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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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sjyoun (예리큰아빠)
날 짜 (Date): 1998년 11월 24일 화요일 오후 02시 21분 01초
제 목(Title): 퍼]선시란 무엇인가?


스님들이 깨달으신 것을 선시로 많이 남기셨습니다.
가끔 불교보드에 선시를 올려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읽어보기도 했습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향가나 시조, 현대시등의 감상법은 배웠지만
선시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 같습니다.
글이 좀 깁니다만 선시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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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4/75                 입력일 : 98/10/21 11:18:50      자료량 :502줄

  제목 : (특별기고)역대 조사의 선시에 나타난 동일한 이미지 분석

 영국의 평론가 매쉬 아놀드는 "종교와 시는 같다"고 했다. 시와 종교가  인
간의 정신이 지향하는 고도의 공간을 목표로 설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매쉬
아놀드가 이렇게 분석하고 있다면 종교와 시를 함께 아우르고  있는 선시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특히 21세기를 앞두고 시단의 각광을 받고 있는 선시는 더욱  문단에 새로
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선시를 이해
하기 위한 연구작업은 극히 저조했던게 그간의 사정이다. 때마침 선시와 관
련 남다른 이론과 철학적 논리를 전개하고 있는 정휴스님이 '역대조사의 선
시에 나타난 동일한 이미지  분석'이란 제목의 글을 내놓아  전문을 게재한
다.

 이글은 선시가 무엇이며 그 바탕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전반을 고찰하고
있고 기존의 선시해석과는 또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단의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禪과 禪詩
 선시(禪詩)는 선사상(禪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이루어진 오도적(悟道的) 체
험을 시화(詩化)한 종교적 시를 말한다. 따라서 선시를 이해하려면  먼저 무
엇보다 선이 무엇인가 구명해야 한다. 선의 목적은 자성(自性)을 돈오(頓悟)
하는 데 있다.

 그래서 선을 깨침을 위한 자각의 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성을 돈오하
고 자증(自證)하지 않고는 견성(見性)은 이룩되지 않는다. 그리고 모든 속박
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도 선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또한 선은 밖에
서 얻어들은 지식이나 이론으로써가  아니라 자신의 구체적 체험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는 행위이다.

 이것은 객관적 인식이 아니라 직관적인 파악,  철저한 자기 응시를 통해서
자기 안에 잠들어 있는 무한한 생명력을 일깨우는 작업이다. 중생이 지니고
있는 생명은 무한한 창조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스스로 깨달아 체
현하고 체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단순히 진여(眞如)를 개오하는 것으로 완전히 깨침이 이룩된다고 생각지 말
아야 한다. 진여를 깨닫고 체험하여 인격화하였을 때 견성은 성취된다.

 그리고 육바라밀 가운데 한가지 덕목만 실천하고 완성하여도  피안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이것은 완전한 개오라고 볼 수 없다. 육바라
밀을 전체적으로 실천하고 그 덕목을  완성할 때 총체적 개오는  이룩될 수
있다. 일본이 낳은 세계적 선학자 스즈끼는 ‘선의 명백한 특징은 내심자증
(內心自證)의 견성을 하는데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내심자증이란 존재의 핵심에 도달하는 내적 자각이라 하였다. 앞에
서도 말했지만 자기응시를 통해 무한한 창조력을 일깨워 내적  자아를 체험
하는 일은 견성 만으로 가능하다. 특히 혜능(慧能)은 견성을  성불로 파악하
였다. 다만 혜능의 주장으로  본다면 견성을 체험하는데 있어  점수(漸修)는
용납하지 않고 자성을 돈오하는 자체가 성불이라고 돈오사상을 주장하고 있
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자성은 대단히 광활해서 만법을  포함한다고 주장하였
다. 이러한 혜능의 돈오사상에 영향을 받아  중국 선사들은 선을 본체에 대
한 돈오나 자성에 대한 직관적 자각으로 파악하고 구극에 이르러 반드시 증
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선사들은 견성체험이나 과정,  그리고 개오
의 법열을 5언과 7언의 시적 형태인 게송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것을 선시라고 한다. 그러나 선시의 전체가  오도적 체험이나 견성의 법
열만 담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선시  가운데는 자연을 소재로 하는 경우도
있고 심상(心象) 풍경을 묘사하는 경우도 있다. 또 선의 오묘한 세계를 형상
화하는가 하면 자신의 내면세계를 임종에 다달아 임종게나 열반송으로 표현
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출가 사문에게는 수도에서부터  개오, 전법, 열반의  전생애가 시적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시에는  반드시 선의 사유가 뒷받침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의 원전적 해석
이 중국 선사들이 발전시킨 선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선이란 산스크리트 범어 드야아나(dhyana)의 음을 중국에서  선나(禪那)로,
다시 그것을 줄여 선이라고 부르고 쓰게  되었다. 그 의미는 고요히 생각함
(靜慮), 생각으로 닦음(思惟修)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학술
적 해석에 불과하고 인도식 선나를 풀이하는데 불과하다. 중국 선사들이 이
해하고 체험한 선은 인도의 선나와는 거리감이 있다.

