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날 짜 (Date): 1998년 11월 8일 일요일 오후 03시 44분 52초 제 목(Title): 원시불교,대승불교,밀교 #242 송경화 (현주 ) [불교사상]4-1.대승불교 1.대승불교의 성립 11/04 02:21 276 line 제 1절 대승불교의 성립 1. 대승불교의 성립 1)대승불교의 성립배경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의하면 고따마 붓다는 "붓다 입멸(入 滅)후 교단은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 것인가." 하는 아난다의 질문에 대 해 "승가는 나에게 무엇을 기대하는가. 여래(붓다)는 교단의 통솔자가 아니며, 교단 또한 나에게 의지해서 안 된다. 그대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라. 법을 등불로 삼고 법 을 귀의허로 삼아라."는 유언을 남기고 있다. 이는 생사의 괴로움을 벗 어나 열반에 드는 것은 오로지 자기자신이며 붓다 역시 법을 깨달아 여 래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같은 유언에 따라 제자들은 스승이 남긴 법 (法,dharma)와 율(律,vinaya)을 결집(結集)하고 그것을 통해 열반에 들고자 하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붓다의 제자들은 법과 율에 대한 입장을 달리하게 되었고 마침내 교단은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이를테면 불교의 전파 범위가 넓어짐에 따라 각 지방으로 퍼진 불교는 그 곳의 기후, 풍 토, 습관 내지 문화적 제반 사정에 영항을 받음으로써 비구들의 생활양 식이 변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법과 율에 대한 이설(異說)이 생겨나 교단은 통일성을 상실하게 되었던 것이다. 예컨데 붓다는, 비구는 신자 들로부터 금이나 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일단의 비구들은 시 대적인 상황변화에 따라 그것의 완화를 요구하였다. 이리하여 붓다 입 멸 후 100여 년이 지날 무렵(기원전 4세기 무렵)에는 마침내 불교교단은 전통적인 계율을 고수하려는 보수적인 경향의 상좌부(上座部,therava da)와 율조항을 자유로이 해석하려는 진보적 경향의 대중부(大衆部, mahasamghika)로 근본 분열하게 되었다. 그리고 근본 분열한 불교교단은 그 후 교법상의 해석을 둘러싸고 혹 은 유력한 스승이나 지리적 거점에 따라 분열의 분열을 거듭한 끝에 붓 다 입멸 후 400년이 지날 무렵에는 근본 2부를 포함하여 20여 부파로 분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이 시기를 불교의 '부파불교'라 하며 분열 이전의 불교를 '초기 불교' 혹은 '원시 불교'라고 한다. 나아가 이 시기의 출가자들은 수행의 최고 단계인 아라한(阿羅漢)에 관한 문제를 비롯한 붓다의 일체 교법에 대해 깊이 연구하고 논의하여 방대한 논서를 작성하였는데 이러한 논서는 '아비다르마(阿毘達磨, abhidharma)'라고 하며, 그로 인해 이 시기의 불교를 '아비다르마불 교'라고 하기도 한다. 아비다르마의 '다르마'란 교법을 의미하며, '아비' 는 '~에 대한'의 뜻이다. 따라서 아비다르마라고 하는 말은 '붓다교법에 대한 연구,해석'이라는 정도의 의미로서 대법(大法)으로 번역되기도 한 다. 즉 부파불교라고 하는 말이 분열된 교단의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라 면 아비다르마불교라고 하는 말은 그들의 사상적 형태를 나타내는 것이 라고 할 수 있다. 붓다에 의하면 일체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고, 고(苦)이며, 무아(無 我)이다. 즉 우리가 경험하는 일체의세계는 온갖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有爲)'으로 생겨난 것은 반드시 소멸하기 때문에 '무상'이며, 무상 하기 때문에 '고'이고, 또한 '무아'이다. 마치 온갖 부품의 인연화합으로 생겨난 차(車)는 영원한 실체적 존재가 아니듯이 일체의 존재는 여러 가 지 인연에 의해 생겨난 것이기 때문에 무상,고,무아인 것이다. 초기 불교에서는 그러한 여러 가지 인연으로 이루어진 존재를 대개 5 온, 12처, 18계로 설하고 있지만 아비다르마불교에서는 이를 보다 세 부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하여 번쇄하게 존재의 이론을 설하고, 바로 그것에 대한 이해를 통하여 번뇌소멸의 열반을 획득하고자 하였다. 즉 그들의 최고 이상인 열반이란 생사, 윤회의 제약을 떠난 안온(安穩), 적정(寂靜)의 경지로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고, 집, 멸, 도의 사성제 의 진리성(이를테면 고성제의 진리성은 무상, 고, 무아임)에 대해 올바 른 관찰과 이해를 통해서만 성취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때의 관찰과 이해는 개념적 이해가 아닌 선정(禪定)에 의한 직관적 통찰로서 증득되 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일상적 세속을 떠나 계율 계(戒)와 선정(定)의 실천을 통해 사성제의 진리성을 이해(慧)하고 그것을 토대로 일체의 괴 로움의 원인인 번뇌를 소멸함으로써 열반적정(涅槃寂靜)을 획득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다. 다른 한편, 불교가 흥기할 무렵 정통으로서의 권위를 상실하였던 바 라문교는 기원전 2세기경 4성(四姓), 즉 브라흐마나, 크샤뜨리야, 베 이샤, 슈드라의 4계급에 대한 종교적 의무와 생활규범 등을 규정한 "마 누법전"을 비롯한 각종 제사경전과 서사시가 작성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종래 '베다성전'이 바라문의 전유물이었다면 새로이 펴 찬된 '마하바라따'와 '라마야나' 등의 서사시는 일반 대중이 애호하였 던 종교문헌으로, 일반적으로 이 두 서사시를 기점으로 그 이전을 바라 문교의 시대, 그 이후를 힌두교의 시대라고 한다. 여기에는 "베다"에는 보이지 않던 쉬와(siva)와 비슈누(visnu)가 최 고신으로 등장하는데, 여자의 수많은 민간신앙을 흡수하여 개성이 풍부 한 신격(神格)이 되면서 다양한 신자 층을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마 하바라따"의 일편으로 알려지는 "바가와드 기따"는 오늘날까지도 힌두 교의 최고성전으로 간주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바라문교의 형식적인 제사주의를 배격하고 신에 대한 절대적믿음인 "신애(信愛,bhakti)를 강조하고 있다. 