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Buddhism ] in KIDS 글 쓴 이(By): croce (......) 날 짜 (Date): 1998년 10월 1일 목요일 오전 12시 33분 34초 제 목(Title): 구제프 이야기 George Ivanovitch Gurdjieff (1872-1949) 구제프 1877년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알메니아 지방 알렉산드로플, 아프프트 산이 보이는 곳에서 태어남. 스탈린과 국민학교 동창. "인간은 자기 자신이 각성하고 있어서 의식적으로 행동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나 이것은 큰 착각이다. 실은 인간은 꼭두각시와 같이 거의 잠들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좋다. 각성한다는 것은 보통 의식의 계단의 꼭대기에서 확실하게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초각성 상태에 오를 수 있다면 보통의 인간 따위는 지면에서 다리를 떼 놓을 수 없는 몽유병 환자와 같이 보일 것이다." "사람에게는 작용할 수 있는 모종의 힘이 있다. 이것은 고차원 감정 에너지라고 한다. 이 에너지의 거대한 저장고의 열쇠를 쥐고 있는 인간은 언제나 자유로이 에너지를 끌어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할 수 있는 인간은 한정되어 있다." 파리, 푸리우레에 있는 구제프 연구소. 1949년 가다. 여러 곳에서 지성을 통해 의식으로 작용하는 것이 가슴을 통해 작용할 때 양심으로 작용한다. - In Search of the Miraculous 존재와 빛의 피안 구제프의 세계 번역·구성/『선사상』편집부 -- 선사상 84년 4,5월호 구제프 사상의 핵심 요약 인간적 상황 인간이 지구에 존재하는 것은 온갖 사물의 우주적 관계 속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하 기 위한 것이다. 이 역할 중의 하나는 에너지의 변형이다. 그 일은 보통 무의식적으 로, 또한 각자에게 어떤 이익도 주지 않는 상태에서 수행되며, 우리는 우리들 삶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서는 잠들어 있는 것과 같은 상태에 있다. 각 개인은 본질적인 상 태로 태어나서 자신의 가족과 주변의 문화를 반영하는 여러가지 태도, 믿음, 습관 등 을 갖게 되는데 자신에게 정말 진실된 것은 위의 태도, 믿음, 습관 등의 성격적 요인 과 자신을 동일시함으로써 망각한다. 이와 같은 최면과정의 결과 성인이 된 인간은 마치 몽유병자 같으며 자동인형 같고 또한 기능은 제멋대로이고 개성은 내면 깊숙히 묵살된 채 묻혀 있는 기계와 같다. 이 <기계>는 어떤 자유의지도, 어떤 선택도 없이 생각하고 감정을 나타내며, 일하고 자식을 낳고, 살다가 죽어간다. 그들은 사랑할 수 도 없으며 모든 것은 단지 반응일 뿐이다. 이는 노예상태이고 감금상태이며 결코 벗 어날 수 없지도 않은데 그 노예는 자신이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조차도 모른다. 인간의 가능성은 실로 위대하다. 벗어나는 길이, 자유를 향한 길이, 자아 각성 (self-realization)의 길이 있다. 진심으로 추구해 나아간다면 내면에서 진리와 자유 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이 있다. 그대 자신을 알라.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비록 우리가 이 우주의 외곽지역, 상대적으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지역에 살고는 있지만 <도움>이 존재한다. 우리가 그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수만 있으면 우리를 도와줄 <힘>들이 있다. 우리들은 주의깊지 않기 때문에 상황을 두려워하며, 진실된 것을 회복하지 못하면 종국은 죽음뿐이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던 에너지는 반환되지 않을 것이며 그밖의 것 은 한 줌의 먼지로 변할 것이다. 인간 존재의 좀더 높은 측면들이 이미 개발되고 있으며, 작용하고 있다. 조절되어 지고 촉진되어지며, 조화를 이루어야 될 것은 바로 평범한 기능들인데 이 작업은 평 범한 삶 속에서의 전면적인 자아탐구를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지켜봄으 로써 자신의 내면에 있는 미세한 것들을 가라앉힐 수 있으며 그로 인해 실체가 발현 될 수 있다. 또한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옳지 못한 것들이 생겨날 수 없는데, 옳지 못 한 것이란 어둠 속에서만 생겨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관찰함으로써 자신에게는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과 완전히 기계적으로 반응 해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이 섬뜩한 인식이 바로 위대한 시작이다. 왜냐하면 바 로 그 때에 진정한 의문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기계>는 모든 측면에서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기능전체가 평형상태 에 머무르려 하기 때문에 평범한 환경에서는 변화란 실제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러나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도 여럿이서라면 할 수 있다. 또한 같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과 보다 높은 차원에서 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의 안내가 필요하다. 