 인도적 깨침을 위주로 하지 않고  일종의 집중적이고 일정한 방법에  의한
명상을 의미하는데 반해 중국 선사들이 이해하는 선은 진여에  대한 오도와
자성에 대한 직관적 자각, 혹은 증득을 본질로 하고 있는 점에 있어 인도식
선나와 차이가 있다.

 이것은 그 당시 중국인들이 자기의 실천적 상상력에 따라서 선을 재창조했
음을 의미하고 또 이것을 자신들의 종교적 요구에 알맞게  최대한으로 발전
시켰음을 인식할 수 있다. 그렇다고 깨달음을 신봉한 중국인들이 인도 불교
를 소화하지 않은 채 선을 발전시킨 것은 아니다. 중국인의 사상, 그리고 정
신적 토양 위에 알맞게 선을 수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다만
여기서 분명하게 지적해 둘 것은 인도의 선나가 중국 선사들에 의해 재창조
되어 오늘날 우리 선종에까지 전래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규봉선사(圭峰禪師)는 선에 대한 해석을  가장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
다. 첫째 선의 진수를 선나로 이해하지 않고 선원(禪源)이란  뜻으로 근본에
접근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그는 선나가 지니고 있는 원전적  의미를 통칭하여 정혜(定慧)라고 해석하
고 있다. 광의적으로 선을  이해하려는 규봉의 학문적  깊이를 깨닫지 않을
수 없다. 규봉이 선원이란 뜻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선의 근원에 대한 해
석이다.

 그는 선의 근원은 일체 중생의  ‘본각진성(本覺眞性)’이며 ‘불성’이며,
‘심지(心地)’라고 해석하고 있다. 그리고 본각진성이나 심지를  깨닫는 것
이 혜(慧)요, 닦아 얻어 체험한 세계를  정(定)이라고 해석하고 이를 통칭하
여 선이라고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는 앞에서 말한 진성이 선의 본원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만법의 근원이
기 때문에 법성(法性)이라 하였고 일체중생들의 미오(迷悟)의 근원이므로 여
래장식(如來藏識)이라 하였으며 모든 부처님의 만덕의  근원이 되므로 불성
이라 밝히고 있다.

 이러한 선의 해석은 혜능이 <육조단경>을 통해서 우리  본성이 바로 부처
이며 본성을 떠나서 부처가 따로 존재치 않는다는 주장이 규봉의 선원에 대
한 해석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본각진성을 표현하는데 있어 중
국 선사들은 비유가 아니면  고도의 메타포어를 사용하는가 하면  비실제적
동물들의 이름을 등장시키고 있는가 하면 초현실주의 시에서나 볼  수 있는
비논리와 심상풍경을 상징하는 등  경이로운 방법을 사용하고 있음을  여러
곳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선시를 이해하는데 가장 주목할 점은 선가의 언어가 지극히 압축되어
있으며 비약적이고 은유적이면서 독특한 시어가  중복되어 있는가 하면, 남
의 시구를 그대로 인용하여 선시의 분위기를 반감시키는 경우가 많다. 특히
중국 선사들은 본각진성이나 자성을  참으로 다양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
내용을 보면  ‘이것’, ‘저것’,   ‘그이’, ‘본래면목’, ‘무위진인’,
‘독행하는 도인(盜人)’, ‘가적(家賊)’ 이라고 비유하는  경우가 있고 자
주 사용되는 시어는 니우(泥牛) 철우(鐵牛) 석녀(石女)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니우나 철우, 석녀 등의 독특한 시어는 여러 선사들이 반복하면서 즐겨 쓰
고 있는가 하면 시구를 그대로 차용하는 경우도 있어 일반적 작품의 수준에
서 본다면 표절이란 시비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
다. 특히 자주 등장되는 시어는 ‘니우’란 단어이다. ‘진흙 소’란 실재하
지 않는 동물이다. 다만 여기서는 본래면목을 상징하고 있다.