신애는 모든 카스트 사람들에게 개방된 해탈도(解脫 道)로서, 4성의 계급이나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예컨데 꽃 한 송이, 물 한 방울이라도 신애로서 신에게 바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같은 신애사상은 후세 힌두교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지만, 다음에 설할 불탑신앙상에 나타나는 불타에 대한 절대적 귀의와도 비교된다. 그러나 이는 "바가와드 기따"가 불교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니라 당시 인 도 민중들이 그러한 신앙을 요구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 다. 2)불탑신앙과 불전문학 아쇼카왕 이래 부파불교의 출가자들은 국왕이나 토호, 장자들로부터 정치적,경제적 원조에 힘입어 광대한 장원을 소유하게 되었고, 안정된 경제적 기반위에 선정과 교법의 해석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교 단이 분열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붓다의 교법에 대한 부파간의 쟁론을 초 래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학문적,철학적으로 발전 도약하는 계기가 되었 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속의 대중들과 유리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다 시 말해 부파불교의 아비다르마교학은 초기 불교의 교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시키는 데는 크게 공헌하였지만 너무나도 번쇄한 이론체계를 전 개시킴으로써 전문적으로 교학을 연구하는 출가 수행자가 아니고서는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세속의 대중들이 원하는 것은 난해한 교리나 엄격한 계율이 아니라 불타에 대한 소박한 믿음이었다. 이에 따라 법을 중심으로 하여 이해와 논의를 위주로 하는 기존의 승 원불교에 만족하지 못한 재가자와 이에 동조하는 출가자들은 점차 불탑 (佛塔)에 모여들게 되었다. 그곳에서는 어쨌든 붓다와 정의적(情意的) 인 교감이 가능하였기 때문이다. 불탑은 붓다의 유골, 즉 사리(sarira)를 봉안한 무덤으로 "포개어 쌓 다"는 뜻의 수뚜빠(stupa)에서 비롯된 말이다. 부파불교에 있어 붓다는 중생을 구제하는 이가 아니라 법으로 인도하는 스승, 즉 도사(導師)일 뿐이었기 때문에 법을 떠난 불신(佛身)의 숭배는 무의미한 것이었으며 불상이나 불탑의 숭배 역시 그러하였다. 또한 붓다는 쿠쉬나가라에서 "완전한 열반(般涅槃)"에 들었기 때문에 진리 자체(法性)로서는 실제할 지라도 인격으로서는 실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붓다의 사리에 대한 공 양,예배는 무의미할 수밖에없었다. 붓다 역시 "대열반경"에서, 출 가 수행자들은 여래의 사리에 대해 공양해서는 안 되며 오로지 열반이라 는 최고선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즉 여래의 사리에 대해서 는 신심이 돈독한 크샤뜨리아,브라흐마나,베이샤 등의 현자들이 공양 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불타의 장례식 차비(茶毘)은 말라족 사람들에 의해 거행되었으며 사리를 8등분하여 중인도 각지에 탑을 세 운 것도 재가신자들이었다. 전통적으로 불탑의 조성은 생천(生天)을 보장하였고, 따라서 불탑의 조성과 경영은 재가신자들의 몫이었다. 나아가 그들은 불타의 탄생지인 룸비니와 성도지인 붓다가야,초전법륜지인 사르나트의 녹야원, 입멸지 인 쿠쉬나가라 등을 성지로서 숭배하였으며 그 곳에 사당(caitya)을 세 워 순례하기도 하였다. 중인도의 바르후뜨와 산치, 그리고 파키스탄의 아슬라마바드 근교 탁 실라의 다르마지까 불탑 등은 오늘날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불탑으 로, 그 기원은 기원전 3~2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기원전 후 의 시기가 되면 불탑의 건립이 매우 활발해 지는데, 여기에는 꽃이나 향 등이 바쳐지고 보물과 귀금속 등이 봉헌되었으며, 춤과 노래가 베풀어 지기도 하였다. 붓다가 탄생한 날이나 성도한 날에는 특별한 공양의례 가 베풀어졌으며 제일(齊日,매월 8 , 14 , 15 , 23 , 29 , 30일)에는 8재계 (齋戒)가 시행되었다. 또한 주변에는 연못이나 정원이 조성되기도 하고 숙소가 지어져 정착이 가능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탑 앞에서 10선계(善 戒)를 받아 출가사문이 되기도 하였다. 나아가 스스로를 불탑에 헌납하 여 노비, 즉 탑노(塔奴, stupa-dasa)가 된 열렬한 불탑신앙자도 생겨나 게 되었다. 그러나 이같은 사실은 상식적으로 기존의 부파교단에서는 있을 수 없 는 일이었다. 비구들은 보통 승가라마(僧伽羅摩,samgha-arama) 혹은 비하라(vihara, 精舍)로 불리는 출가자들만의 거주처에 머물렀으며, 그 곳은 불탑과는 전혀 관계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였다. 그들에게는 금, 은을 받는 일이나 춤과 노래가 금지되었으며, 꽃 공양 역시 "초목을 함 부로 벌채하지 마라"는 괴생종계(壞生種戒)를 어기는 일이었다. 또한 출가의식인 수계작법(受戒作法)은 일정한 스승 앞에서 형식을 갖춰 시 행되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붓다는 다만 '법의 도사(導師)'였으며 중요한 것은 인격으로서의 붓다가 아니라 그가 깨닫고 설한 '법(法)'이 었다. 다시 말해 부파불교는 법 중심의 불교, 계율을 중시하는 출가자 중심의 불교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세속의 사업에 종사하는 재가자로서는 계율을 엄격하게 지킬 수가 없고, 선정(禪定)도 충분히 실천할 수 없으며 그것을 통해 증득 되는 교법의 참다운 이해는 더더욱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기에 그들 이 구원을 바랐다면 그것은 오로지 붓다의 자비에 의해서만 가능한 일이 었다. 이러한 종교적 욕구에 따라 붓다는 마침내 "중생을 구제하는 이", 즉 "구제불(救濟佛)"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예컨데 아미타불이나 아촉불 은 구원의 붓다이며, "3계(界)는 마치 불타고 있는 집(火宅)와 같고 그 곳의 중생은 모두 나의 아들이다."