전설의 불사조의 경우처럼 인간은 새롭게 태어나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죽어야 하며, 죽기 위해서는 우선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깨어나는 것은 점진적일 수 있고 짧은 기간 내에 이루어질 수 있지만 죽음은 일순간에 일어나며 동시에 영원한 것이다. 그리하면 수천 가지 집착이 잿더미가 된 속에서 진실한 개체가 - 진실한 나, 진실한 자아가 - 피어오른다. 영적인 길에 대하여 구제프는 전 세계의 역사를 통해서 불교, 힌두교, 이슬람, 기독교, 라마교의 다섯 가지 중요한 종교적 전통이 있다고 말했다. 모든 종교에는 외적 측면과 내적 측면이 있다. 외적인 또는 현교(顯敎)에 있어서의 이론과 의식과 체계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를 알려주며, 내적인 또는 비교(秘敎)에 있어서의 실행은 그 방법을 보여준다. 종교 내에는 자각(自覺)으로 가는 네 가지 길이 있다. 고행자의 길은 육체의 정복 에 열정을 두어 의지를 강화시킨다. 승려의 길은 가슴(heart)을 치유하고 감정을 승 화시키기 위해서 기도와 헌신을 이용한다. 요기(Yogi)의 길은 맑고 투명한 마음을 통 해 이해를 깊이 한다. 일상의 사람의 길인 네번째 길①은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인간 의 세 가지 구성 요소인 육체, 가슴, 마음에 동시에 작용한다. 변질되지만 않고 행해진다면 의식도 가치가 있으며, 중요한 내용을 반복하는 기도 도 효과가 있다. 각각의 개인은 자신이 도달한 수준에 따라 이런 것들은 나름대로 이 해할 것이다. ①구제프에 있어서 네번째 길이란 속세에 살면서 속세를 초월하는 길을 의미한다. 인간성의 진화 인간성은 자연적으로는 진보하지도, 진화하지도 않는다. 인간은 진화할 수 있으나 인간성은 그렇지 않다. 인간성의 진화는 의식적으로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인간성은 진화하거나 아니면 퇴보해야 한다. 사회 진화의 과정이란 개체 진화의 과정, 즉 인간 성 안에 의식의 핵이 형성되는 과정이며 의식적인 사람이 200명만 있어도 지구상의 삶 전체가 변화할 것이다. 인간성 안에 내면의 핵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비록 서로 다른 방법을 통해 진화했다 하더라도 항상 서로간에 일치하며 서로를 이해한다. 오해란 바깥층의 잠자 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며 그들은 서로의 말을 혼동하고 어쩔 수 없이 일치점을 찾지 못함으로써 자신들의 무지(無知)만을 폭로할 뿐이다. 타인을 돕기 위해서 인간은 우선 자신을 돕는 일을 배워야 한다. 사람들이 쓸데없 이 타인을 변화시키는 데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자기 자신의 진화에 게으르다는 표시 일 뿐이다. 전쟁은 결코 평범한 방법을 통해서는 멈추어질 수 없는데, 왜냐하면 전쟁이란 지구 상의 유기적 삶에 대해 행사하는 우주적 힘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인간성 안에 의식 이 부재하는 상황에서는 우주는 생명의 대량 파괴를 통해 얻어지는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전수(傳授)에 대하여 평범한 생활과 자각으로 가는 길 사이에는 계단이 있으며 그 계단은 안내자 없이는 올라갈 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람으로부터 배워야 하며 그의 안내에 대해 자신 의 의지를 내맡겨야 한다. 올라가는 동안 학생의 입장에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심지어 자신을 안내하는 사 람조차도 의심하지만 마지막 단계에 이르면 이런 의심들은 사라지고, 안내도 별로 필 요하지 않게 될 것이다. 네번째의 길을 오르기 위해서는 항상 자신의 과거에 안주해 있던 자리를 떨쳐 버려 야 하며 따라서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안내에 더 많이 의존하게 된다. 안내자는 학생들이 좀더 높은 수준에 이르도록 하기 위해서 자신이 성취했던 것들 은 때로 희생하기도 하며 학생들이 그 수준에 이르러면 다시 희생했던 것을 회복한 다. 안내자는 그가 가르치는 내용이 진실한 비교(秘敎)의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면 스스 로는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안내의 수준은 항상 학생의 수준에 상응하지만 학생은 결코 스승의 수준을 알 수 없다. 네번째의 길에서는 어떤 경우에나 그 작업을 오래한 사람이 스승이 되며 스승 의 수준이 높을수록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더욱 어려워진다. 스승들은 시간을 대단히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그룹(group)의 안내자로서 행동한 다. 그룹은 스승에 의해서 구성되어야 하며 스승이 없이는 어떤 그룹 작업도 불가능 하다. 과업이 끝나면 그룹은 사라진다. 그룹에 대하여 그룹은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 구성된다. 리더는 구성원들을 믿을 수 있어야 하며 구성원들은 서로를 믿어야 한다. 네번째의 길에서는 오래한 사람이 스승이지만 스승 이라 해서 서열을 높일 필요는 없다. 스승은 잠정적으로 학생의 <나>의 역할을 대신 한다. 그룹의 구성원에게는 각자의 중요한 특성에 따라 과제가 주어지며 그룹 전체가 책임을 지는 과제도 있는데 그때에는 한 사람의 실수가 모두의 실수가 된다. 그룹은 개인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을 공동으로 이룰 수 있다. 지성(Intellect)에 대하여 깨어나기 전에는 지성이란 어떤 주장이나 그에 관련된 것들을 그냥 전달해주는 부 속에 지나지 않는다. 지성은 머리와 가슴과 내장이라는 세 가지 센터 중에서는 가장 높은 단계의 것이지만 지식의 창고일 뿐이며, 존재없는 지식이란 소용이 없고 오히려 발전하는 데 해롭기까지 하다. 