 그러나 니우란 시어는 많은 선시에서 등장하고 있으며 그 이미지가 중복되
고 있어 표절이란 시비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간략하게  예를 들면 중국의
원오극근(圓悟克勤)은 ‘물 위에 진흙 소가 달빛을 간다’고 표현했는데 고
봉(高峰)선사는 ‘바다 밑  진흙 소가 달빛을  물고 달아난다’고 표현하고
있으며 서산(西山)스님은 그의 임종게에서 ‘진흙 소가 물위로 간다’고 하
였다.

 세 사람의 시구를 분석하면 그  이미지와 내용이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 선사들은 자성을  논리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암시적이
고 은유적 방법으로 자성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동양사상의 특징이기도 하다. 그래서 개념의 조직적이고 체계
적 설명보다 암시적이고 난해한 은유를 통해 깨달음을 유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禪詩와 言語
 지금까지 선이 무엇인가 살펴보았다. 이제 선과  언어의 관계를 밝히고 나
서 선시를 논하는 것이 차례일 것 같다.  특히 선과 시의 관계에 있어 문제
로 지적되는 것은 선이 문자를 부정하고  있는 점이다. 전술한바와 같이 선
은 자성을 돈오하고 증득하는 것을 본질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불입문자를 주
장한다. 선의 기원으로 파악하고 있는 염화미소만을 보더라도 그렇다.

 부처님이 염화했을 때 가섭존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처님은 정법안
장(正法眼藏)과 열반묘심(涅槃妙心)의 비전(秘傳)을 위촉하였다. 그래서 선은
한 송이 꽃으로부터 탄생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의 생명은 역사
의 사실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원래부터 선은 우주와 더불어 존재해 있었다.

 다만 부처님이 염화를 하고 가섭이 미소를 했을 때 선기(禪機)가 작동했고
그 존재가 드러났다. 그러나 선의 본체를 언어나 문자로서 표현하기 어렵다
는 것을 부처님은 교외별전 불입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이란 뜻으로 가르쳐
주었다. 이 뜻은 실상이언(實相離言)이란 정신과 일치되고 있다.

 진리의 참다운 모습은 언어를 떠나 있다.  실제 법이라든가 실재(實在), 또
는 진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달이 가능할 뿐이고 언어로서는  본질을 드
러내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경전이란 우리 자신의 진정한 통찰(洞察), 자오
(自悟)를 자극하고 환기시키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다.

 그래서 서산스님은 유언(有言)에서 무언(無言)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교이
고 무언에서 무언의 세계에 이르는 것이  선이라 하였다. 선에서 체험한 깨
침의 세계는 언어로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
(心行處滅) 즉, 말의 길이  끊어지고 마음과 상상력으로도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원효는 이와 같은 과제를 이언진여(離言眞如)와 의언진여(依言眞如)
로써 극복하고 있다. 진여는 말로써 설명할 수 없다.

 이언진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효는 진여를 말로써  설명할 수 있는 길
을 열어 놓고 있다. 바로 그것이 의언진여이다. 원효가  진여를 말로써 표현
할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한 배경을 보면 이언진여와  의언진여로 구별한데서
그 뜻을 찾을 수 있다. 진여는 이사(理事)를 구족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이
는 언설을 절(絶)한 것도 아니고 언설을 절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상즉불리(相卽不離)의 관계의 모습을 지니고 있는 세계가 진여이다. 그렇지
만 언어가 있을 때 존재는 드러나게 되고 이심전심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
다. 바로 이것이 의언진여의 세계이다. 선사들의 깨침의 세계와 존재의 본질
도 의언진여에 의해 밝혀지고 전달된다.  그리고 선종의 불입문자도 문자의
집착을 막는데 그 의미가 있지 문자가 진리를 가르치는 방편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뜻은 아니다.