라고 설한 "법화경"의 석가모니불도 역 시 그러하다. 그리고 만약 법 중심의 축가교단에 반하여 붓다 중심의 교 법을 발전시킨 어떤 그룹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은 당연히 출가교단에 서 독립하여 자신들의 교법을 발전시키고, 관불(觀佛)이라는 종교행위 를 실천하기 위한 장소로서 불탑을 선택하였을 것인데, 바로 이같은 "불 탑교단"의 재가성과 신앙적 성격이 대승불교 성립에 주요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대승불교 성립의 또 하나의 주요한 원인이면서 불탑신앙과 밀접한 관 계를 맺고 있는 것이 "불전(佛典)문학"이다. 불탑신앙자들이 생각한 붓 다는 이제 더 이상 법의 도사(導師)나 아라한이 아니라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생을 거쳐 오면서 초인적 이력을 쌓은 불세출의 영웅이었다. 따라 서 그에 대한 사모의 찬탄은 종래 법 중심의 이론 교설과는 다른 형태 의 문헌을 낳게 되었으며 그것에는 논리적 설명을 초월한 비유와 은유, 혹은 우화의 성격을 띤 문학적 표현이 사용되었다. 이것이 이른바 '불전 문학'으로 이같은 불전문학을 주도한 그룹을 '찬불승(讚佛乘)'이라고 한 다. 그 중에서도 "자따까(jataka)는 붓다의 전생을 설한 불전의 한 장 르로서, "본생경(本生經)" 혹은 "생경(生經)", "전생담(前生譚)"이라 고도 한다. 즉 불전은 붓다의 성불을 가능하게 한 전생과 현생의 수행 (이를 本生 혹은 所行이라고 한다)을 밝히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자따 까"도 불전의 한 계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현존하는 불전은 대개 부파교단의 문헌이지만, 그것들은 부파를 초월하여 다음과 같은 내용상의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대승경전에도 그 대로 계승되고 있다. 즉 "3아승지겁 100겁 전 아마리와띠에 선혜(善慧) 라는 한 바라문이 있었는데 세상의 무상함을 관찰하고 출가하였다. 설 산에 들어가 선정을 닦아 열반에 들려고 할 때 연등불(練燈佛)이 출현하 여 세상을 교화하는 것을 보고 붓다가 되기로 서원하였다. 그 후 연등불 로부터 미래세 붓다가 될 것이라는 기별(記別)을 받고 이후 보살로서 이 루 헤아릴수 없는 생에 걸쳐 보시 등의 6바라밀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0지(地)의 단계에 이르러 수행이 완성되고 마침내 일생보처(一生補處, 도솔천에 태어나 다음 생에 붓다 지위에 오를 수 있는 단계)의 보살로 태어 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자따까"는 바로 붓다가 과거세 보살시절에 닦은 수행을 이야기한 것 으로 그같은 수행의 결과로서 마침내 32상을 지닌 최후신(最後身)의 보 살(사카족의 왕자)로 태어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육도집경(六 度集經)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수다나 태자 본생담"이 전해지고 있다. 옛날 남인도 시비국에 보시를 즐겨하는 수다나라고 하는 태자가 있었다. 그 나라에는 무적의 흰 코끼리가 있었는데 이웃 나라 왕이 책모로 파견한 바라문의 청에 따라 태자는 그것을 그들에게 보시하였다. 이를 안 백성들은 분노하였고 부왕은 어쩔수 없이 태자를 추방하게 되었다. 태자는 두말 없이 모든 재산을 가난한 자에게 보시하고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단특산으로 가 은거하였다. 그 산에는 늙고 추악한 바라문이 젊은 아내와 살고 있었는 데, 노예로 삼기 위해 두 아들을 달라고 요청하였다. 태자는 보시로서 수행 하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찢어지는 가슴을 달래며 두 아들을 바라문에게 건네 주었다. 또 다른 바라문은 그의 아내를 요구하였으므로 사랑하는 아내 마저 보시하였다. 그 때 바라문은 제석천으로 변화하여 보살을 찬탄한다. "참으로 거룩하도다." 그리고 처자를 돌려 주었으며 코끼리도 다시 찾게 되 었는데 그 때 태자는 바로 붓다의 전신이었다. 그런데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불탑 조성에 관계한 이들 중에는 "바 나까(bhanaka)"라고 이름하는 자들이 있는데, 이는 독송자(讀誦者)라 는 뜻으로, "법화경"에서 대승운동의 지도자로 등장하는 "법사(法師, dharma-bhanaka)"라는 말 가운데 그 명칭이 보존되어 있다. 그들이 무 엇을 독송하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들은 불탑에 의지하여 생활하며 탑에 예배하기 위해 이들에게 거기에 조각된 불전에 대해 설명 하고, 전생의 보살행을 찬탄하는 등 붓다의 위대함을 읊조렸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찬탄을 통해 붓다에 관한 새로운 교설이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나아가 그들은 오로지 일념으로 붓다를 생각하며 불탑에 예배함으로 써 붓다와 직접 대면하여 그의 법음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이 때 친견 한 붓다는 더 이상 육체적인 몸을 지닌 색신(色身)으로서의 붓다가 아니 라 시공을 초월한 진리 법신(法身)으로서의 불타였다. 이것이 이른바 관불삼매(觀佛三昧)로서 대승경전에 설해지고 있는 반주삼매(般舟三 昧, 또는 諸佛現前三昧, 붓다가 바로 앞에 직접 나타나는 삼매)가 바로 그 것이다. 반주삼매의 기원은 필시 불탑에서의 종교적인 체험에서 유래하였 을 것으로 그들은 이같은 체험을 통해 "자신이 바로 보살"이라 자각하 게 되었던 것이다. 3)대승경전의 탄생 일반적으로 대승불교는 대중부(大衆部)등 진보적 경향의 부파로부터 불전문학이나 불탑신앙으로부터 혹은 힌두교의 영향에 의해 성립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이 어떻게 발생하였으며 대승교단의 실태는 어떠하였는가 하는 점은 오늘날에 있어서조차 여전히 불분명하 다. 