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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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1월  6일 금요일 오전 11시 40분 39초
제 목(Title): 뉴스+/성철! 그가 그립다 



성철! 그가 그립다 
입적 5주기, 돈 명예 버린 불교계의 師表  
    

다 헤진 염의(染衣) 한벌과 검은 고무신 한켤레, 그리고 돋보기 안경 하나. 
11월8일 입적 5주기를 맞는 성철(性徹) 전 조계종 종정이 남기고 간 유품들의 
모두였다. 그는 총무원 감투를 쓴 일도 없고, 그 좋다는 대찰(大刹)의 주지를 한 
일이 한번도 없다. 그러나 그는 한 시대를 풍미한 선승(禪僧)으로 기억되면서 
5주기를 맞아 엄청난 사리탑과 탑비를 세워 회향(廻向)한다. 물론 기러기가 눈 
위를 지나간 뒤 뒤돌아보자 발자욱이 이미 다 녹아 흔적도 없는 
‘설니홍조’(雪泥鴻爪)의 삶을 사는 게 선승의 길이라 할 때, 그의 사리탑과 
탑비는 전혀 의미가 없다. 그러나 세속적 기준에서 보면 그같은 탑을 세우고 
추모함은 대단한 존경이요 흠모다. 특히 오늘의 조계종 승단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새삼 그의 발자취와 법(法)이 커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다음 두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물질적 측면에서 욕심을 절제하고 승려 
본분을 지키려는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살았다는 점이다. 그가 보여준 
무소유를 지향하는 불법진리는 해인사 열반당(涅槃堂:사찰 병실)인 퇴설당에서 
육신의 형체를 거둘 때 남긴 유품 등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다른 하나는 일체의 명예를 거들떠 보지조차 않은 그의 하심(下心)이다. ‘중의 
벼슬은 닭벼슬만도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인간의 근원을 꿰뚫어 그에 합당한 
삶을 살려는 게 출가수행의 길을 나선 납자(衲子)들의 본분사(本分事)다. 그렇건만 
오늘의 조계종단 현실은 거꾸로 벼슬을 하고자 하는 일부 스님들의 탐욕이 속인을 
뺨치는 정도가 아닌가. 

11월12일 제29대 총무원장 선출을 앞두고 선거열풍에 휩싸인 조계종단은, 지금 
인신공격과 모함이 난무하는 혼탁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4년 임기의 선출직인 
조계종 총무원장은 종단 내로는 본사 주지 임명권 등 막강한 권력을 갖는 
대표권자이며, 대외적으로는 가톨릭 개신교 수장과 함께 한국 3대 종교를 대표하는 
종교계 지도자다. 따라서 조계종 총무원장은 세속적으로는 법력(法力)의 상징인 
종정보다 훨씬 막강한 지위로, 종단 안팎에서는 총무원장 선거에 당선되려면 
10억~15억원의 선거비용이 들 것이라는 추정이 떠돌기까지 한다. 

돈과 명예를 단숨에 헌신짝처럼 버리는 방하착(放下着)은 선승들이 지향하는 수행 
목표다. 조계종은 그 이름부터가, 동아시아 선불교 주류인 돈오 
‘남종선’(南宗禪)의 개창자로 선종 제6대 조사인 
조계혜능(曹溪彗能:638~713)대사의 선법과 가풍을 잇는 ‘선종’(禪宗)임을 
표방하고 있다. 실제로도 오늘의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은 종단의 헌법인 
종헌에서 자신의 법통과 정체성을 ‘선종’으로 명시하고 있다. 

불교의 많은 종파 중에서도 특히 선종은 일체의 재물이나 명예에 대한 집착을 갖지 
않는 ‘무소유사상’에 투철하다. 단순 소박한 삶과, 고저 장단 선악 등으로 
나누는 이분법적인 분별심을 버리고 직관적인 통찰로 사물의 진면목을 꿰뚫어 보는 
것이 선법의 핵심이며 선종의 뚜렷한 정체성이다. 선종임을 자타가 공인하는 불교 
조계종의 종단 현실이 이러한 선불교 정체성에 과연 얼마나 여법(如法)한지 생각할 
때 성철선사의 발자취는 더욱 커보일 수밖에 없다. 

그에게도 인간으로서의 결함과 단점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도 밥을 먹고 옷을 
입고 살았으며 희로애락의 감정을 발산하는 6식(六識:눈 귀 코 혀 몸뚱이 의식)을 
따라 살다 갔기 때문이다. 그가 부처(生佛)였는지 아닌지를 자로 재듯이 측정한 
사람도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가 범부들이 사는 오탁악세(五濁惡世)와는 
다른 어떤, 저 세상의 삶을 살고 갔다는 생각을 한다. 

성철선사는 산문(山門) 출입을 극히 자제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많은 가르침을 
던져주고 있다. 일부에서는 그가 차멀미를 해서 외출을 자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한다. 그러나 필자는 삼천배(三千拜) 관문 등을 설치해 놓고 좀처럼 
친견을 허락지 않던 그를 좋은 시절인연(時節因緣)으로 여러번 만나면서 참된 승려 
모습의 일면을 감명깊게 보고 느꼈다. 

그렇다면 왜 다같이 먹물 옷을 입고 머리를 깎은 스님들인데 성철스님 같지 않고, 
주지싸움 종권다툼에 휘말리고 심지어는 갈비집에서 도박하다가 경찰에 적발되는 
승려들까지 있는지 한탄해야 하는가. 

실은 속인들이 바라는 승려상이 너무 이상적인 건 아닌가 싶다. 스님이라면 구름 
위에 떠서 이슬만 받아먹고 사는 선인(仙人) 같기를 기대하는 속인들의 바람은 
전혀 현실성이 없는 것이다. 육식문제만 해도 사회문화 현실의 변천에 따라 지금은 
엄밀한 의미의 채식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멀리 여행을 하다가 우동 한 그릇을 
사먹어도 그 국물은 최소한 멸치라도 들어간 것이지 스님을 위해 별도로 맨 물에 
말아주진 않는다. 남방불교는 전통적으로 탁발에 의존하는 걸식(乞食)이기 때문에 
지금도 고기를 주면 고기를 먹고, 기본 5계에서도 북방불교에서 
불살생계(不殺生戒)가 그 첫번째 계율인 것과 달리 불음(不淫)을 제1계율로 
삼는다. 따라서 우리는 이제 고기를 안 먹기보다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는 
생명경외사상에 철저한 승려상을 우러러보아야 한다. 그저 고기 안 먹고 부인 안 
거느리는게 불법의 완성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오늘의 승단 현실은 크고 작은 사건으로 세인의 지탄을 받고 때론 사회실정법의 
심판을 받아 감옥까지 가는 승려들이 없지 않다. 이럴 때마다 거듭 성철선사의 
‘스님 노릇’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의 탑과 탑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가 살았던 ‘스님 모습’, 남기고 간 
법음(法音), 그의 문하에 전승되고 있는 가풍(家風)을 오늘의 승려들에게서 더 
많이, 그리고 또렷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곧 성철선사의 
본래면목(本來面目)을 받드는 일일 것이다. 

조계종의 1만2000명 스님들이 모두 성철선사를 닮기 바라는 건 아예 지나친 
욕심일까. 그렇다면 그저 비슷하기만 해도 좋다. 


이은윤/ 중앙일보 종교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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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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