 여기서 입자(立字)의 뜻은 정립(定立)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견성한 사람
은 문자를 세워야 할 때와 세우지 않을 때를 분명히 알고 언어와 문자를 사
용한다.이와같이 선과 언어의 관계는 이중성(二重性)으로 되어  있음을 지적
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경향은 선과 언어의 관계뿐 아니라  한시(漢詩)에
있어서도 동일한 점을 발견할 수있다.

 그렇다고 극도로 언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말에는 끝이 있으
나 뜻에는 끝이  없다’(言有窮耳意無盡)는 내용에서 볼  수 있듯이 언어의
한계가 드러나 있듯이 선사들은 득의망언(得意忘言), 즉 진실한 뜻을 깨우치
기 위해서는 먼저 말을 잊은 후에 뜻을  얻게 된다는 태도를 갖고 있다. 대
체로 선사들은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의존할 수 있는 언어와  버려야 할 언
어의 이원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를 잘 판단,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인간과 자연의 원초적 관계라고 할 수 있는  진여를 표현하는
데 때로는 초월적 언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는 공리적 전달의 언어를 사
용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원효가 말하는
진여를 드러내는 언어관은 곧 존재의 본질을 드러내는 사유자(思惟者)의 언
어라 할 수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과 시는 상즉성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선과 시는 본질적으로 정신적 원천에 있어서도 서로 공통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선은 자성을 돈오하고 증득하는 것으로 본질로 삼고  있다. 그리고 이
를 위하여 풍부한 사유과 직관적 관찰,  또 심도있는 투시로 진여의 본질에
도달하고자 한다. 이와같은 관점에서는 선과 시는 공통점이 있다.

 왜냐하면 꾸준한 정신적 추구와 시적 영감을 통하여 사물을 해체 분석하고
미적 가치를 발견하려는 시작(詩作) 원리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선사
들의 시적 구성의 바탕을 보면 자신들의 오도적 체험이나 수행의 일상을 시
로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선사들은 오도적 삶과 내면세계를 시적 도구에
담아 표출하여 이루어진 것이 게송문학(偈頌文學)이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임종게’ ‘열반송’ ‘오동송’ ‘상당법어’
‘시인시중(示人示衆)’등이다. 그런데 여기서 연구과제와 의문으로 남는 부
분이 있다. 특히 임종게와 오도송에서 나타난 다른 선사들의 시구의 인용과
시어의 중복성이라 할 수있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는
것은 선시도 문학적 논의의 대상이라면 ‘니우’와 ‘철우’ ‘목마’ ‘석
녀’ 등의 동일한 이미지가 반복되고 있는 점을 지적할 수  있고 어떤 경우
는 다른 선사의 시구를 그대로 인용하고 있는 점이다.

 특히 경허선사의 임종게는 실제 경허 자신이 입적에 다달아 해탈의 심상을
그대로 표현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훗날 제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많
은 의문점을 남기고 있다. 왜냐하면 경허는 근대 선종의 중흥조일뿐만 아니
라 자성을 돈오하여 해탈자재한 본분종사이다. 근대 어느 선사보다 많은 선
시를 남겼으면서도 탁월한 시적 재능을 보여준 그가 왜 중국 반산보적(盤山
寶積)선사의 게송을 그대로 옮겨 놓았는지 의문이 남기 때문이다. 경허의 행
장에 기록된 임종게는 다음과 같다.

 심월고원(心月孤圓)
광탄만상(光呑萬像)
광경구망(光境俱亡)
복시하물(復是何物)
 마음달 홀로 둥글어/ 그빛  만상을 삼키니/ 빛과  경계가 다 공한데/ 다시
이것은 어떤 물건인고.반산보적선사의 게송을 보면 경허선사의 임종게에 대
해서 많은 의문점을  제기할 것이다.심월고원 광탄만상  광비조경 경역비존
광경구망 복시하물(心月孤圓 光呑萬像 光非照境 境亦非存  光境俱亡 復是何
物)<’벽암록’ 현암사간 410p참조>

 여기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경허의 임종게가 보적선사의  게송을
그대로 인용했다는 사실이다. 다만 보적선사의  게송 가운데 ‘光非照境 境
亦非存’이란 두 시구를 제외하고 나면 글자 한자가 틀리지  않는 경허선사
의 임종게란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경허의 임종게를 경허스님 자신이 쓴 임종게가 아니란 의문이 제기
되고 있다. 이 부분은  경허선사의 사상과 선시를  연구하는 사람의 과제로
남겨둘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러나 선시가 문학적  논의의 대상을 삼았을
때 창작과 모방과 표절의 시비는 항상 제기될 수 있음을 밝혀둔다.