분명한 사실은 대승경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대승경전의 연원 역 시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법 중심의 부파불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불탑신앙자를 포함한 일단의 수행자들이 각기 숲속에서, 혹은 탑 앞에 서 삼매를 통해 법신의 붓다를 친견하고 그로부터 직접 전해 들은 법문 을 결집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테면 "대품반야경"에서 "붓다는 오직 나를 위해 법을 설하지 여 러 사람들에게 설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그들은 저마다 자신이 전 해 들은 법문을, 그 법문에서 가르치고 있는 이타(利他)의 정신에 따라 적극적으로 타인에게 전파하였으며 그러한 각각의 법문이 인도 각지에 퍼져 마침내 북인도에서 하나의 경전으로 결집된 것이 바로 대승경전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반야경"인 것이다. 오늘날 현장(玄奬)의 번역으 로 전해지고 있는 "대반야경(완전한 명칭은 "대반야바랄밀다경")은 모두 16가지의 반야경이 결집된 것, 즉 16회(會)에 결쳐 이루어진 것으로, "대품반야경(2만 5천송 반야)은 제2회이며, "도행반야경"이나 "소품반 야경(8천송 반야)은 제3회, "금강경(완전한명칭은 "능단금강반야바라밀 경")은 제9회이다. 그리고 "반야심경(완전한 명칭은 "마하반야바라밀다 심경")은 그것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하여 성립된 반야경전은 역사적 인물로서는 붓다가 직접 설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파교단으로부터 "불설이 아니다(非佛說)"라는 비 난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들은 붓다가 깨달은 궁극적 진리는 언어 적 표현을 초월하는 것으로 그것을 새로운 언어의 세계로 열어 보였다는 점에서 대승의 경전이야말로 진정한 불설이라 하였다. "대승(大乘)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명확히 사용한 이들은 "소품반야 경"을 작성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스스로 법사(法師)라고 부르며 그들이 설하는 "반야바라밀다(般若波羅蜜多)"라는 새로운 법이야말로 모 든 붓다의 어머니라고 주장하였다. 반야바라밀다는 모든 존재의 실상을 드러내어 일체의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붓다가 성취한 깨달음의 본질이다. 반야바라밀다의 증득 없이 6바라밀의 완성 도 있을 수 없으며 보살도 참된 보살일 수 없다. 따라서 진정한 보살이 란 반야바라밀다에 의해 6바라밀을 닦는 자이다. 그들은 마침내 이같은 "대(大,maha)반야"라는 법의 깃발을 앞세우고 "대승"이라고 하는 이타행의 새로운 불교를 탄생시켰으며, 자신의 열반 만을 목적으로 하여 분별의 학(學)을 중심으로 하는 기존의 승원(僧院) 불교를 "소승(小乘)"이라고 비판하였다. 그 후 그들은 다시 "유마경(維 摩經)"을 작성하여 반야,공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였으며 "수능 엄삼매경(首 嚴三昧經)","반주삼매경(般舟三昧經)"등을 작성하여 공관(空觀)삼매를 제시하였다. 법사들은 또한 "법화경"을 결집하여 점 차 그 빛을 잃어가던 불탑신앙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였으며, 이같은 새로운 "법"의 영원성을 강조하여 성문(聲聞)이든 연각(緣覺)이든 보살 (菩薩)이든 모든 불교인들은 이같은 법에 의해 평등하게 구제받을 수 있 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화엄경"10지품에서 반야,공에 입각 한 보살의 서원과 실천, 보살의 계위(階位)와 그 달성에 관한 웅대한 체 계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시각적,공간적으로 무한한 붓다, 즉 아미타불 (阿彌陀佛)에 대한 절대적 신앙과 그의 본원력(本願力,발심할 때 "모든 중생을 구제하리라"고 맹세한 서원의 힘)에 의한 타력적(他力的) 구원을 설하고있는 "무량수경(無量壽經)","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아 미타경(阿彌陀經)"과 같은 정토(淨土) 경전도 생겨나게 되었다. #245 송경화 (현주 ) [불교사상]4-1.대승불교 2.대승보살도 11/07 01:11 355 line ★ p138-p151 2. 대승보살도 1)보살사상의 형성 소승불교가 아라한의 불교라면 대승불교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경 전은 오로지 보살의 이념과 실천에 대해 설하고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보살이란 산스끄리뜨어인 '보디스뜨와(botisattva)'를 한자로 음사한 '보리살타(菩提薩陀)'의 줄임말로서, 보리는 '깨달음'의 뜻이며, 살타는 '유정(有情)'또는 '중생'을 의미한다. 따라서 보살이라고 하는 말은 '깨달음을 얻은 유정'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유정'의 뜻으로, 보 통 '위로는 깨달음을 추구하고 (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下化 衆生)하고자 노력하는 이'로 설명된다. 한편 그는 자리(自利)와 이타 (利他)를 완성하고자 용맹정진하는 자이므로 '마하살(摩訶薩,maha sattva, 또는 大士)'로 찬양되기도 한다. 본래 보살은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고따마 붓다의 성도하기 전의 명칭 이었다. 불전문학에서는 그가 연등불을 보고 존경심이 일어나 다섯 송 이의 연꽃을 바치고 편히 자나가도록 머리카락을 진흙에 펼지며 미래세 에 붓다가 되기로 서원한 때로부터 그를 보살이라고 부르고 있다. 연등 불은 '등불을 켜는 붓다'라는 의미로 그의 마음에 보리(菩提)의 불을 켜 고 미래세에 성불할 것을 기별(記別, 授記, 예언의 뜻임)한 붓다이다. 따라서 기별을 받은 그는 성불할 것이 확정되어 있으며 이러한 수행자는 기별을 받지 못한 이와 구별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보살이라는 말 이 생겨나게 되어TEk. 이러한 보살을 석가(釋迦)보살, 수기(授記)보살, 또는 본생(本生)보살이라고 하는데, 불전문학에서의 보살은 오직 석가 보살 한 명뿐이다. 그러나 이같은 보살이라는 관념이 생겨나자 그 의미는 확대되고 보편 화되었다. 이를테면 고따마 붓다의 전신(前身)뿐만 아니라 붓다가 되기 전의 모든 중생은 바로 보살인 것이다. 우리들은 범부로서 붓다가 되고 자 발심하여 노력하고 있는 인간이며 붓다가 되기 위해 수행함으로써 언 젠가는 붓다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수행을 계혹하고 있는 우리 범 부도 보살이 아니겠는가. 