세 가지 센터에서 동시에 아는 것이 이해(under- standing)인데 이는 내면의 진화를 위해서 필요하며 연약한 요기(yogi)나 어리석은 성자(Saint)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과 존재가 같이 발전해야 한다. 거짓을 말하는,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바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바로 지성이며 사실상 인간의 심리학이란 바로 거짓말의 심리학이다. 내면의 작업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색깔없는 사람이 되어가는데 이는 곧 거짓말이 줄어 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질문은 고통을 통한 진실한 것이어야 하며, 작업 가운데에 는 머리로만 따지는 식의 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감정에 대하여 아직 깨어나지 못한 사람의 감정 생활은 전적으로 부정적인 요소로만 이루어져 있 다. 소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긍정적 감정조차도 사실은 부정적인데 이런 사랑은 증오로 변해 버릴 수가 있기 때문이다. 감정 폭발은 자신에 대한 탐구와 의식적인 진화를 이루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몽땅 허비해 버린다. 일상적인 삶은 이기심에 의해서 지배되는데 이런 이기심은 타인의 요구와 바램을 고려해주는 태도로 전환되어야 한다. 이기심과 기타 부정적인 감정들은 삶이라고 하는 연극 속에서 본래의 자신을 상실 하고 그 안에 매몰되어 버리는 동일시(同一視, identification) 때문에 나타난다. 인간의 전체적인 성격은 여러 성격 요인들, 또는 <나>라고 생각하는 여러 측면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무의식이라는 완충지대를 통해서 서로간의 마찰을 피하고 있 다. 그 완충지대는 서서히 제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만약 진리를 보았으면서도 그 것을 전혀 변화시킬 수가 없다면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간은 선(善)을 이해함에 따라 선을 위해서 행동하게 되지만 진정으로 올바른 행 동이란 문화적인 도덕과는 상관이 없으며 마치 잃어버린 아틀란티스 대륙처럼 내부깊 숙히 묻혀 있는 인간의 양심(conscience)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다. 자기 자신에 대한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먼저 반드시 자신의 불쾌한 감정을 드 러내지 않는 노력부터 해야 되는데 이는 두번째의 의식충격(conscious shock)에 대한 준비이다. 진리와의 연결은 오직 감정 센터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좀더 많은 것을 이해하기 위 해서 우리는 감정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왜냐하면 평범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지성(知 性)보다 감정적인 지각(知覺)기관이 훨씬 더 민감하고 미묘하기 때문이다. 성(性)에 대하여 성은 인간의 기계적인 모든 면들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동인(動因)이면서 동시에 자유로와지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요인이다. 인간에게 가능한 새로운 탄생에 있어서 도 어린이가 탄생할 때와 마찬가지로 성에너지에 의존한다. 바로 이 성에너지가 내면 의 삶을 창조하는 데에 쓰일 수 있는데 이는 성에너지가 정화되어 육체가 그 순수한 에너지로 가득차게 될 때 이루어지며 이것이 바로 성변화(聖變化transubstantiation) 이다. 이렇게 되기 위해서 어떤 사람에게는 금욕이 필요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다. 또한 어떤 사람은 변형의 초기에 대단히 많은 성적 행위가 필요하다가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점점 줄어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처음에는 거의 필요로 하지 않다가 일단 과정이 시작되면 풍부한 성적 생활을 계속하기도 한다. 금욕은 모든 부분에서 함께 이루어지거나 금욕하는 사람이 그 금욕된 에너지를 어 떻게 써야할 지 알고 있을 때에는 유용하지만 정확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자신의 성 습관을 바꾸지 않는 편이 좋다. 성에너지의 남용, 성에너지를 다른 감정 센터에서 사용하는 것, 성센터에서 다른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 등이 인간에게 있어 중심적인 문제이다. 성네지의 그릇된 사용 은 어느 특정 행동이 격렬해지거나 쓸데없는 행동을 하는 데에서 확인될 수 있다. 죽음에 대하여 내면의 진화가 없다면 죽음이 우리의 마지막이지만 반면 불멸, 또는 사후존재도 가 능하다. 내면의 작업을 통해여 별로 재미가 없어진 사람들은 대신 진리의 맛을 띠게 되며 육체적으로 죽기 이전에 이미 죽기 시작한다. 외부의 영향력을 견뎌낼 수 없다면 죽음 역시 견딜 수 없다. 죽은 뒤에 다시 재생(再生)한다는 생각은 진리에 가까우나 꼭 그렇지만은 않으며 재생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보다 유익하다. 인간성에 있어서의 유일한 희망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결국은 죽을 것이 라는 사실을 깨닫고 자신의 내면에 깊이 묻혀있는 본래의 의식을 드러낼 수 있다는 데에 있다. Ask not who you are,but whom you really wanted to be. |