 *禪詩에 대한 小考
 선시의 어원은 ‘gata’라는 산스크리트어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선시라는 문학적 장르가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바로 가타(伽陀)가 오늘날 시적 형태와  동일할 뿐 아니라 시경대의
(詩經大義)가운데 송(頌)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gata’를 중국에서는 가타(伽陀) 게타(偈陀)로  음역하고 있다. 번역하면
게송(偈頌) 또는 송(頌)이 된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가타 또는 불전의 운
문체로서 불덕을 찬탄하거나 산문을 마무리하는 운문형식이다. 이것이 한시
의 시적형태이며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시경대의 송에 해당된다.

 그러니까 선시 즉 광범위하게는 불교시의 기원은 바로 원시경전의 구성 형
태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마명(馬鳴)의 불소행찬(佛所行
讚)과 같은 논장(論藏)은 시문체로 되어 있으며 경전의 중요한 부분마다 가
타로 된 시적 운문이 삽입되어 불교시가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경전의 그 양식과 문장 구성을 보면 대체로 열두가지로 분류되어 있다. 이
를 십이분교라 하는데 그중 기야(祇夜)와 가타는  모두 시적 형태에 속한다
고 볼 수 있다. 또 기야는 응송(應頌) 또는 중송(重頌)이라 칭하지만 여기서
중송이란 경전의 기승전결을 두고 볼 때 경전의 서론에 해당하는 산문의 의
미와 내용을 운문으로 요약하거나 부연하여 경전의 중간 또는 마무리하는데
쓰는 송을 말한다.

 가타 또는 게송은 중송처럼 산문 뒤에 따르는 운문이 아니고  전체가 단독
으로 시적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을 가타라고 한다. 가타는 대부분 4언과 5
언 혹은 7언의 시적 형태를 갖추고 있으며 이와 같은 가타가 합쳐서 4구 또
는 5,6,7구를 이루는 것을 일송(一頌)이라 하였다.

 이처럼 원시경전에서부터 대승 경전에  수록된 운문들이 중국에  수입되어
한역되면서 한시적 골격을 이루게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본격적인  불교 운
문문학이 발전하였다. 그리고 이와같은 경전의  가타가 개인적 창작으로 변
화하면서 송과 찬의 운문문학이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불교적  작품 과
선시의 창작 영역이 확대되어 갔다.

 특히 선시가 중국 선종에 뿌리를  내리게 된 원인과 배경을  보면 시게(詩
偈) 게송(偈頌) 가타(伽陀)  송고(頌古) 명찬(銘讚) 가영(歌詠)  가송(歌頌)등
시적 양식이 있었기 때문이며 이로 인해 불교문학은 선시가 그 중심이 되었
으며 그 가운데서 조사들의 공안과 어록은 선문학의 대종(大宗)이 되었다.

 그리고 가타나 시게 송고의 시적 양식에 담겨 있는 선시는  일반적 한시와
달리 인간의 본질과 존재의 본체를 형상화하는 차원높은 문학으로 발전하였
다. 그러나 선시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니다. 일부의 선시는 일반적 한
시와 같이 자연이나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선사들은 관념을 동
원하거나 선리적(禪理的) 내용으로 깨침의 세계를  재구성하고 있는 작품도
있다.

 이와 달리 내면적 세계를 구체화 시키면서 치열한 견성 실험을  통해 체험
한 오도의식과 아울러 그 의식에 투영된 자연과 비자연을  재구성하는 놀라
운 시적 기교가 있는  작품도 있다.이와 같은  선시의 창작은 중국에서부터
비롯하여 우리나라에 전래되었고 일본에도 전파되어 동북 아시아 불교 시학
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중국 시대에 있어 본격적인  선시의 창작활동은 달마로부터 출발하여  5조
홍인에 이르러서 활발해졌으며 6조 혜능과 신수에 의해  심화되었고 5가7종
의 선종이 다투어 종파를 형성하면서 그 내용이 다양해졌다.