물론 실제 색신(色身)의 붓다로부터 수기를 받지는 못하였지만(이것이 불전보살과 대승보살의 차이점이다.) 경전을 독송하고 불탑에 예배함으로써 대비(大悲)의 구제불(救濟佛)인 법신(法 身)의 붓다로부터 기별(記別)을 받는 것(授記)은 가능하다. 성불의 길 은 멀고 험난하여도 성불의 수기는 붓다의 대비방편에 의해 모든 범부에 게 열려 있는 것이다. 예컨데 "법화경"방편품에서는 "마음이 산란한 자 라고 하더라도 탑이나 사당(塔廟)안에 들어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南 無佛)'라고 한 번만 외우면 그들은 모두 이미 불도를 이룬 것이리라."고 말하고 있다. 보살은 반드시 출가자에 한정되지 않는다. "자따까"에 등장하는 석가 보살 역시 가지각색의 신분으로 출현한다. 출가자는 물론이거니와 어떤 때에는 국왕이나 태자, 대신, 상인, 나그네등의 재가자의 모습으로 나 타나기도 하며 심지어 사슴이나 원숭이, 토끼 등 여러유형의 동물로 나 타나기도 한다. 따라서 성불의 서원을 세운 우리들 역시 재가자로서의 보살인 것이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불전의 보살을 초월하여 대승의 보살이 탄생하게 되었다. 보살사상이야말로 대승불교의 가장 큰 특색이라 할 수 있다. 보살에는 보살도가 완성된 관음(觀音) , 문수(文殊) , 보현(普賢) , 대세 지(大勢至)와 같은 대보살도 있지만 대승교설을 믿고 보리심(菩提心, 지혜의 마음)을 일으켜 보살도를 실천하려고 발원한 이도 보살(범부보 살)이다. 누구나 다 보살이다. 2)보살의 이념 불전보살은 미래의 성불이 약속된 보살로서, 32상을 초래하는 과 거 선업에 의해 탄생(業生)하지만 대승의 보살은 서원에 의해 탄생(顯 生)한다. '원'이란 보살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이자 원동력으로 마치 전 사들이 전쟁터에 나아갈 때 갑옷을 입듯이 보살은 크나큰 서원의 갑옷 (誓鎧)을 입지 않으면 안된다. 범부들의 원은 대개 이기적 욕망이지만 보살의 그것은 보리심에 근거한 이타(利他)의 서원이다. 보살의 서원에 는 각각의 보살이 일으크는 개념적이고 특수한 원(別願 또는本願)과 모든 보살이 갖추고 있는 보편적인 원(總願)이 있는데 아미타불의 전신 인 법장(法藏)보살의 48대원이나 보현보살의 10대행원과 같은 것이 전 자라면 후자는 4대서원 사홍서원(四弘誓願)을 말한다.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번뇌를 다 끊으오리다. 번뇌무진서원단(煩惱無盡誓願斷) 법문을 다 배우오리다. 법문무량서원학(法門無量誓願學) 불도를 다 이루오리다. 불도무상서원성(佛道無上誓願成) 그런데 대승불교에 의하는 한 중생의 불도의 성취는 각기 개 별적인 것이 아니다. 즉 중생구제는 바로 발심한 때 세운 서원의 실현이 며 자비행은 깨달음의 결과를 중생에게로 돌리는 실천( 向)이기 때문 에 중생구제의 이타행(下化衆生)과 불도의 성취(上求菩提)는 보살의 서 원으로서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다. 나아가 범부의 이타행은 연민의 분별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차 별적이고 상대적이지만 보살의 이타행은 보리(菩提), 즉 반야의 자각에 반야의 공관(空觀)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렇다면 반야(prajna , 智慧)란 무엇인가. 반야란 "반야경"의 중심사상으로, 그것은 바로 무차별,무 분별의 지혜이다. 예컨데 출가와 재가의 둘이 아님(不二)를 주장하며, 세속에서의 깨달 음을 강조하고 있는 "유마경"에서는 자신에게 달라붙은 꽃을 세속적 장 식이라 하여 떼어 버리려고 하는 사리뿌뜨라(舍利佛, 붓다의 10대제자 중의 한 명으로 지혜 제일)에 대해 꾸짖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꽃 자체 는 세속적인 것이 아님에도 그가 그렇게 분별하였기 때문이다. 세속적 이라고 하는 것은 사리뿌뜨라 자신의 분별이고 집착일 뿐 분별과 집착을 떠난 대상 자체는 애시당초 청정하다. 마찬가지로 탐욕을 탐욕으로밖에 볼 수 없는 사람은 탐욕을 떠나는 것,즉 열반에 집착하며, 열반도 그 것에 집착하면 이기적인 욕망에 지나지 않는다. "유마경"에서는 바로 이같은 출가자의 이기적 욕망과 집착을 꾸짖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보살 역시 '나는 보살이고, 타인은 미혹한 자이다.'고 차별하면 그는 이미 보살이 아니다. 그것은 차별의 마음이고 분별의 마음으로 그 러한 차별과 분별은 사물의 고유한 본성이 아니라 인간의 사유분별에 의 해 조직된 것일 뿐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감각과 언어적 개념을 통해 세계를 분별함으로써 어떠한 사물에 대해 다른 것과는 차별되는 그 자신의 고유한 본성이 실 재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집착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사유 분별을 통해 그렇게 드러난 것일 뿐, 실상은 어떠한 차별도 없으며 고유 한 본성도 존재하지 않는다(無自性). 인간의 사유분별에 의한 차별된 일체의 세계는 마치 눈병이 난 이에게 보여지는 환상과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실상이 아니다. 즉 눈병이 없는 이는 환상이 존재한다는 판단을 초월하는 동시에 그것에 없다는 의식마저 초월하듯이, 세계의 실상은 유,무를 초월하는 것으로, 일체는 무차별이며 공(空)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분별의 대상이 되는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 혹은 밝음 (앎)과 어두움(무지), 열반과 생사, 출가와 재가는 각기 개별적으로 실 재하는 세계가 아니다. 밝음이란 말하자면 어두움이 해소된 상태이며, 어두움이란 밝음이 결여된 상태이다. 따라서 어두움을 전제로 하지 않 고 밝음은 존재하지 않으며 밝음을 배제하고서 어두움은 성립할 수 없는 개념이다. 마찬가지로 생사를 떠나 열반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아비다르마불교에서 열반이 최고선(最高善)일 수 있었던 것은, 그것 이 생사윤회와 대립하는 한에서였다. 만약 윤회와 해탈, 번뇌와 열반의 2가지 가치가 서로 대립하는 고정불변의 것으로 파악되었다고 한다면 해탈`과 열반은 당연히 의미있는 것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참된 의미에 서 이 2가지 사실의 대립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인 것이라고 한 다면, 다시 말해 번뇌도 공이고 열반도 공이라고 한다면 번뇌를 여의고 서 열반을 획득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허망한 것이 되고 만다. 