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Termi (Roh, Y.J.) 날 짜 (Date): 1995년05월11일(목) 01시44분27초 KST 제 목(Title): 불교적 삶의 자세& Re: 사회적.. guest님의 고민은 아마도 종교인들이 대부분 갖게되는 문제라고 생각하며, 저역시 그렷� 사회적 삶과 종교적 죄악(?)과의 관계를 고민한적이 있었기에 나름대로 생각해 본것들을 적어볼까합니다. 먼저, 문제의 범위를 조금 넓게 잡아서, 불교적 삶의 자세를 교리적으로 어떻게 이야기 할수있는지를 정리해보고자합니다. 불교적 삶의 교리적 기준으로는 고.집.멸.도의 사성제로 볼수가 있는데, 사성제는 고등학교때도 배우지만, 이에대한 적극적 해석이 부족한듯 합니다. 제가 사성제를 불교적 삶의 기준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삶의 모습이었고 제반 문제의 해결방식을 완결된 체계로 교리화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성제의 첫번때 단계는 '고'로써 고의 인식단계인데, 여기서 고는 괴롭다,아프다의 뜻이라기보다는 문제점,모순,unstable의 의미로 받아들이는 것이 더 옳지 ㅎ各뺑� 합니다. 즉,매순간 순간 항상 변화하려고 하나 원하는 상태로 쉽게 변화되지 않는 상태,최선의 상태로 유지하지 않으려는 상태,원하는 상태가 얻어지고 유지되지 않는 모든 모습들을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의 인식이 가장 먼저이며, 가장 중요한 단계로 볼수있는것은 먼저 무엇이 문제인가,지금의 상황에서 잘못된 부분이 무엇인가를 인식함으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가질수 있기 때문입니다.부처님의 생애에 있어서도 싯달타는 고를 단지 가린� 있던성문을 나서서 고의 존재를 알게 된것으로 부처님의 수행이 시작 된것처럼 고의 인식은 문제해결의 첫단계가 됩니다. 그다음 단계는 '집'으로서 이는 그 고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단계로 싯달타거쩜愍� 위치를 버리고 6년간 수행정진을 한것과 같이 치열함이 요구되눼丙窩都求�. 그 원인을 파악해서 해결한 상황이 멸인데,부처님의 해탈의 단계이며,그 고의 해결의 방편을 '도'라고 하며, 부처님의 전법시기에 설하신 모든 내용들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수있습니다. 이상의 고집멸도의 네 단계과정을 불교적 삶의 자세로 보며, 이는 아무런 생각없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항상 깨어서자기 주변에서 문제점을 느끼고 이에 대한 해결을 찾아가는 주체적인 삶이 요구되어 지는 것입니다. 불교는 결국 고를 해결하고 온갖 억압으로부터 벗어나서 진정한 주인된 삶으로 가는 것이며,이 길에는 개인의 직업,사회적 지위등이 문제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바른 표현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부자는 천국에 가기 어렵다는 말처럼 부자는 부처되기 어렵다는 말은 불교에서 이야기 하지 않죠. 부처님의 전법을 보면,사회적으로 천민으로부터,왕,부자등에까지 모든 사람들을 만났으며,이들에게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설했으며,이때그들의 직업,역할을 버릴것을 요구하지도 않았음은 물론이죠. 단지 사회적으로 인식되어있는 높낮음, 기득권에의해 개개인의 생활이 존엄성이 부정되는 것을 경계하셨을 뿐입니다. 무엇을 하고자하는 것이 불교에서 집착이고 욕심이라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길이 자신과 타인에게 진정 자유로운 길로 가는 것이라면,그것은 큰 서원이 될수있습니다. 사회적 성취라고말씀하실때그 부분이 자신의 삶인가 아니면 사회적으로 결정된 하나의 상일 뿐인가를 고민해보는것이 좋을듯 합니다.그 길은 쉽다/어렵다 의 문제로 제단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못된 길이면,어렵고 험난하더라도 바른 길로 가는 것이 고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글을 써 가다보니, 주제를 제대로 못집고 가는것같은 생각이 마구 드네요. 그냥 원론적인 말만 쓴것도 같고,하지만, 여러법우님들과 더불어서 불교난을 채워가는 것이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해서 이렇게 용기를 내어서 허름한 글을 올립니다. 앞으로 더 고민하고 공부해서 좋은글 언젠가는 올릴께요. ****************** 저의 첫번째 글을 불교난에 올려서 기뻐하는 영준.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