 중국 시대  대표적인 작가  즉 선시를  남겼던 분들은  당(唐)의 ‘한산’
‘습득’ ‘풍간’  ‘귀연’ 등과  송(宋) 의  ‘설두중현’ ‘천동정각’
‘원오극근’ 등을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선시가 중국의 정신 토양 위에 뿌
리를 내린 시기는 한산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왕유’ ‘백낙천’
‘이백’ ‘이하’등이 <능가경>을 읽고 감동하여 새로운 개안(開眼)을 얻
기도 하였으며 그 당시 일반 시인들도 다투어 불교 사상에 몰입하였다.

 그러나 초기 선시는 수행과정과 자연을 대상으로 했는가  하면 음풍명월의
수준에 머물러 있는 시들도 있었지만 진리의 원천에 도달코자  하는 선리적
인 시가 많았다. 다만  선시가 난해해진 배경을  살펴보면 선사상의 발전과
무관치 않음을 발견할 수 있다. 달마와  혜가 사이에 있었던 선문답은 안심
(安心)에 있었고 나아가 홍인과 혜능에 이르러 본래면목을 탐구하고 그것을
비유하고 상징화했는가 하면 역설적으로 설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혜능으로부터 견성이 중요시되었고 그의 제자들에 의해  마음을 일
물(一物)로 비유하다가 마조선사에 이르러 다시  즉심즉불로 표현하였고 비
심비불로 부정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선종의 부정정신은 임제에 이
르러 살불살조란 부정의 미학을 낳기도 하였다.

 이후부터 불성과 심지, 혹은 본래면목을 은유와 상징하는 작업이 이루어졌
고 ‘대혜종고’와 ‘설두중현’에 이르러 선시에 난해한  시어가 등장되고
본래면목이 ‘니우’ ‘철우’ ‘석녀’ 등으로 상징화되었다. 그리고 천재
적 감수성과 에스프리를 지닌 야부(冶父)선사가 출현하여 선시의 영역은 넓
혀졌다고 불 수 있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다음의 작품을 보자.

 대그림자 뜰을 빗질하고 있다.
먼지 하나 일지 않는다.
달이 물밑을 뚫고 있으나
수면에 흔적 하나 일지 않는다.
 야부선사와 동시대 인물이라 할 수 있는,  물론 출생연보는 다르지만 ‘설
두중현’의 출현은 선문학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으며 송고법칙(頌古法則)은
선시가 깨침의 시학으로 승화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어느 시
대이고 역사의 윤회와 인과가 있듯이 한번의 극치가 가면 그 다음은 몰락이
오기 마련이다.

 이것이 역사의 법칙이다. 선시의 극치가  야부와 설두중현으로부터 파동치
고 난 후 송에는 석양이 스며들었다.  찬란한 정신사에 쇠퇴의 기운이 스며
든 것이다. 이후부터 선시는  침체한 분위기 속에  생명력 넘치는 직관력을
잃기 시작했고 번뜩이는 예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설두중현이후 침묵과 단절의  시간은 길었다. 물론  여기에는 송의 몰락도
원인이 되었지만 자기 완성을 위해 치열하게 견성실험을 하는  수행자가 없
었다. 다만 선시의 날카로운 예지와 직관력의 회복은 고려의 진각(眞覺)으로
부터 전승의 기회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진각의 선문염송이다.

 진각의 선문염송은 단순히 선시의 차원을  넘어 고려 선종에 자각의  눈을
열게 하였고 내심자증의 새 지평을 열게  하였다. 진각의 스승 보조는 한국
적 선종을 새로이 개창하였으며 그의 사상은 인간의 정신사를 한층 더 빛나
게 하였다. 그리고 보조로부터 한국의 선시는 문학적 위치뿐만 아니라 선종
에 있어 견성을 중요시하는 새로운 경향이 다시 일게 되었다.