생사번뇌 가 공이며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면 생사는 그대로 열반이 된다. 열반은 생사의 한가운데 있는 것이지 다른 장소나 시간에 있는 것 이 아니다. 밝음과 어두움은 차원을 달리하는 별개의 세계가 아니다. 2,3세기 무렵 반야경을 게송하여 공사상을 대성시킨 나가르주나(龍 樹)는 그의 주저 "중론(中論)" 제25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파하고 있다. 윤회와 열반에는 어떠한 차이도 없으며, 열반과 윤회에도 어떠한 차이가 없다. 생사(生死)가 바로 열반이라는 사유방식은 '번뇌가 바로 보리'라는 사 실과 대응한다. 즉 탐욕의 번뇌는 중생을 속박하는 고삐가 되지만, 보 살에게 있어 그것은 중생구제의 방편이 된다. 말하자면 탐욕에 탐욕으 로서의 고유한 본성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면 탐욕은 중생구제의 방편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살은, 마치 연꽃이 저 높은 곳이 아니라 낮은 진 흙의 연못에서 피지만 진흙에 물들지 않듯이, 열반에 들지 않고 (不住涅 槃) 세속에 머물지만 거기에 속박되지 않는다. 예컨데 누에는 자신이 토 해낸 실에 속박되지만, 거미는 거미줄에 얽매이지 않으며 도리어 스스 로의 자유로운 활동의 장(場)으로 삼듯이, 보살에게는 번뇌도 생사도 오히려 열반과 해탈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대승보살의 자비행은 모든 존재는 공(空)이라는 반야의 공관에서 비 롯된 것으로, 개별적 존재에 대한 집착이 사라지면 너와 나는 절대적으 로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한 몸의 다른 면일 뿐이다. 다시 말해 일체의 사물이 차별되지 않고 절대적으로 공이라면, 모든 사물은 공이라고 하 는 점에서 동등한 일체(同體)이며 대비(大悲)는 이같은 경지에서 실현 될 수 있다. 유마거사는 "일체의 중생이 병들어 있기 때문에 나도 병이 들었노라. 만약 일체의 중생에게 병이 없어지면 내 병도 즉시 사라질 것 이니, 보살의 병은 대비로 인해 일어난다."고 설법하고 있다. 중생과 내가 둘이 아니라는 이같은 무차별,무분별의 경지에서는 세속적 행위 가 그대로 종교적 행위가 되는 것으로, 대승 보살이 출가자의 이미지 보다 세속적인 이미지로 묘사된 것도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이었다. 3) 보살의 길 이와 같은 반야의 보리심을 일으켜 '이타(利他)의 서원(誓願)'이라는 갑옷으로 무장한 보살은 6바라밀(波羅蜜)을 닦음으로써 궁극의 깨달음 (阿 多羅三 三菩提)을 얻을수 있다. 일찍이 석가보살도 깨달음에 이 르기 위해 무수한 생애 동안 보리심을 발한 보살로서 6바라밀을 실천함 으로써 지혜와 자비의 완성을 추구하였던 것이다. 모든 보살 마하살이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마따히 6바라밀을 닦 아야 한다. 왜냐하면 아난다여, 6바라밀은 보살 마하살의 어머니로서 모든 보살을 낳기 때문이다. 아난다여, 만약 보살 마하살이 6바라밀을 닦는다면 모두 긍극의 깨달음을 얻으리라. 이런 까닭에 나는 6바라밀을 거듭 그대에게 부촉하는 것이다. 아난다여, 6바라밀은 모든 부처님의 진리가 담겨 있는데 이 루 다함이 없는 법의 곳간(法藏)이니, 시방의 모든 부처님이 현재 설법하는 것은 모두 6바라밀의 법의 곳간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과거의 모든 부처님 역시 6바라밀을 닦음으로써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으며, 미래의 모든 부처님 또한 6바라밀을 닦음으로써 궁극의 깨달음을 얻게 되리라. 또한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불제자들 역시 6바라밀을 통해 열반을 얻을 것이다. "대품 반야경" (累敎品) 여기서 바라밀이란 빠라미따(paramita)의 음사로서, '피안(para)에 이른(i) 상태(ta)' 혹은 최상(parami)의 상태(ta)', 즉 완성(perfec- tion)'을 의미하는데, 한역(漢譯)에서는 보통 도피안(到彼岸)으로 번역 되고 있다. 그러나 이때 '도달'이나 '완성'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도달 이고 완성할 수 없는 완성이다. 즉 바라밀은 무차별, 공에 입각한 실천 이기 때문에 특정한 도달이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며, 따라서 결 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닦아가야 하는 것이 바라밀의 참뜻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말미암아 보시 등의 세속의 윤리 도덕적 덕목이 종 교적 덕목으로 승화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바라밀의 정형은 다음 의 6가지이다. (1) 보시(布施)바라밀 보시(dana)란 '베푸는 것'이다. 베풂에는 물질적 베풂인 '재시(財施)' 와 진리의 말씀을 전하는 '법시(法施)',두려움과 근심을 함께하고 도 와 주는 '무외시(無畏施)'의 3가지가 있는데, 주는 자와 받는 자와 주는 물건에 어떠한 차별도 없는것(삼륜청정(三輪淸淨))이 진정한 보시이 다. 즉 보시를 행하면서도 보시라는 선행에 집착하지 않고 공덕의 대가 도 바라지 않는 무주상(無住相)의 보시가 보시바라밀이다. 보시바라밀 은 요컨데 공한 마음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2) 지계(持戒)바라밀 지계(sila)란 말 그대로 '계를 지킨다'는 의미이다. 전통적으로 계에는 재가신자들이 지켜야 할 5계(산 목숨을 죽이지 마라, 남의 물건을 훔치지 마라, 사음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마시지 마라)와 출가 비구와 비 구니가 갖추어야 할 250계와 350계가 있지만, 대승의 보살계는 10가지 대계(大戒), 즉 '산목숨을 죽이지 마라(不殺生), 남의 것을 훔치지 마 라(不偸盜), 사음하지 마라(不邪淫), 거짓말하지 마라(不妄語), 이간 질하지 마라(不兩舌), 욕하지 마라(不惡口), 꾸며내어 말하지 마라(不 綺語), 탐욕하지 마라(不貪欲), 미워하지 말라(不瞋喪), 어리석지 마라 (不邪見)'와 같은 10선계(善戒)와 그 밖의 48가지 가벼운 계(輕戒)가 있다. 그런데 대승의 지계는 소승과 같은 수동적이고 타율적인자리의 계율지상주의가 아니라 이타를 위한 능동적이고 자율적 정신을 강조한 다. 