 자체는 좋지도 나쁘지도 않는,그냥 현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하고자 하는 바는 집착으로부터 파생되는 심리적, 육체적 고통을 회피하려고 하면서도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마음의 이중적 태도입니다. 만일 고통이 정말로, 정말로 싫다면 집착하지 않으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집착이 없으면 고통도 사라지지만, 쾌락 또한 사라집니다. 평화 속에 머물면 쾌락을 달리 인식하게 할만한 다른 무엇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고통을 피하고자 하고, 잠시의 휴식, 인식가능한 쾌락을 얻으려 하는데, 인식불가한 쾌락의 극치, 블리스-至福, 영원한 평화와 침묵의 상태는 두려워합니다. 자아는 소멸을 두려워합니다. 바다 속에 스며들기를 거부하는 이슬방울입니다. 이는 자아의 성질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떻게 집착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자아가 완전한 절망에 이르러 죽으면 됩니다. 그야말로 백척이나 되는 뾰족한 난간 꼭대기에 간신히 버티고 서있는데, 죽고싶지도 살고싶지도 않는 처지에 이르면 자아가 죽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가고자 하여 도달하는 곳이 아닙니다. 가고자 하는 욕망 또한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한 욕망에서 비롯되는 모든 종류의 시도는 평화에 도달하지 못하고 맙니다. 계속되는 시도 끝에 완전히 절망하고 주저앉으면 그 때 평화가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그 평화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항상 있었던 것임을 뒤늦게 발견합니다. 왜 우리는 원래부터 항상무궁한 평화를 져버리고, 이렇게 헤메고 있을까요? 석가모니는 오랜 세월 뼈만 앙상한 몰골이 되도록 수행을 하지만,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깨닫고자 하는 마음을 완전히 포기한 순간 평화가 왔습니다. 이 사건은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완전히 포기하기 위해서 그토록 오랜 노력과 고통의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일까요? I am master of my own destiny, and I can make my life anything that I wish it to 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