 특히 보조의 진심론(眞心論)은 선시 배태의  사상적 원천과 근거를 제공하
였다고 볼 수 있다. 사실  보조에 이르러 인간의 삶의 문제,  우주와 자연의
문제, 그리고 인간의 본질문제를 깊이 천착하면서 중세적 정신의 새로운 전
환을 가져오게 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변화가 예술적 영역까지 확산되면서
선시가 다시 발흥하게 되었다.

 특히 보조는 다른 선사와 달리 정혜(定慧)를 완성할 때만이 견성은 성취된
다는 참신한 선사상을 전개하면서 언어와 문자의 필요성을 강조하므로써 선
시는 한층 깊이를 더해 갔다.보조와 진각으로부터 다시 발흥하게 된 선시는
‘일연’ ‘나옹’ ‘원감’ ‘경한’ ‘보우’ 등에 의해 전승되었고 조선
조에 와서는 ‘보우’ ‘서산’ ‘함허득통’ ‘소요태능’ ‘청매앙’등이
선시의 영역을 넓혔다.

 그러나 이들도 동양사상의 특징이라 할 수있는 관념의  조직적이고 체계적
설명보다 직유와 암유로써 자성에 접근하고 있다.
그리고 선시에서 지적할 중요한 부분은 선사들이 한결같이 자연과  깊은 관
계를 맺고 있는 점이다.

 *禪詩의 素材와 표절의 是非
 선시의 대부분은 그 발상의  원천을 자연에 두고 있다.  사실 시인에 있어
자연은 미적 관조의 대상이며 은유 상징등 시적 표현의  매개물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뿐만 아니라 수행인의 생활환경이  자연이라고 생각할 때 자연
은 어쩔 수 없이 관조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행주좌와(行住
坐臥) 그 자체가 선이 되고 깨달음과 견성실험의 정진이 된다.

 자연은 선사들에게만 특별히 관조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일반 시
인에게도 시적 체험과 발상의 원천이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인은 자연을 통하여 정서를 다듬고 시는  자연의 모
방’이라 했는가 하면 드라이든은 ‘시는 자연의 한 형상’이라 하였다. 그
래서 선사들의 직관으로 관조된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진여로 인식된다. 이
때의 작품은 서술적  심상(心象)이 아니면 비유적  심상으로 진여의 모습이
형상화된다.

 왜냐하면 선사들이 수행하는 곳,  그 주위에 있는 산과  나무 푸른 산빛과
골짜기를 가득 채운 물소리가 모두  진여의 모습과 생명의 소리가  아닐 수
없으며 또 깨달음 경지에서 보면 산산수수(山山水水)  일초일목(一草一木)이
진여 아님이 없고 불법아님이 없기 때문이다. 산하대지 그대로가 법신의 현
현인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선시가 그  발상의 원천을 자연에 두고 있을
뿐 아니라 자연을 소재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특히 백운(白雲), 물, 산, 꽃 등은 선시 구성에 있어  자주 등장되는 소재들
이다. 여기에서 백운은 불교적으로 해석되지  않으면 평범한 서정으로 전락
되고 만다. 선시에 있어 백운은 대체로 세가지의 시적  심상을 지닌다. 첫째
백운은 본래본체가 없다. 그래서 백운은 인생과 모든 존재가 허망하고 무상
하다는 의미로 비유된다. 삶이란 한조각 구름이 일어남이요,  죽음이란 구름
이 쓰러짐과 같다.

 이와같이 백운에 실체가 없듯이 실체가 없는 것은 인생도 그와  같다는 동
일한 관념에서 백운은 시적 표상이 되며 둘째는 백운이  소요자재하는 운수
납자의 모습과 같다는 의미에서  셋째는 백운이 희고 깨끗하여  무구청정한
자성을 상징하고 있는 점이다.  이러한 은유와 상징이  한시에 많이 쓰이고
또 그것이 성과를 거두는 이유는 표의문자인 한문이 갖는  의미의 유현성과
상징적 깊이가 사상과 잘 조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선적 직
관까지 시 속에 개입되니까 그 유현성은 더욱 빛나게 된다.

 보통 우리가 자연 속에 있는 사물을 은유와 상징으로 새로운  사물로 재조
직하는 것은 일반 시에 있어 보편화돼 있지만 선시에 있어서는 다른 사물로
환치시키기보다 물아일여(物我一如)의 본체를 드러내고 있으며 본체를 직관
하고 나서 그것을 불성으로 파악하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선
시에 있어서 두두물물이 법신이고 또 법신은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갖
추어 있는 그대로 실체를 자각할 뿐이다.