즉 계 역시 공한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집착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지키며, 아울러 타인에게도 그렇게 하게 하는 것이 지계바라밀의 본질 이다. (3) 인욕(忍辱)바라밀 인욕(ksanti)이란 '참고 용서 하는 것'이다. 이 세계는 고해이며, 그러 한 세계에 사는 한 괴로움을 참고 견디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욕된 일 을 당하여 참지 못하는 것은 진실로 '나'가 있다고 하는 에고 의식(我想) 때문이며, 보살에게는 그러한 마음이 없다. 8세기의 불교 논사(論師) 산띠데와는 그의 "보리행경(菩提行經)"에서 "화내는 것보다 더한 죄악 은 없고 인욕보다 어려운 고행은 없다. 그러므로 최선을 다해 인욕바라 밀을 닦아야 하리."라고 노래하였다. "미움은 미움으로 사라지지 않는 다. 미움은 오직 참음으로써, 자비로서 극복되는 것이니, 이것이 영원 한 진리이다"(법구경" (4)정진(精進)바라밀 정진(virya)이란 나약함이 없는 부동심의 실천이며 불퇴전의 노력이 다. 대승의 공관은 결코 허무에 의한 나태가 아니다. 석존께서도 입멸 하면서, "생겨난 것은 반드시 멸하는 것이니, 게으르지 마라."는 가르 침을 남기고 있는데, 선법(善法)을 증장시키는 데 정진은 필수 불가결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생의 정진은 본질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보살의 정진은 집착함이 없는 이타의 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5)선정(禪定)바라밀 선정(dhyana)의 정은 삼매(三昧,samadhi)란 뜻으로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고요히 사색하는 것(靜盧)'라고 풀이되며, 세계 실상이 무 자성,공임을 삼매로서 직관하여 그것에 대한 집착으로부터 벗어나는 수행이라고 할수 있다. 앞서 언급하였듯이 초기 대승의 불교도들은 불 탑을 참배하고, 관불삼매(觀佛三昧)에 들어 석가모니를 친견하여 그로 부터 반야바라밀의 법문을 청문하였던 것인데, 이것이 바로 선정바라밀 이다. (6)반야(般若)바라밀 반야(prajna 또는 panna)란 '수승한(pra) 지혜(jna)'란 뜻으로, 이 때 지혜는 이미 앞에서 설명한 대로 사유분별의 망상을 떠난 지혜이다. 그렇기 때문에 불가득(不可得)이며, 무소득(無所得)이다. 즉 우리가 일 상적으로 갖는 분별의 지혜가 밤과 낮의 구별이 있는 지구에 비유된다 면, 이같은 무분별의 지혜는 밤낮의 밝고 어두움의 구별이 없는태양에 비유되는 것으로, 태양의 밝음은 어두움에 의해 드러나는 상대적 밝음 이 아닌 절대적 밝음이기 때문이다. 반야바라밀다에 의지할 때, 마음에 장애가 없고, 마음에 장애가 없기 때문 에 두려움이 없으며, 전도된 생각을 멀리 떠나 마침내 열반에 이르니, 삼세 의 모든 부처님께서 위없이 더 높은 궁극의 깨달음을 얻은 것도 반야바 라밀다에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반야심경") 모든 보살은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바로 이같은 6바라밀을 하나하 나 닦음으로써 마침내 붓다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 한편 화엄경에서는 이같은 보살의 길로서 10바라밀을 설하고, 이에 상응하는 10가지 단계 (菩薩十地)를 설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보리심을 일으켜 이타의 서원 을 세우는 첫 번째 단계인 환희지(歡喜地, 이 때 그는 환희에 충만하여 보 시바라밀을 닦는다)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존재가 공임을 관찰하는 반야 바라밀의 제6 현전지(現前地)를 거쳐, 제7 원행지(遠行地)에서 초월적 보살이 되고, 일체지(一切智)를 실현하는 제10 법운지(法雲地) 이후 마 침내 성불하게 되는데, 이데 대해서는 '화엄사상'에서 보다 자세하게 설 명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대승불교는 반야의 지혜에 근거하여 자리이타의 보살행을 무 한히 펼쳐 나가는 보살의 불교이다. 대승(大乘, mahayana)이란, 말 그 대로 큰 수레라는 뜻이다. 여기서 수레란 대승불교의 진리인 '대반야'를 일컫는 말로서, 이는 모든 존재의 실상을 들어내어 일체 중생을 이익되 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대승이다. 이에 따라 보살은 악도(惡途,지옥, 축생,아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도 불사하는데, 이는 기존의 부파불교 의 그것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진리관이다. 소승의 성문승(聲聞乘)들은 오로지 세속을 떠나 사성제의 진리성에 대한올바른 관찰과 이해를 통하 여 열반을 획득하는 것이 지상의 목표였다. 그리고 자신의 열반은 그 누 구도 대신해 줄수 없으며 오직 자신만이 성취할 수 있을 뿐이다. 따라 서 그들의 지혜는 철저하게 출세간적인 것이며, 그들의 불교는 아라한 을 목적으로 하는 엘리트주의, 자리(自利)주의의 불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대승의 불교인들은 그들을 비난하여 소승(小乘,hinayana), 즉 작은 수레(혹은 버려야 할, 저열한 수레)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의 열반(自利)에만 집착하여 동체대비(同體大悲) 를 설하지 않으며, 다른 이의 고뇌를 돌보지 않으며, 또한 개아(個我) 의 공(空)만 설할 따름이며, 대승처럼 일체법의 공까지 설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승이다. 다시말해 소승은, 현상계의 개아는 공(我空)이 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본체계는 실유(法有)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번뇌가 바로 보리'이며, '생사가 바로 열반'이라는 제법실상의 대반야의 지혜를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실유의 제법을 분석하고 차별하 여 그러한 온갖 존재(이를테면 여러 가지의 번뇌와 업)에 의해 조작된 현 상세계의 해체(즉, 열반)만을 추구하였으며, 나아가 허무적멸의 아라한 을 이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소승인 것이다. 