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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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날 짜 (Date): 1998년 12월 12일 토요일 오후 08시 19분 25초
제 목(Title): 무기정 이야기 (나머지)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뒤, 경사(京師)에서 그리 멀지 않은 한 총
림(叢林)에 신통이 자재하고 변재무애한 한 도인이 출현하여, 승속
(僧俗)을 막론하고 커다란 화제거리가 되고 있었다.
 그 새로운 도인은 몸을 솟구쳐 하늘을 나는 것은 물론, 한 숟갈의 
밥으로 수백 수천 명이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밥을 만들며 맑은 하
늘에 비를 쏟게 하고, 호랑이 같은 맹수를 집안의 개 다루듯 하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갖은 신통변화를 자유자재로이 구사하여, 많
은 사람들의 존경을 삽시간에 독차지하여 날로 그 인기가 드높아 
가고 있었다.
 이를 예리하게 주시하고 있던 나라의 스승이신 청량국사는 이윽고 
새로운 도인이라 일컫는 사람을 만나 보기로 하였다.
 불교의 근본 이념은 무슨 신통변화를 나투는 것보다 사람에게 바
른 법을 깨닫도록 가르치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는데, 이 새 도인
은 갖은 신변(神變)을 대중에게 보여 민심을 사로잡는다 하니 저으
기 외도가 아닌가 하고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청량국사의 초대를 받은 새 도인은 서슴없이 국사의 처소에 찾아
왔다. 밝은 안광이며 미목이 청수한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언뜻 보기
에도 예사 사람은 아닌 성싶었다. 허나 자기 신통력과 변재, 그리고 
위풍당당한 몸매 등을 지나치게 믿는 나머지 어딘가 가벼운 면모가 
첫눈에 띈다.
 "내가 지금 마음을 어디에 두었는지 알아내시오."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국사의 질문이 떨어졌다. 새 도인은 가부
좌한 채 얼핏 국사를 올려다보고는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이윽고 눈을 뜬 새 도인,
 "네에, 사선천(四禪天)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국사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입을 연다.
 "그럼, 이번에는 내 마음을 어디다 두었는지 알아보시오."
 새 도인은 먼저와 마찬가지로 슬쩍 국사를 한번 쳐다보고는 이내 
눈을 감고 정에 드는 것이었다.
 얼마를 지났을까. 새 도인은 눈을 뜨며 회심의 미소를 담으면서 자
신 있게 대답한다.
 "지금 마악 태평양 위에 일었다 꺼지는 파도 위에 있습니다."
 국사는 이번에도 여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세 번째 물음이 
나왔다.
 "자, 이번에도 내 마음 둔 곳을 알아보시오."
 청량국사는 앉은 자세도 고치지 않고 마지막의 시험을 던지는 것
이었다. 
 새 도인은 다시 눈을 감고 국사의 마음을 쫓기 시작했다. 먼저번과 
같이 이 세상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하여 급기야는 세계의 광활한 
우주를 주름잡으며 오로지 국사가 둔 마음의 소재를 찾기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욕계(欲界) 육천(六天), 색계(色界) 십팔천(十八天)을 
차례로 두루 살핀 다음 무색계(無色界) 사천(四天)을 모두 살펴 나
갔다. 
 그러나 이 어인 일인가? 국사의 마음 둔 곳이 없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찾던 새 도인은 한나절이 지나자 드디어 항복하
고야 말았다.
 "큰스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국사의 앞에 꿇어앉아 합장하고 청죄를 한다.
 "그대 신분을 똑바로 밝혀라."
 드디어 서릿발 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새 도인은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갖은 신통을 자유자재로이 쓰는 것 보니 예사 범부는 아닌 성싶
은데?"
 "......"
 "그러나 유심(有心)으로 헤아리는 재주를 가지고 불가사의(不可思
議)한 대도(大道)를 논한다는 것은 마치 계란을 가지고 바위를 치는 
격이니라. 그대 만일 허물을 뉘우치고 신분을 밝히면 제도 받을 분
(分)이 있거니와 제 신분을 속이고 자기 신통만을 내세운다면 설사 
천불(千佛)이 출세할지라도 제도 받지 못할 것이니라."
 "이 몸이 너무도 부끄럽고 황송하와 감히 여쭈올 용기를 잃었나이
다. 바라옵건대 이 몸을 어여삐 여기시와 건져 주소서."
 "음----, 그럼 그대는 누군가?"
 "저는 가섭불(迦葉佛) 당시의 한 비구였는데 매양 한정처(閑靜處)
를 찾아 홀로 선정(禪定) 닦기를 좋아하였삽더니, 하루는 깜박 온갖 
생각을 여읜 공(空)의 경계에 몰입하였삽는데 그 정(定)에서 깨어 
보니 석가불 시대의 현재였습니다.
 이 정(定)이 무슨 정인지는 모르겠사오나 워낙 오랫동안 몰입했던 
탓으로 정에서 깨어나면서 오신통(五神通)을 얻게 되었기로 이 조그
만 신통을 빙자하여 외람되게 도인 행세를 하였사옵니다."
 "음......"
 "이 몸이 그토록 오랜 세월을 허비했던 정(定)의 정체를 밝혀 주소
서."