 특히 선시에는 그 소재가 자연이든 비자연이든 작품속에 분명히 깨침의 미
의식이 담겨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선시가 자연 중심의 소재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어로 존재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실제 있어선 있을 수 없
는 존재들이 나열되고 있다. 그리고 창작의 차원에서 본다면 표절이라고 지
적당할 사물과 동물들을 등장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일반적 시어와 같이 다양한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미지를 끌고 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경이와
충격을 일으키게 한다. 선사들이 대표적으로  즐겨쓰는 시어는 다음과 같은
서사(敍事)들이다. ‘니우’(진흙소) ‘목마’  ‘철우’ ‘콧구멍없는 소’
등이며 그중에서 ‘진흙소’란 실재하지 않는 동물을 중국 선사와  한국 선
사들도 애용하고 있음을 다음 작품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이미지가 동
일하고 표절의 시비를 안고 있음을 깨달을 것이다.

 井底泥牛吼月向
①우물밑 진흙소가 달을 향해 짖는다.
-원오극근

 水上泥牛耕月色
 ②물위에 진흙소가 달빛을 간다.
-소요태능

 海底泥牛惠含月走
③바다밑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린다.
-고봉

 泥牛水上行
④진흙소가 물위를 간다.
-서산

 ①의 작품과 ②의 작품을 보면  이미지와 시상이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고 ①과 ③의 작품은 주제가 바다밑이나 우물밑이란 것만  다를 뿐 이
미지가 같다고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표절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가 없
다. 인용한 작품 속에 공통적으로 발견된 부분은 ‘진흙소’란 실재하지 않
는 동물이 똑같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미지 역시 동일하다
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①우물속 진흙소가 달을 향해 짖는다는 이미지와 ②물 위에 진흙소가 달빛
을 간다는 이미지가 약간 변형되었으나 내용은  별 차이가 없다. 그리고 ③
바다밑 진흙소가 달을 물고  달린다는 이미지와 ④물위에 진흙소가  간다는
이미지 역시 동일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시상의 전개도 비슷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진흙소’란 분명히 객관적 상관물인 동시에 은유이다. 그러면 여기서 진
흙소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시에 있어 은유는  보조형용(補助形容)을 매개로
하지 않고 어떤 사물이나 관념이 다른  사물(심상)과 비교되므로써 보다 구
체적으로 어떤 상태를 말한다.  선시에 자주 등장되는  진흙소는 진여 혹은
마음, 자성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시마다 진흙소가 반드시 자성이나 마음을 표상하고 있는 것만
은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오브제가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분명치 않지
만 실재 즉 진여의 상태를 표상하고  암시한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선종의
어록처럼 상징적이고 실재적인 언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언어들은 특정한 존재를 적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논리적 분
석이 미칠 수 없는 경지를 암시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러나 시구 한구절을 놓고 보면 표절이란 불명예를 벗어날 수 없음을 지적하
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시구 인용의 모방심리는 근대 고승들의 게송에 자
주 되풀이 되고 있다.

 <정휴스님>
 1960년 밀양 표충사로 출가했다. 그 후 부산 범어사, 김천 직지사, 경주 불
국사, 보은 법주사 등의 불교전문강원 강사를 지냈으며, 1971년 조선일보 신
춘문예에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불교신문」편집국장. 주필. 주간. 「법보신문」주간. 주필. 사장 직무대행
「불교방송」상무 등과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치악산 구룡사 주지를 역
임했다.
 저서로는 소설〈열반제〉〈슬플 때마다 우리  곁에 오는 超人〉과  〈걸레
중광 평전〉〈달을 가리키면 달을 봐야지 손가락 끝은 왜  보고 있나〉〈백
척간두에서 무슨절망이 있으랴〉등 10여 권이있다.

 현재는 구미 금오산 해운사 주지 능인학원 이사,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본
지 사장으로 있다.

 *발행일(1693호):1998년 10월 20일 , 구독문의 (02)730-4488
  < 한장의 불교신문 한사람의 포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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