그러나 대승의 반야지혜는 결코 출세간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도리어 세간과 출세간의 차별을 파기하고 부정하는 지혜이다. 세속의 사회는 그것이 어떠한 사회든 나만의 사회는 아니며, 남과 더 불어 사는 사회이다. 나는 나이고 너는 너일 때 거기에는 결국 대립(증 오)와 집착(애욕)만이 존재할 뿐이다. 대승의 지혜는 반야의 지혜로서, 그것은 공의 지혜이며, 무차별의 지혜이다. 이같은 지혜에 입각하여 어 떠한 집착도 없이 이타행을 실천하는 이가 바로 보살인 것이다. 대승불 교는 바로 보살의 불교이다. 4)대승불교의 전개 반야바라밀다의 이면 아래 자리이타의 보살도를 지향하는 이같은 대 승불교의 이론은 서력 기원후 2~3세기 무렵에 출현한 나가르주나(na garjuna, 龍樹)에 의해 체계적으로 정리된다. 그는 불교 최고의 논사로 서 제 2의 붓다로 칭송되고 있는데, 반야경의 공(空)사상을 논리적으로 밝히기 위해 수많은 논서를 저술하였다. 특히 그의 주저(主著)인 "중론 (中論)"에서 불교의 근본진리인 연기(緣起)를, 생멸(生滅) , 거래(去 來) , 일이(一異) , 단상(斷常)의 차별적 대립을 넘어선 것(入不中道)으 로 해석하며, 어떠한 견해에 대한 집착도 부정하고 있다. 현실 세계에 서 경험되는 모든 것은 다른 것과의 관련 속에서만 존재(緣起)할 뿐 그 자체로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無自性), 따라서 일체는 공 (空)이라고 풀이 하고 있다. 그는 바로 연기,무자성,공의 이론을 확립 하여 대승불교의 초석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나가르주나에 의해 일단 종합 정리된 대승불교는 교리의 발달과 함께 새로운 경전의 제작이 요구되었다. 이들 새로운 경전에서는 앞 시대에 수립된 공사상에 입각하면서, 미혹과 깨달음의 주체의 문제로서 마음의 본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즉 마음은 한편으로는 깨달음의 세계를 낳 는 원천이 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미혹의 세계를 낳는 씨앗이 되기도 한다. 마음은 보리의 바탕인 동시에 윤회의 주체이기도 한 것이다. 전 자는 바로 마음이 붓다라고 하는 이상적 측면에서 고찰한 여래장설(如 來藏說)로서 "여래장경(如來藏經)" , "승만경(勝 經)" , "열반경(涅槃 經)"등이 이같은 계통의 경전이라면, 후자는 마음의 현실적 기능의 분 석에서 출발하는 유식설(唯識說)로서 "해심밀경(解深密經)"이 대표적 인 경전이다. 유식사상은 일체의 분별망상이 비롯되는 장(場)으로서 인간의 의식 자체를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의 전환을 통해 진여(眞如)와 열반의 성취를 목적으로 하는 이론으로, 3~4세기 무렵 출현한 아상가(asan- ga, 無着)와 그의 동생인 바수반두(vasubandhu, 世親)에 의해 완성되 었다. 나아가 여래장사상과 유식사상을 동일시하여 양자간의 융합을 모 색하려는 경전과 논서도 생겨나게 되었는데, 이같은 새로운 경전의 제 작되고 연구되는 시기를 중기 대승(中期大乘)이라고 한다. 그러나 중기 대승불교의 이론은 아비르다르마불교의 그것처럼 대단히 번쇄하고 어려워 불교학자들조차 이해하기 힘들 지경이 되어 자연히 초 기 대승불교의 순수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이같은 사정에 따라 후기 대 승이라 할 수 있는 밀교가 출현하게 된다. 밀교에서는 붓다의 깨달음을 다라니(dharani, 陀羅尼)나 진언(眞言), 만다라(曼多羅) 등의 상징으 로 나타내며, 의례를 중심으로 한 신앙실천 중심의 불교라고 할 만하 다. 그러나 이것은 점차 힌두교의 의례와 유사하게 되어 그것에 동화되 기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 이슬람교도들이 인도에 침입하여 불교사 원을 파괴함으로써, 불교는 13세기 무렵 마침내 인도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한편 불교는 서력 기원전 동쪽으로 진출해서 중국에 전해지기 시작 하였는데, 그 후 수(隋) , 당(唐)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경론(經論) 들이 번역됨으로써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즉 인도의 불교는 오 랜 시간과 넓은 지역에 걸쳐 전개되어 왔으므로 결코 단일한 체계가 아 니었기 때문에 중국의 불교인들은 번역된 온갖 경론들에 대해 체계성을 부여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붓다가 일생 동안 설 한 교설을 말씀한 순서에 따라, 혹은 뜻의 얕고 깊음에 따라 각기 그들 나름대로 불교의 일체 경론을 분류하고 해석하였는데, 이를 교상판석 (敎相判釋, 줄여서 敎判)이라고 한다. 이같은 교상판석에 따라 마지막 설해진, 또는 가장 뜻이 깊은 것 으로 간주된 경론들을 중심으로 하여 마침내 종파(宗派)들이 성립하게 되었다. 불교의 종파는 이미 동진(東晋) 시대나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여러 경론이 번역되고 그것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면서 나타나 기 시작하지만, 당나라 시대에 이르러 마침내 수많은 종파가 성립하면 서 불교의 황금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13의 종파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우리 나라는 물론이거니와 중국 후대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은, 법 화경의 일승(一乘)을 대승불교의 근본으로 간주하는 천태종(天台宗), 화엄경의 중중무진(重重無盡)의 법계(法界)를 붓다 깨달음의 본질이라 고 하는 화엄종(華嚴宗), 정토경전(淨土經典)에서 설하고 있는 아미타 불의 본원력에 의지하여 정토의 실현을 추구하는 정토종(淨土宗), 그리 고 경전을 중심으로 하는 앞의 여러 종파와는 달리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을 표방하는 선종(禪宗) 등이 있다. 이제 인도 대승불교 교학의 양대 산맥이라 할 수 있는 공사상과 유 식사상, 그리고 중국불교의 대표적 종파인 천태 , 화엄 , 정토 , 선종 등 의 사상에 대해 보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출처:천리안 정신과학동호회 Ask not who you are,but whom you really wanted to b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