 "그것은 무기정(無記定)이라는 무서운 함정인데, 선정을 닦는답시
고 온갖 생각을 여의려다가 자칫하면 이 함정에 빠지는 수가 있느
니라. 무기(無記)의 경지와 무심(無心)의 경지를 혼동하여서는 안 되
느니라."
 "무심, 무기에 대해서 더 자세히 일러 주소서."
 "무기(無記)의 정(定)은 온갖 생각을 여의어서 아무것도 없는 경지
에 몰입한, 이른바 죽은 정[死定]이요, 무심(無心)의 경지는 온갖 생
각을 여의었으되 마음이 소소영영(昭昭靈靈)하여 일체를 관조(觀照)
하는, 이른바 산 정[活定]이니라."
 "이 몸이 가섭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고 독처 수행을 고집하다가 
무서운 함정에 빠졌었던 것을 이제야 확연히 깨달았나이다. 바라옵
건대 지난 허물을 뉘우치오니 이 몸을 해탈케 하여 주소서."
 "절실히 뉘우쳤다 하니 다행한 일이로다. 모르는 게 있거든 똑바로 
물어라."
 "어떠한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大意)입니까?"
 "장벽와력(牆壁瓦礫)이니라."
 "아, 네에---"
 국사의 한 마디 대답에 금방 승당(承當)하여 불법의 대의를 깨닫고 
'아, 네에'하는 단 한 마디를 내뱉은 그는 이어 일어나 큰절을 세 번 
드린다.
 "오늘 크신 은혜 입사와 이 제자는 바로 알았습니다."
 "음---, 과연 장하다. 상근대기(上根大器)로구나. 부디 부처님 은혜
를 잊지 말지어다."
 "네에. 명심불망하겠나이다."
 그는 재삼 사례하고 밝은 웃음을 지으며 청량국사의 처소를 물러
나와 다시 보림(保任)하고자 깊은 산중으로 향하였음은 물론이다.
 *    *    *
 언기의 긴 얘기를 다 들은 연파거사는 새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
마터면 자기도 무기정(無記定)에 빠질 뻔하였기 때문이다. 아니, 요
즘 몇 차례를 그 무시무시한 무기정 속에 몰입하여 하룻밤을 단 몇 
각 동안에 지나곤 하였던 것이다.
 "스님이 아니었더면 이 늙은이도 무서운 함정에 빠질 뻔하였습니
다."
 "그래서 옛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이 세상 모든 것을 속여도 자기 
공부만은 속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다행히 이제 알으셨으니, 화두
를 단단히 붙잡고 씨름하십시오."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기정에 들었던 그 분이 오신통을 얻었
다 하는데 오신통과 육신통을 얻는 과정을 설명해주십시오. 저는 도
통하면 신통이 나는 줄 알았는데요."
 "오신통이란 천안통(天眼通), 천이통(天耳通), 타심통(他心通), 신족
통(神足通), 숙명통(宿命通) 등을 일컬음인데 이 다섯 가지 신통은 
식심(識心)을 맑혀 얻는 것이고, 육신통 중의 맨 끝 신통인 누진통
(漏盡通)은 마음을 깨쳐서 얻는 신통입니다.
 무기정에 들었던 그 분은 무기정 속에서 수만 세를 지나는 동안 
식심이 맑아져서 오신통을 얻은 것입니다만, 누진통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무심의 경지에 대해서는 두 손을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량국사가 세 번째 마음을 둔 곳은 무심의 경지에 몰입하여 국사
의 코 끝에 마음을 두었다 합니다. 국사의 코끝이니 바로 자기 눈앞
이건만 무심의 경지를 유심(有心)으로 헤아릴 수 없으므로 찾지 못
한 것이지요. 그래서 옛 조사께서 이르시기를, '비사량처(非思量處) 
식정난측(識精難測)'이라 이르셨습니다. 결국 오신통이란 깨치는 분
상(分上)에 있어서는 아무런 쓸모도 없거니와 자칫하면 외도(外道)
의 구렁으로 흐리기 쉽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깨쳐서 얻는 누진통을 얻지 못한 다른 신통은 불
법의 바른 면목으로 보자면 모두가 사마외도(邪魔外道)에 불과한 것
이지요."
 "그런 걸 모르고서 어떤 신통을 얻었다 하면 그것으로 도인인 줄
만 알았습니다. 이제 가슴속이 후련히 트이는 것 같군요."
 "불법은 어디까지나 마음 깨치는 것을 근본으로 하는 것이니, 천 
가지 만 가지 기량과 계교를 다 끊어 버리고 오로지 참선하는 게 
최선의 길이요 방법입니다."
 "정말 오늘은 여지껏 듣지 못했던 상승법문(上乘法門)을 들었습니
다. 감사합니다."
 그로부터 연파거사는 무기정의 함정을 벗어나 제대로 정진을 계속
할 수 있었다. 그는 편양이 자기 집에 온 것이 마치 부처님이 강림
하신 것이나 다름없이 감사하고 영광스러움을 새삼 절감하는 것이
었다.
 '만일 편양스님이 아니더면 나는 무기정 속에서 영영 헤어나지 못
하고 끝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지고야 말았을 게 아닌가......'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지는 일이었다.
 '아--- 감사합니다. 편양스님.....'
 그는 수없이 감사함을 속으로 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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